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춘래불사춘 지난 주말, 모처럼 바깥나들이 했다. 쥐똥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발갛게 져버린 벚꽃의 아쉬움을 덜어주었고, 연둣빛 신록이 어지간한 꽃무리보다 나았다. 하지만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더러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서 제법 추웠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동행이 죄다 춘래불사춘이라 한탄하니, 왕소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가 시진핑의 주동작위, 일대일로로 바뀌면서 힘을 뽐내고 있다만, 고래로 중국 한족은 외래 민족과 전쟁만 하면 졌다. 오죽하면 북쪽 사람에게 졌다(敗北)는 말이 관용어로 굳어졌을까. 한나라 원제 시절, 강성한 흉노족과 화친을 맺고자 후궁 중 한 명을 골라 시집을 보내는데, 이때 뽑힌 사람이 왕소군이다. 북방으로 끌려가야 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비파를 연주했는데,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에 홀려 날갯짓하는 것을 잃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는 경국지색이다.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그녀를 기려 지은 시에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나온다. 나라를 지킬 변변한 장수 한 명이 없어, 가녀린 여인을 공물 삼아 화친을 맺어야 하는 한나라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하긴
1. 영화 ‘왓 위민 원트’는 할리우드가 허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의 최대치가 아닐까. 주인공인 멜 깁슨은 여자를 아주 우습게 아는 남성우월주의자인데, 새로 온 여성 상사에게 밀려난다. 어쩌다 초능력이 생겨서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초능력으로 승승장구하는데, 자기에게 늘 쌀쌀맞게 굴던 식당 종업원을 홀려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꿈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뒤로 연락도 않던 퇴근길, 그에게 바람맞았다고 생각한 마리사 토메이가 길을 막아서고 묻는다. 너 게이지? 게이가 아니라면 그렇게 멋진 밤을 보내고 어떻게 이렇게 연락 두절하고 잠수 탈 수 있어? 게이 맞지? 그녀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멜 깁슨은 그렇다, 나는 게이라고 말한다. 여자 마음을 읽게 된 뒤로 그가 변했다는 유쾌한 증거로 웃어넘기면 그만이다만, 사실 양성평등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변혁은 가진 자의 자각과 양보로 이뤄진 적이 없다. 변화는 언제나 제도가 바뀌고, 법으로 보장되며, 지키지 않으면 처벌당하는 강제 규정이 마련된 뒤에야 더디게 온다. 2. 코로나 시국 이후로 우리나라가 알고 보니 세계적인 모범국가이고 선진국이더란 보도가 잇따른다. 아닌
1. 쌍둥이 배구선수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폭로로 소란하다. 중학생 때부터 동료 여럿을 때리고 부모를 욕하고 돈을 뜯고 칼로 협박도 했다니 기가 막힌다. 대회 나가 성적만 내면 모든 게 용서되는 작금의 엘리트 학교 체육이 이런 괴물을 빚은 게 아닌가. 어린 학생에게 사회성과 인성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와 지도자들도 호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걸 관행이란 이름으로 용인하고 어쩌면 조장하기도 했던, 금메달 지상주의 대한민국 전체가 반성할 일이다. 쌍둥이의 악행이 고발된 뒤로 다시 또 다른 선수 두 명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고환을 걷어차인 피해자는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사과는커녕 ‘부랄 터진 놈’이란 모욕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학생 때 저지른 잘못과 뉘우치지 않는 모양새는 남녀가 동일했는데, 폭로 이후의 대처는 약간 달랐다. 쌍둥이와 부모, 구단 등 관계자들은 짧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침묵 속에 숨었고(무기한 출전정지라지만, 그 무기한이 ‘언제고 때만 되면’이란 뜻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른 선수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남은 기간 출전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여론도 조금 다른 듯하다. 쌍둥이
1. 승어부(勝於父)란 말이 있다. 자식이 가문을 빛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집 자식이 승어부했다는 말은 큰 칭찬이어서, 듣는 이마다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존재다. 아버지는 금지하고 벌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과 공존하는 덕성을 사회성이라 하면, 아버지는 바로 사회성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는 수시로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공중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어기면 제재를 가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아이에게 아버지란 압제자이며 훈육자이며 벌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류의 전통이다. 무서운 아버지, 그를 이겨야만 하는 아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대를 거듭해서 전해질 끝나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2. 아버지 이기기가 가끔 엉뚱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뛰어난 소설가였지만, 극우의 나팔수란 평가도 듣고 있는 이문열이 좋은 예이다. 그의 아버지 이원철은 서울대 농대 학장을 지낸 인텔리였지만 가족을 버리고 월북했다. 정보과 형사들이 노다지 찾아와 남편 행방을 대라며 이문열 어머니를 두들겨 패서 야반도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 고난을 겪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