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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 소녀의 자전거

 

기다릴 수 있음은 행운입니다.

 

기다림의 반대편에는 조급함이 있고, 체념이 있고, 재촉이 있습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조건에 따라 기다림의 반대편에 서는 건 제각각입니다. 기다림이 시간을 의미할 때, 반대편에 서는 건 조급함입니다. 기다림이 희망을 품은 상태라면 체념은 절망에 짓눌린 상태이고, 기다림이 배려로 쓰일 때 코웃음을 날리는 건 재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불행이기보다 다행에 가깝습니다.

 

다행이기로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봄을 기다릴 수 있음은 겨울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도 나처럼, 그늘진 시간을 뒤로 하고 온기가 머무는 계절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일정표에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기다림이라는 두근거림으로 빼곡할 테니까요.

 

올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그래서겠지요. 겨울과 작별하려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들에게 겨울은 꽁꽁 얼어붙은 땅과 하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아는 계절과 상관없는 겨울입니다. 그 겨울이 지구별 곳곳에 눈물 폭탄을 투하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와 우즈베키스탄은 벌써 몇 해째 겨울입니다. 봄은 없고 겨울만 연속인 건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겨울은 공습경보와 굶주림의 다른 이름이라서, 봄은 태어나기도 전에 영양실조로 쓰러집니다.

 

오지 않는 봄은 우리가 사는 땅에도 엄연합니다.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봄은 전쟁과 기아의 계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지 않는 봄은 조급함과 체념과 재촉을 지나, 결국 도피로 모습을 바꿉니다. 기다림으로부터의 도피는 삶으로부터의 도피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완전한 결별을 위해 한강 다리 난간에 멈춰서고, 인터넷 사이트에 “내일 죽을 겁니다”라는 글을 올리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춥습니다.

 

당신과 나라고 달라질 건 없습니다. 당신이 외투로 버티는 겨울을 나는 털모자로 견딜 뿐입니다. 당신과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만의 겨울을 버티고 견딥니다. 성적과 취업, 결혼과 육아, 질병과 이별, 고독과 우울이라는 겨울 말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맞서는 용기를 또 다른 겨울에서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버리려고 한강 다리 난간에 멈춰 섰던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를 살린 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소녀였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 앞에서 멈춰 선 소녀의 자전거 바퀴가 죽음의 강을 건너려는 그를 붙들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내일 죽을 겁니다”라고 글을 썼던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만 남은 그의 삶을 연장시킨 건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댓글이었습니다. “내일은 내 월급날이야. 같이 맛있는 것 사 먹자.” “모레는 나랑 같이 노래방 가지 않을래?” “글피에 영화 보러 가자. 아바타 개봉했더라.” 그렇게 꼬리를 문 댓글은 한 달 동안의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내게도 신의 형상과 음성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신은 자전거를 탄 소녀의 모습으로 오셔서, 댓글 가득 아기천사와 관세음보살을 남겼습니다.

 

이 겨울, 당신의 봄은 어디만큼 왔습니까.

 

당신의 겨울 너머에도 소녀의 자전거가 멈춰 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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