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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트럼피즘, 강 건너 불만은 아닌 이유

 

트럼피즘(Trumpism)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지만 단지 한 정치인의 스타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이유가 담겨 있다. 트럼피즘은 제도나 법보다 감정과 분노가 앞서는 정치다. 트럼프가 가짜 뉴스를 반복해서 외칠 때마다 흔들린 것은 언론이 아니라, 세상이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기준 그 자체이다. 트럼피즘은 사실보다 감정, 제도보다 충성, 대화보다 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의 징후다.

 

비슷한 일이 이미 존재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퍼진 매카시즘(McCarthyism)이 그 예다. 당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정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숨어 있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아무 증거 없이 빨갱이로 몰렸다. 할리우드 배우, 작가, 기자, 교수까지 의심받았고, 일자리를 잃거나 평생 낙인이 찍혔다. 매카시즘은 단순한 정치 탄압에서 끝나지 않고 공포가 이성을 이기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 후 미국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았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두려워했고 다른 의견을 내는 일은 위험한 행동이 되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권리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매카시즘은 제도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하면 위험하다’라는 두려움을 남겼다.

 

역사는 트럼피즘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매카시즘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이용했다면 트럼피즘은 엘리트와 외국인, 언론에 대한 분노를 이용한다. 매카시즘이 사상의 자유를 마비시켰다면 트럼피즘은 사실의 자유를 마비시킨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지만 둘 다 불신과 증오를 이용해 사회를 갈라놓는 방식이 닮았다.

 

트럼피즘이 퍼지면 사회는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사실 대신 음모론이, 토론 대신 분노가 자리를 차지한다. 선거 결과조차 신념의 문제가 되고 사람들은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내 편인가?’만 따진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편 가르기로 피로해지면 시민들은 정치에 등을 돌리고 그 틈에 권력이 커진다.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서 천천히 약해진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보인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분노와 혐오가 넘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대화로 풀기보다 낙인찍기와 조롱으로 끝내는 일이 늘고 있다. 매카시즘이 공포로 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다면 트럼피즘은 분노로 민주주의를 지치게 만든다. 이는 또한 우리 모두의 언어와 감정이 피로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본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불씨는 바람을 타면 언제든 강을 건널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피즘을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면 그 불은 언젠가 우리 사회의 언어와 감정 속으로 번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나 헌법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고 말하는 방식 속에 있다. 그 불씨가 닿기 전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언어가 정말 우리의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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