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위한 패턴 연습 / 이안 시, 한연진 그림 / 상상 / 116쪽 / 1만 4000원
나는 기억력이 나쁜 게 아니라/ 나중에 도착할 기억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거지/ 메수트 한세르 씨,/ 당신은 죽지 말아요/ 날마다 일어나/ 날마다 당신의 식탁을 차리세요 (본문 中)
이안 시인의 여섯 번째 동시집 '시를 위한 패턴 연습'이 출간됐다.
'시를 위한 패턴 연습'에는 동그란 빨간 안경에 두 갈래 머리를 세 번 묶은 어린이가 등장한다. 이 아이는 삶의 난관을 마주한 '이모'를 향해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이모는 특정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아이가 말을 거는 이모는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이모이기도 하고 지진 잔해에 깔려 숨진 열다섯 살 소녀의 손을 잡고 있던 메수트 한세르 씨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처럼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다시 세상을 돕는 모든 이모들에게 시를 통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돌멩이와 나비', '코점이' 등에서는 작은 생명이나 사소한 존재에 대한 주목이 드러난다. 시인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일상과 주변의 사물에서 시의 출발점을 찾는다.
'코점이'에서는 고양이 무리 중 유일하게 코에 점이 없는 고양이가 소외되지 않도록 '코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존재의 가치를 회복시킨다. 또 '돌멩이와 나비'에서는 "쉴 때는 부디 저를 의자로 써 주세요"라고 말하는 돌멩이의 목소리를 통해 물성과 생명, 감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상상을 펼친다.
이안 시인은 이번 동시집을 통해 언어의 구조적 특성과 시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방식에도 주목했다. 회문, 받침 변화, 반복 구조 등 언어적 장치를 활용해 시 쓰기의 구조적 상상력을 탐색한다.
시인은 '왜가리가 왜?'에서는 회문 형식을, '이 아 가 야'에서는 받침 유무에 따른 조사 변화의 의미를 다뤘으며, '그림자 약속', '사이가 좋아지는 시', '젠가' 등에서는 언어유희를 기반으로 한 실험적 구성을 시도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