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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기록의 강박을 벗고 나답게 살아가기!

 

지난주에 일상에 지친 아내의 간절한 요청으로 괌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마주한 황홀한 석양을 보고,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보랏빛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사진만 찍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문득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록하기 위해 소비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을 사진에 연연하여 절묘한 감동을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가는 일’보다 ‘기록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은 늘 손에 있고 SNS는 우리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소환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절친을 만나는 때조차도 우리는 먼저 카메라 앱을 켠다. 이른바 기록 강박이 조용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기록은 나쁘지 않다. 사진은 기억을 더 선명하게 살려주고, 잊혀가는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힘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즐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남기기 위해 순간을 연출할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은 아주 오묘하게 전도된다.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피사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석양이 진 뒤 비로소 내 눈과 마음에 한가득 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순간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만으로도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록강박이 강해질수록 사진은 증명서로 쌓여만 간다. 내가 이만큼 잘 지내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명. 그러나 진짜 나다운 삶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편안하게 머무는 시간 속에서 피어난다. 그 시간은 반드시 기록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산책할 때는 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카페에서는 눈앞의 풍경을 사진이 아닌 ‘나의 감각’으로 음미해 보는 것이다. 그 순간의 냄새, 빛, 온도, 의식의 흐름까지 온전히 느끼다 보면, 기록되지 않아 더 소중한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결국 기록이 아니라 경험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날은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다. 사진은 또 다른 언어이자 표현방식이며 기억을 떠받치는 도구다. 중요한 것은 촬영이 나를 방해하지 않고, 시선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된다. ‘잘 찍어야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 내 마음에 닿는 장면을 자연스레 담으면 된다. 그러면 사진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작은 기억의 서랍이 된다.

 

정말 나다운 삶은 경험과 기록의 균형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순간은 찍고, 어떤 순간은 그냥 바라보고 즐긴다. 이 단순한 선택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순간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유—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다.

 

우리는 모두 기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기억의 주인은 언제나 ‘나’다.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나를 만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이 찍을 때인가, 아님 느끼고 살아볼 것인가?” 이 질문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록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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