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울릉도에서는 사상 첫 공습 경보가 울렸다. 3일에도 북한은 ICBM 추정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태원 참사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안보 위기가 엄습한 것이다.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에 경제 위기가 닥쳤고, 이태원 참사로 안전에 대한 위기가 닥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보 위기까지 닥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경제 위기는 해결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서, 지금 정부의 능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경제라는 존재는 망가지기는 쉬워도 다시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안보 위기의 경우, 윤석열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이 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진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고, 다시금 ICBM추정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국제적 차원의 이슈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는, 우리의 적절한 수위의 대응과 국제 사회와의 외교적 공조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적절한 대응이라고 함은, 북한의 도발 의도를 알고, 이런 의도에 말려들지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참사는 세월호 참변 이래로 또다시 전 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주었다. 일주일 가까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참혹한 사진과 영상이 떠나질 않는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되었는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의 국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찹하기 그지없다. 일제하 3·1혁명이 세계 곳곳에 각인된 이유는 그 시위 방법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이었기 때문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 전국의 거리를 붉은 티셔츠로 물들이며 열광했지만, 쓰레기 하나 없이 돌아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인 우리였다. 촛불혁명 때도 민심의 거대한 물결과 함성이 터졌지만 차분했고 질서정연했다. 전 세계가 부러워했던 민주시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순간에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혹자는 서양귀신 놀이에 빠진 청년들을 비판한다. 외국 것이라고 탓하자면 크리스마스는 왜 명절이 되었고, 불꽃놀이는 왜 하고, 부처님오신 날의 연등행사는 또 왜 하는가. 문화는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용되어 흡수되고 재창조되는 것이다. 핼러윈 축제도 그들 MZ세대에게는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는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근로자가 코로나로 인하여 사망하는 경우, 유족은 이것이 산재로 인정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코로나 감염경로를 파악하기 힘든 요즈음은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근로자의 코로나 감염이 업무수행과 관련성이 있고, 코로나가 근로자의 사망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산재로 인정되어 유족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근로자가 코로나에 감염되었으나 그 감염경로 파악이 어려운 경우에는,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 중 감염될 가능성과 업무 이외의 사적 활동에 의하여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비교·평가하여 업무관련성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코로나 감염자에 대하여 역학조사를 하던 시기에는 비교적 근로자의 동선에 대한 파악이 수월하였으나, 더 이상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게 되면서 이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근로자가 수행했던 업무와 작업환경, 다양한 자료를 통한 근로자의 사적 활동에 대한 파악을 토대로 근로자의 코로나 감염이 사적 활동에 의하여 발생하였을 가능성보다 업무 수행 과정 중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를…
나의 삶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겸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어떠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사명을 두고 있는 사람은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자신이 아직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진리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보이는 지고한 빛에 일치하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그 빛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진리에 둔감한 사람들은 과거의 인생관, 과거의 생활 방식을 고집하며 그것을 옹호하려고 한다. 신앙상의 모든 기만 중에서 가장 잔인한 기만은 어린이들에게 그릇된 신앙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이 세계와 자신의 생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 그 둘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였을 때, 거기에 대해 어른들은 자신들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또는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하지 않고, 몇천 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이 생각한 것, 그리고 어른들 자신도 믿고 있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대답을 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생명 대신, 정신 건강을 해치는 독약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참으로 선량한 사람들의 겸
2022년은 북한의 무력시위 한 해가 될 것 같다. 북한은 연초부터 탄도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더니 8월 한미합동훈련을 계기로 핵무기의 선제적 공격 가능성을 공표하면서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을 명목으로 단거리 및 중거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였다. 10월 들어서는 2018년9월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육상 및 해상 완충구역내에서의 포사격을 실시하면서 남북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앞으로 군사정찰위성 또는 우주개발을 위한 인공위성이라고 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판단되는 7차 핵실험, 그리고 우리 군사 활동이나 대북전단 등을 이유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무력도발, 그리고 사이버 테러 등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무력시위는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립구도하에서 ‘러시아 따라하기’ 성격이 짙지만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불만과 대항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북한 주도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어려운 것은 핵무기는 남한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선전도 포기하고 전술핵 무기의 공격대상이 남한 주요군사지휘시설 등이라고 밝히는 북한의 경직된 태도에
제봉 고경명( 霽峰 高敬命. 1533~1592). 큰 시인이요, 의병장이었다. 장흥이 본관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조선의 고위관료를 지냈다. 약관 스물에 진사시험 장원, 스물 여섯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영광은 예외 없이 고난을 수반한다. 사시사철 온몸에 질투와 시기의 화살을 맞기 때문이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제봉은 승승장구하다가 임관 5년만에 정치사건에 휘말렸다. 파직되어 낙향한다. 31세였다.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창공의 별과 같은 호남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1300수에 달하는 시를 지었다. 제봉집에 담겨있다.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백호 임제, 손곡 이달,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등과 교류했다. 고경명은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당연히 요직에 봉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가슴 뜨거운 충절지사에게 불패의 탄탄대로는 없다. 두 차례의 파직을 겪었다. 우국애민(憂國愛民)정신과 자부심만큼 좌절과 회한도 깊고 컸다. 홍안의 청년이 백발이 서리로 내린 초로(初老)가 되었다. 바로 이 때, 조총을 든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1592년 4월. '朝日 7년 전쟁'(
마이산(馬耳山)에 가서 이갑용 처사가 쌓았다는 돌탑 앞에 섰을 때다. 이 탑을 쌓은 노인은 전국을 다니며 돌을 골라 가져다 탑을 쌓았다고 한다. 어떤 의미를 두고 쌓았기에 탑은 폭풍 번개에도 끄떡없이 견디며 오늘을 가고 있을까. 말 귀를 닮았다는 산에 이 탑을 쌓은 속 깊은 뜻은 무엇일까? 를 생각하다 ‘나는 지금 무엇 하며 살아 왔는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글 짓는 것 제하고는 어떤 재주도 능력도 좋아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자발적 소외와 자가 격리 같이 스스로 외로워했고 고통스런 생각 끝에 손짓의 언어들을 원고지에 옮겨 심는 생활이었다. 혼자서 그늘진 곳에 우두커니 밀려나 외로움을 타는 슬픈 정조(情操)를 지닌 삶이었다. 그때였다. 이갑용 처사가 돌탑을 쌓았다면 작가는 글탑을 쌓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탑과 글맷돌’ 생각이 가슴 속 위로나 되는 듯 내 품에 안기었다. 이갑룡 씨가 각처의 돌을 문장의 언어나 되는 듯 옮겨다 탑이란 돌의 시를 쌓아 올렸다면, 작가는 언어를 ‘돌’ 삼아 문장의 탑을 쌓아야 할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언어라는 돌을 맷돌에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어 빵과 과자를 빚어서 사람들에게 착한 양
자유와 방종의 경계선은 무엇인가? 굳이 에릭 프롬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의 자유인지?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가 중요하다. 베트남에서 한달을 머물고 있다. 분명히 자유가 있다. 그런데 TV나 사회 모습을 보면 내가 그간 경험해 온 남한과 미국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해가 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외국영화를 방영할 경우에도 그런 것 같다. 주로 할리우드 영화이지만, 그런 장면은 삭제하고 있다. 이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인가? 프랑스와 미국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고 그들과 싸워 이긴 국가로서 서양문명에 대한 경계심과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방식을 추구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함정은 집단이 빠진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자유는 천차만별이다. 누구에게는 자유이지만, 누구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생명은 똑같이 소중한데, 힘이 강한 개인은 힘이 약한 개인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억압하게 마련이다. 이는 참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가 곧 '자유'가 아니다. 곧 집단으로서의 자유가 개인으로서의 자유보다 선행해야 하다는 말이다. 미국식 자유
말은 세상(의 모습)을 정직하게 나타내야 한다. 상황을 바르게 표현하지 않는 말은 사람과 사회의 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독하게 말자자면, 기만(欺瞞)이고 사기(詐欺)다. ‘기후변화’의 변화(變化)는 가치 개념이 없는, 무색무취한 단어다. 기후가 변화하고 있단다, 어쩌라고... 하다 여기까지 왔다. 코앞에 닥친 것 아니니 미뤄두자고 했던가. ‘지구온난화’의 검은 구름이 우리(의 의지) 대신 안전핀을 쥐고 흔드는 위태로운 핵폭탄, 지구촌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가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적극 대응해, 가령 새로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의욕’도 볼 수 있었다. ‘성공사례’로 포장되기도 한다. 대구사과가 춘천사과가 됐다. 불가피한 사정도 있으리라. 당장 먹고 사는 일 급하니, 지금도 그런 생각을 벗지 못하는(않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저 현상의 물밑에 잠긴 의미는 뭐지? 아들딸 챙기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들 하지만, 그 아들딸의 아들과 딸, 손자까지 생각하는 것이 사람됨이고, 덕(德)이다. 자칫 눈앞의 아들딸조차 곧 ‘지구온난화’의 태풍 속에 밀어 넣는 것은 아닌지. 지금 미국서, 방글라데시에서 참사는 벌어진다. ‘강 건너 불’이라고? 그런가! 기후변화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을 즘,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했다. 끔찍한 참사를 겪은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핼러윈 축제는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단절된 이웃사이를 연결하여 집집이 다니며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풍습에 기원한다. 이민자들이 만든 문화가 핼러윈 축제가 되었듯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이웃을 잇고 음식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백골이 우는 것이냐, 혼이 우는 것이냐. 서울 양천구 임대아파트에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되기 일 년 가까운 시간을 풍화작용 없는 어둠에서 홀로 백골이 되었다. 휴대폰을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세상에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보내줄 누구라도 있었다면, 이승과 저승이 무덤 되어 그렇게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골로 만난 무연고 여성은 성공사례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2017년까지 정착을 돕는 전문 상담사로 일했고, 무엇이든 물어보면 잘 가르쳐준 최고의 선생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니 더욱 안타깝다. 그때는 성공했고 지금은 아닌 성공을 무엇이라 부르리. 시신이 방치되는 동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2017년 퇴사해서 전화번호를 바꾸어 지인들과 연락도 끊어졌을 것이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