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시대에 한옥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한옥은 한때 양옥형태의 잘짜여진 주거공간에 밀려 우리곁을 떠났었다. 그 한옥을 다시 찾고 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공존하는 한반도의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독특한 주거 형식이다. 한옥의 형태는 지방에 따라 구조가 다르다. 북부 지방에서는 외부의 냉기를 막고, 내부의 열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형태의 겹집 구조와 낮은 지붕의 한옥이 발달했다. 이에 비하여 남부 지방에서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는 홑집 구조와 마루 구조가 발달했다. 한옥은 주택의 기능면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에서도 뛰어난 건축물로 뽑힌다. 한옥의 재료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들을 사용했다. 창에는 천연 나무로 만든 한지를 발랐다. 바닥에는 한지를 깐 뒤 콩기름 등을 발라 윤기를 냈고 방수의 역할도 하게 하였다. 부유한 집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올렸고, 서민들이 거주하는 민가에서는 대부분 볏짚으로 이은 초가지붕을 얹었다. 초가지붕은 겨울에는 열을 빼앗기지 않고 여름에
뒤주는 쌀.콩.팥 등 곡식을 담아 두는 나무로 만든 궤를 말한다. 곡식이 습기나 쥐,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통나무나 널빤지로 짜서 튼튼하게 만든다. 뒤주의 재료로는 회화나무가 가장 좋고 무쇠나 놋쇠로 장식하기도 한다. 쌀뒤주는 보통 쌀 1∼2가마, 잡곡뒤주는 3∼4말 정도가 들어가는 크기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월촌면 장화리에 보존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회화나무로 만든 약 70가마들이 대형 쌀뒤주는 옛날 한국 부호들의 모습을 알려 주는 유물이다. 최고의 실업률과 물가고에 수입이 줄어 살기 막막한 요즘이다. 지난 2007년 가을 시흥시 신현동사무소에 등장했던 쌀뒤주가 떠오른다. 동사무소 민원실 내에 쌀뒤주를 마련하여 쌀이 필요한 저소득 가정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쌀 나누기 운동을 통해 17명의 후원자가 1,210kg의 쌀을 기증했다. 혼자사시는 노인들이 우선 쌀뒤주를 이용하도록 했다. 호응은 좋았다. 지난 20일 오산시 대원동 주민지원센터에서 이기하 오산시장과 주민자치위원장이 사랑의 쌀뒤주에 쌀을 채우는 장면이 목격됐다. 오산시가 어려운 이웃들이 쌀을 직접 퍼갈 수 있는 ‘사랑의 쌀뒤주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국민의 대표적인 간식거리다. 그러나 이 맵고 달콤한 떡볶이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다. 떡볶이는 옛날 ‘떡찜’이라고 불렸다. 궁중의 정월요리였던 떡볶이는 고추 장 대신 간장으로 양념을 했다. 떡볶이는 가래떡을 주원료로 쇠고기와 파, 미나리, 당근, 버섯을 넣고 간을 맞춰 볶은 후 오목한 그릇에 담고 마름모꼴로 썬 달걀 지단을 얹고 실백을 뿌리거나 호두와 은행을 얹는다. 조선시대에 이충이라는 사람이 갖은 야채를 볶아서 무쳤더니 맛이 너무 좋아서 왕에게 선물한 것이 잡채의 유래인데 이충은 그 덕에 호조판서 까지 오르게 됐다. 지금의 잡채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잡채에 순대와 떡볶이 국물을 넣고 센 불에 볶은 순대볶음은 궁중요리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퓨전요리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신당동에 떡볶이 집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때는 떡볶이 집이 그리 많지 않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본격적인 떡볶이 골목이 되어 갔다. 그 당시 떡볶이는 배고픔을 달래는 서민들의 음식으로 연탄불에 만들어 주었다.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
도시락 하면 밥을 뒤덮고 있는 계란 후라이가 생각난다. 한달에 두 서너번이 고작이건만 없는 형편에 크나큰 혜택이었다. 무엇보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변변치 않은 찬거리로 도시락을 채웠을 어머니의 고충이 더욱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오전 2시간이 끝나면 도시락 한개는 동이난다.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챙겨온 두번째 도시락은 오후3시면 모두 바닥을 보인다. 그리고는 밤 늦게까지 허기진 배를 움겨잡고 버티기 일쑤였다. 한동안 도시락을 잊고 살았다. 주말에 산을 찾으면서 도시락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그 옛날과는 달리 찬거리도 다양하고 과일까지 곁들이면 왕의 밥상 이상이었다. 요즘은 하루에 섭취하는데 필요한 칼로리까지 계산하며 엄정된 재료로 도시락을 싼다. 우리조상들은 깨소금을 속에 넣거나 겉에 발라 둥글게 덩어리지은 밥을 간단히 싸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릇도 일정하지 않아 가랑잎에 싸거나 많이 쌀때는 대, 버들, 칡덩굴 등으로 만든 자그마한 고리짝에 담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알루미늄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를 활용해 도시락을 만들었고 그 후 알루마이트를 씌운 도시락이 공급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합성수지 또는 플라스틱으로도 도시락을
요즘 도심지 할인마트에 가면 고로쇠 수액을 펫트병에 담아 파는 행사가 많다졌다.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잘 팔리는 품목중 하나다. 고로쇠는 고로실나무·오각풍·수색수·색목이라고도 불리는 단풍나무과의 낙엽 교목에 속한다. 산지 숲속에서 높이 20m크기로 자란다. 고로쇠 나무의 1m 정도 높이에 채취용 드릴로 1∼3cm 깊이의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통에 받는다. 수액은 해마다 봄 경칩 전후인 2월 말∼3월 중순에 채취하며, 바닷바람이 닿지 않는 지리산 기슭의 것을 최고품으로 친다. 잎은 지혈제로, 뿌리와 뿌리껍질은 관절통과 골절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가 최근호에서 ‘한국인들은 단풍나무 수액을 즐겨 마신다’며 한국의 고로쇠 열기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또 단풍나무 수액을 끓여서 시럽으로 만들어 먹는 북미지역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이를 생으로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면서, 한번에 20리터(5갤런) 가량을 마시는 것이 좋은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많은 양의 고로쇠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따뜻한 방에서 짠 과자나 오징어와 같은 음식을 곁들여
유사시 한국영토 방어에 중점을 둔 한·미 연합연습인 2009 키 리졸브·독수리(Key Resolve · Foal Eagle) 연습이 오는 9일부터 20일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된다. 이번 연습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주한미군 1만2600여명과 해외주둔 미군 1만4000여명 등 2만6000여명이 참가한다. 연습 중 한반도로 전개될 항모는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9만7000t)가 될 가능성이 크다. 조지 워싱턴호는 비행갑판 길이 360m, 폭 92m에 달하며 돛대까지의 높이는 20층 빌딩과 맞먹는 81m 다. 축구장 3배 크기 1만8211㎡ 비행갑판에는 슈퍼호넷(F/A-18E/F)과 호넷(F/A-18A/C) 전투기, 조기경보기 E-2C(호크아이 2000) 등 항공기 66대가 탑재 돼있다. 그밖에 이지스 순양함 4척과 7척의 구축함, 잠수함 등이 항모전단을 구성하고 있다. 이번 연습 기간에는 한.미 연합 야외기동연습인 독수리훈련(Foal Eagle)도 실시되며 한국군은 군단급, 함대사령부급, 비행단급 부대가 참가한다. 유엔군사령부 및 군 당국은 지난달 18일 군사정
살구나무는 3월 중순부터 흰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6∼7월이면 노란 열매를 맺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무병장수를 상징한다. 기원전에 아르메니아 지방에 까지 전파되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것은 1세기 무렵이다. 18세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까지 건너갔다. 이것이 미국이 세계 최고의 살구 산지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전해진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부 이북지방의 산과 들에서 야생해온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살구나무의 높이는 5m에 달하고 나무 껍질은 붉은빛이 돌며 어린 가지는 갈색을 띤 자주색이다. 꽃은 관상용으로, 열매는 비타민A, 인, 단백질, 철분 등을 함유해 영양식으로 이용되며 살구씨는 미용뿐만 아니라 폐와 기관지의 기능을 강화하고 변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방에서는 종자를 행인(杏仁)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해열·진해·거담·소종 등의 효능이 있어 기침·천식·기관지염·인후염·급성폐렴·변비에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종자를 달여 마신다. 또한 종자는 여성의 피부 미용에도
도회지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여건만 갖춰진다면 농촌에 내려가 여생을 즐기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귀농현상은 요즘들어 전반적인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 특이할 사항은 20~30대 청년층이 직업을 아예 농업으로 전환해 농촌에 정착해 사는 경우도 많아졌다. 어느해 부터인가 도심지 주변에 주말농장이 생겨나 1주일에 한번정도 가족과 함께 농장에 가 쌈도 키우고, 고구마도 재배하며 농촌생활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경우도 늘어갔다. 젊은 층들이 썰밀처럼빠져 나갔던 농촌에 다시 이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귀농인들에 대한 지원책도 늘고 있다. 전남 영암군은 전 가족을 데리고 귀농하면 월 40만원씩 3년간 귀농 정착금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군은 또 빈집을 구매 또는 임대해 수리할 때 필요한 자금도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한다.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노령화에 따른 젊은 농업 인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경기도도 도시지역 유휴인력의 농촌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귀농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도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300명, 내년 2천명의 도시인력을 농촌지역에 취업시킨다는 계획이다. 귀농학교에서는 상.하반기로
각종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붉은 색을 뒤집어 쓰고 길거리에 서 있던 우체통이 우리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군대간 애인의 소식을 기다리던 유일한 수단은 편지였다. 도회지로 유학간 자식들의 소식을 알수 있는 방법도 역시 서신이었다. 이집 저집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던 유선전화는 무선전화로 발전했고 펜을 사용하던 편지는 인터텟 이메일을 통해 순식간에 목적지까지 전달된다. 대한민국의 우체통은 1884년에 우정총국이 출범하면서 처음 설치됐다. 1900년대 전후의 한국의 우체통은 목조의 사각함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에 현재와 같은 적색의 원형 우체통이 보급되었다. 광복 이후 적색은 유지되면서 녹색을 함께 칠하기도 했다. 이후에 대부분 사각형으로 교체되었다. 우리나라 영토 끝 점인 독도와 마라도, 백령도에는 우체통이 설치되어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에 설치된 간절곶 우체국은 해맞이 축제 상징 조형물로, 전용 무료 엽서가 비치되어 있다. 이 엽서에 아름답고 소중한 사연을 담아 우체통에 넣으면 배달해 준다고 한다. 충청남도 천안시의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 세워진 밀레니엄 우체통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우체통이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6년간 전국에 있는
“머리에 쇠똥도 안벗겨진 놈이...”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정수리 부분에 누런 지방질이 붙어 있다. 태지라고 부르는데 아이가 백일이 지나면서 이것이 서서히 떨어져 없어진다. 이걸 예전에 쇠똥이라고 불렀다. “쇠똥도 안떨어진 놈” 이라는건 그만큼 어린 놈이란 뜻이다. 소가 여물을 먹고 배설하는 냄새나는 쇠똥은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렇게도 쓰인다. 지난해 6월 남양유업 천안공장에는 쇠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던 낙농업자들이 격분한 나머지 공장 안으로 진입하며 간판에 쇠똥을 덧칠한 것이다. 이들은 공장에 납품하는 원유가를 높여 달라고 시위중이었다. 이렇듯 쇠똥은 굳기전에는 심한 냄새를 풍겨 불만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수분이 마르면 훌륭한 땔감으로 변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는 쇠똥을 땔감이나 집을 단장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용인시가 냄새 나는 쇠똥을 말려 보일러 연료로 사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우농가에서 나오는 쇠똥을 발효.건조시켜 석탄형태의 난방연료로 만든뒤 우사에 깔린 톱밥과 함께 걷어낸 쇠똥을 하루 반나절 발효시킨 후 건조기에 넣어 다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