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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적인 일상] 큰 나무 밑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낮은 짧아지고, 길 위에는 찬 기운이 내려앉는다. 사람의 마음 역시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 마음엔 어떤 균열이 생기곤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빠르게 지나간 올해는 잘 해냈나?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또 어떤 것들이 내 곁을 지나갔는지를 헤아려 보는 시간이다.

 

얼마 전엔 하얀 눈이 가득 내렸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폭신폭신한 예쁜 눈이었다. 즐거운 눈요기도 잠시, 금세 눈이 녹으면 길은 지저분해지고 날이 추우면 꽁꽁 얼어버려 걸음을 불편하게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석구석 젖지 않은 땅이 보인다. 큰 나무 아래, 눈이 온 흔적조차 없이 깨끗하다. 가지가 햇빛을 가리고, 줄기가 흔들림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은 나무의 넓은 그늘에 가려 땅까지 닿지 못한다. 작은 나무나 묘목에게는 그런 그늘이 없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온몸이 그대로 눈을 맞는다. 바람 한 번 크게 불면 금세 휘어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고난은 눈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감정의 폭설, 관계의 냉기, 가끔은 일상이 무겁게 느껴진다. 겨울은 우리를 피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마다 받아내는 깊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작은 변화에도 휘청거리고, 어떤 사람은 큰 시련에도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 차이는 화려한 재능이 아니라, 뿌리내린 땀 흘렸던 시간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눈이 쌓이지 않게 해주는 건 거대한 줄기가 아니라, 그 줄기를 지탱하기 위해 오래 쌓아온 세월인 것 아닐까. 거창한 계획이나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음을 갈고 닦은 시간들. 누군가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조용한 성실함. 그런 것들이 모여 어느 순간 ‘큰 나무’가 된다. 그리고 큰 나무가 되면 시련이 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그늘이 생긴다. 시행착오도, 흔들림도, 예상 못 했던 겨울의 기운도 그 밑에는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내가 종종 ‘겨울이 두렵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 계절 그 자체보다 그 계절을 버틸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다. 특히 연말이 되면 더 그렇다. 남들이 이룬 것과 나의 공백을 비교하게 되고, ‘잘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이 조용히 어깨 위에 앉는다. 하지만 과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나무도 한순간에 자라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해마다 눈을 견디며, 봄이 오면 다시 잎을 피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고, 크기가 아니라 단단함이다.

 

또한 나무가 자랄 땐 혼자 힘으로 자랄 수 없다. 햇빛이 비춰주고, 바람이 흔들어주고, 때로는 비가 땅속을 적셔주어야 나무는 자란다. 사람의 성장도 다르지 않다. 주변의 응원, 관계가 남긴 온기, 혹은 때로는 나를 단련시킨 시련까지, 모든 것이 한 그루의 생명을 키우는 양분이 된다. 올해를 돌아보면, 나를 지탱해 준 사람과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의 존재는 나의 뿌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흙이다.

 

스스로 다시 묻는다. 올해는 잘 살았나? 모르겠다. 저번 겨울보다 큰 나무가 되었나? 그것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건, 급하게 흔들리지 않고, 필요할 때는 멈추고, 다시 걸어갈 때는 천천히 방향을 맞추는 것. 그렇게 자기 안에 그늘을 만들어 갈 때, 시련은 단단해지는 성장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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