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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말에게 말걸기] 재난의 언어

 

인류가 겪는 대재난은 어떻게 나에게 전달되고 수용되는가. 매체의 발달로 자연 재앙이든 인위적 재난이든 우리는 그 현상 현실을 빠르고 여실하게 전달받는다. 재난을 어떤 언어(매체)를 통해서 전달·수용 받고 의미화하는지에 따라, 재난을 이성적·감성적으로 처리하고 소비하는 양태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러·우 전쟁이나, 미국·이란 전쟁의 내용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야말로 인위적 재난의 앞순위에 놓이지 않는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를 빌딩에 충돌시키는 자살 공격으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폭발했다. 사망 2996명, 부상 2만 5000명의 피해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영상 장면으로 수없이 빠져들어 갔다. 그것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공유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놀라움[驚異]에 대한 목격 욕구도 작동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일본 동북해안에서 대 쓰나미 재앙을 겪을 때도 나타난다. 40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닥치고 2만 명의 사망·실종자를 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나미에 파묻히는 영상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이 영상 또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심리 기제 하에서 오래도록 소비된 측면이 있다.

 

재난을 전하는 전통적인 언어는 문자 언어나 구두언어였다. 구두언어는 전달의 범위가 제한되고, 공신력이 떨어진다. 반면 문자 언어는 근대 이후 신문 매체에 등장하여 그 기록성과 공신력을 바탕으로 지구적 대재난을 인류가 공동으로 감지하고 서로 공유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영상 언어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면서 지구촌의 대재난은 거의 실시간으로 그 재난 현실 현상의 여실함을 보여주는 영상 언어가 지배하게 되었다.

 

문자 언어로 대표되는 재난의 언어는 재난에 대한 메타 진술을 응축성 있게 나타내는 장점이 있다. 재난에 대한 메타 진술은 재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재난의 총체적 의미를 설명하고 그 영향을 예측하게 하는 데에 필요하고 유리하다. 그런데 세태는 변했다. 이보다 더 수용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재난을 현상으로 증언하는 영상이다. 요즘의 대중 수용자들은 재난 현장의 여실한 모습을 직접 보기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매체 차원에서는 영상도 언어의 일종이다. 영상 언어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재난 소식을 받아들이는 평균적 대중은 언어적 설명이나 언어적 분석보다는 재난의 실상 모습을 먼저 목격하고 싶어 한다.

 

재난이 인간과 세계의 존재론 차원에서 대단히 심오한 철학적 이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재난이 인류의 공존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류학적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재난은 인문학적 성찰의 주제이다. 결코 감정적 소비의 콘텐츠로만 지나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재난을 눈요기처럼 소비하는 풍조는 위태롭다. 재난은 궁극으로는 문학의 이슈로, 철학의 고뇌로, 공동체의 미래 의식으로 숙고 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고뇌가 당장의 해법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재난 현실 앞에서 무력해 보이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재난의 언어를 인문의 가치로 살려내고 심화하는 일은 재난과 인간의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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