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공개된 ‘2019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2019)’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10점 만점에 7.769점으로 집계된 핀란드가 차지했다. 핀란드는 지난해 보고서에서도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한국은 5.895점으로 54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57위에서 세 계단이 올랐다. UN지속가능개발솔루션네트워크(SDSN)가 작성한 2019년 보고서에는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포함하는 변수를 토대로 156개국에 순위를 매겼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과 1인당 국민소득, 관용에 대해서는 상위권이었지만 사회적 자유, 부정부패, 사회적 지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2, 3위를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차자했고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오스트리아가 순서대로 4위부터 10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19위, 일본은 58위, 중국은 93위로 나타났고, 최하위인 156위는 남수단이었다. 조선 19대 숙종 임금의 암행(暗行)에 관한 일화는 많이 회자되고 있다. 어느 날 백성들의 민심을 파악하고자 민간복으로 변장하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례 선생님이 신랑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신랑에게 묻습니다. 예쁜 신부를 만나면 3년이 행복하고, 착한 신부를 만나면 30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신부를 만나면 평생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신랑은 어떤 신부를 원하십니까?” 신랑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지만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신부라면 좋겠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다음엔 신부에게도 질문했다. “신부에게 묻습니다. 잘 생긴 신랑을 만나면 결혼식 세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돈 많은 신랑을 만나면 통장 세 개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스한 신랑을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신부는 어떤 신랑을 원하십니까?” 신부는 미소로써 대신하지만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신랑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표정을 나타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세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신부와 가슴이 따스한 남자가 만나 가정을 꾸린다면 누구보다도 멋진 가정을 이룰 것이다.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에도 ‘이제 두 사람은/비를 맞지 않으리라.//서로가 서로에게/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이제 두 사람은/춥지 않으리라.//서로가 서로에게/따뜻함이 될 테니까//이제 두 사람은
전통시장을 찾으면 언제나 사람 냄새 나는 인정과 활기가 넘쳐난다. 전통시장이 저렴하고 농수산물이 신선해 평소 자주 이용한다. 내가 즐겨 찾는 시장은 집에서 가까운 파장시장이다. 파장동은 파초가 많아 파장골 혹은 파장굴로 불렸다. 정조 임금이 입도(入道)에 만석거(萬石渠)를 축조하고 연(蓮)과 파초를 심었는데, 여기에 어른이란 뜻이 있는 ‘장(長)’ 자를 더하여 지명이 되었다. 정조 대왕이 그린 ‘파초도’는 보물 제743호로 지정될 만큼 정조의 파초도 사랑은 대단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장 입구에 ‘북수원시장’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까닭은 이러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장이 침체기를 맞아 매출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전통시장인 파장시장이 공무원연수원이 이전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시장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서 상가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 전통시장이 대형 마트와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장시장은 파장동 지명을 가져와 사용하다 파장(罷場)이라는 명칭이 장이 끝난다는 의미가 있어 이름을 놓고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2016년 ‘파장’이라는 말이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상인들의 공모를 통해 지난 2017년 1월 31일
새해 기해년을 맞아 올해는 더욱 보람찬 한 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라는 글귀를 읽게 되었다. 이 글귀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어 여순감옥에서 사형 당하기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여러 유묵(遺墨) 중 하나이다. 안중근 의사는 명필이었다고 한다.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예리한 결기가 서려 있어, 손끝이 아닌 심장으로 써 내려간 게 바로 그의 필치라고 한다. 무엇보다 안 의사는 노력하는 사색인이었다.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보물 제569-2호인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荊棘)’이 그 한 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만큼 독서열은 대단했다. ‘백인당중유태화’는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장공예(張公藝)의 이야기에서 유래하는데, 백번 참으면 큰 화평이 있다는 뜻이고, 구세동거(당)는 9대에 걸쳐 이루어진 친족이 한집에 산다는 뜻으로, 집안이 매우 화목함을 말한다. 옛날에 장공예(578~676)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3대 4대가 살기도 어려운데 9대가 한집에서 살았다. 99세 동안 한 집에서 9대 900명
우리 삶은 하루하루 스쳐 지나는 바람결 같다. ‘스쳐간다’는 말 그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인생에 잠시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과 기분 역시 살아오면서 계속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실망하곤 한다. 기쁨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법은 없다. 고통을 겪게 될 때, 당장 그것이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희망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불행은 자연스런 흐름에 저항할 때 생기는 거친 파도이다. 현재의 한 순간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그 자리는 계속되는 또 다른 순간들로 메워진다. 어떠한 고통이나 불쾌한 상황 역시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식을 마음에 새겨두면, 역경에 직면한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어느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이 하도 가난하여 우유급식 값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돈 가져오라며 집으로 돌려보내서 어머니에게 울면서
계절은 어느새 만추에 접어들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 야트막한 흙돌담을 걷는다. 그리고 흙돌담 너머 저만치 장독대가 보인다. 나란히 줄 세워 앉혀 놓은 항아리마다 시간이 익어간다. 뜨락에 항아리가 놓인 것을 보면 왜 그런지 마음이 고향 집에 있는 듯하다. 어릴 적에 보았던 어머니의 장독대는 뒤란에 있었다. 큰 배불뚝이 소금 항아리에서부터 조그맣고 예쁜 항아리까지 반질반질했다, 얼마나 닦고 관리를 잘했으면 그토록 윤기가 났는지 항상 정갈한 장독대였다. 가을에 콩을 수확해 타작을 하고, 가마솥에 콩이 뭉근하게 익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익은 콩을 꺼내 큰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들고 집안에서 냄새나게 띄워 겨울을 보냈다. 음력 정월이면 장을 담그고 갈무리하여 숙성하면 깊고 맛있는 간장과 된장이 되었다. 고추장은 해마다 담그는데 김장 다 해놓고 가을 끝에 했다. 나는 어떻게 살다 보니 한 집에서만 26년을 살았다. 그저 교통 좋고 호수와 공원이 있고, 광교산 등산하기가 좋았다. 파장 시장(작년부터 북수원 시장으로 명칭 바뀜)도 가깝고 대형 마트, 병원, 학교 등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처음에는 장을
불현듯 지금껏 글을 쓰게 된 원동력과 계기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결핍과 슬픔이 문학의 감성을 키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뒤란에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는 공동 우물이었다. 1년에 한 차례씩 음력 칠월 초하루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물물을 다 퍼내고, 청년들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 깊은 우물을 청소하였다. 그날은 소를 잡고 무병장수를 빌며 동네가 잘 되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냈다. 나는 언제나 그 우물가에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특히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우물 속에 동그랗게 내 얼굴이 비치고 거기다 노래를 부르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어느새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물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내 마음의 근심 걱정을 씻어 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르시시즘에 도취되듯 청아하게 울려 퍼진 노래로 기분이 좋아졌다. 뒤란에 홀로 나와 우물 속 들여다보면/ 키 높은 미루나무 별빛 달빛이 잠기고/ 괜스레 느껴 울던 슬픔 잔잔히 잦아드네/ 동그란 내 얼굴에 눈물처럼 고인 샘물/ 가만히 노래 부르면 낭랑
뮤즈(Muse)는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인에게 재능과 영감을 불어넣는 아홉 여신의 하나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명상하다.’ 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뮤즈는 자신에게 영감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단테의 뮤즈는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그의 나이 9살에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인 베아트리체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 그 후 9년 만에 길에서 잠시 스치듯 짧은 만남에도, 단테는 평생 베아트리체를 사모했다. 결혼 할 수 없었던 관계에서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단테는 18살이 되던 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소유하지 못했던 여인에 대한 사랑을 창작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 완성한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강렬한 영감을 남긴 대표적 뮤즈로 기억되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첫 만남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지요?”라는 말과 함께 꿈결처럼 살로메에게 빠져 들었다. 그가 건넨 이 첫인사는 세인들에게 일파만파로 번져, 꿈같은 연인을 두고 떠올리는 유명한 말이 되었다. 니체는 정말 꿈을 꾸고 있
한 여름에 들어서면서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농사짓는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농작물을 가꾸어야 한다. 어머니는 수인선 전철이 들어서면서 오래도록 살았던 고향집이 없어져 아파트에 사시다가 전북 고창에 땅을 마련하시고 집을 지으셨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공기 좋고 땅이 좋아 내려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내 땅에서 농사짓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기에 그 꿈을 이루신 것이다. 그리고는 그해에 농사 지신 것을 골고루 택배로 부쳐주셨다. 옥수수부터 풋고추, 블루베리, 고구마, 콩, 김장거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성의 증표를 보내주셨다. 전원생활을 누리기엔 너무 땅 덩어리가 커서 도리어 힘에 부치셨다. 또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기껏해야 우리가 고창에 가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안 되었다. 수원에서 고창까지 자동차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3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어느 날 전화를 드리니 “날마다 예쁜 새 울음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몰라, 니가 들으면 참 좋을 텐데. 여긴 정말 시 쓸 거 많다. 어서 오너라!” 하셨다. 이름 모를 새들의 맑은 울음소리를 들으시면서 딸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시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영화 한 편을 소개하였다. 그 영화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영화 장면을 보며 오래전에 읽었던 원작 소설의 내용이 떠올랐다.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가 1982년 노벨문학상 ‘백 년 동안의 고독’ 수상 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로, 19세기 말 콜롬비아 카리브해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세월의 흐름과 죽음, 질병을 뛰어넘는 한 여자와 두 남자 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아버지 뜻에 따라 유럽 유학파 의사인 잘 생기고 돈도 많은 ‘후베날 우루비노’와 결혼을 해버린다. 플로렌티노는 수많은 여자들을 탐닉하며 실연의 상처를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다시 그녀와 조우하면서 확신을 잃는다. 그때부터 그는 언젠가 페르미나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믿고 그녀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돈과 명예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마침내 페르미나의 남편 우르비노 박사의 장례식 때, 51년 9개월과 4일을 기다려온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작가는 제목처럼 치명적인 사랑을 콜레라에 비유하고 있다. 배경이 19세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