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길을 가는 나그네가 있다. 목이 타고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기지만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길 역시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암흑 속을 더듬어 걸어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번민하기도 한다. 또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등불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아마도 그 등불의 존재가 다름 아닌 종교일 것이다.
그러면 종교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종교(宗敎)의 한자 의미는 ‘으뜸 되는 가르침’, ‘근본적인 교훈’이라고 풀이된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 즉 현실 이상의 영원한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한편, 종교(Religion)의 영어 어원은 ‘다시 묶는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을 다시 묶느냐면 하나님과 사람을 다시 묶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래 묶여 있다가 끊어진 것,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묶어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는 “사람은 종교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람은 식욕과 번식욕 등 자연적· 생리적인 욕구와 함께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교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은 유대감을 가지게 되는 한편, 사회생활을 올바르게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윤리의식도 형성하고 키워 나올 수 있었다. 아울러 종교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삶의 역경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제공하는 역할도 해오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계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모태신앙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혹은 어떤 특별한 계기로 인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일반적으로 가족의 종교를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은퇴한 남자들이 종교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이처럼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층 더 종교에 대한 목마름을 지니고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현실적인 사유는 죽음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나이가 들어가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층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이 사후세계를 인정하게 되면, 삶이 변화된다. 보다 진지하게 내 삶을 들여다보고 신의 가르침을 따르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거창한 질문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상당히 낭만적인 답변이다. 인간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아직껏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영생을 위해 미이라를 만들기도 했고,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발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죽음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은 가능해졌을지언정 영생을 얻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답 찾기를 단념한 인간은 이제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제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라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연히 절대자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이는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죽은 뒤 천국으로 가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천국이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미래세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어떤 사유를 가지고 종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든 그들은 신앙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삭이는 평정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종교가 가진 그 어떤 힘이 아닐까? 이처럼 종교는 죽음의 공포, 번민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선하게 살아가도록 이끈다. 나 역시 이런저런 계기와 사유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로서의 본분을 될 수 있는 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