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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박정희도 그랬고 문재인도 그랬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체로 모르거나 아니면 모른 척 하는 삶이다. 산간 벽지에 의사들이 가지 않으려 그리 애쓰면서도 만약 그곳에 살고 있는 간호사가 일정한 법령에 의거하여 의료 활동을 하는 것(노인들 영양 주사를 놔준다든지, 감기몸살 약을 처방해 준다든지)에 대해서는 사활을 걸고 반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제 그 시시비비에 둔감해 한다. 어차피 세상이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진영의 싸움만이 노골화 됐는데, 그리하여 이제는 모두 북중러에 맞서는 한미일 전선에 투입돼야 할 판인데도 오로지 어떤 팝송을 불렀네, 만나서 뭘 먹었네, 어떤 여인이 뭘 입었네 하는 것만 가지고 입방아를 찧는다. 그마저도 그리 관심이 오래 가지 않는다. 잘못된 위정자는 국민의 무관심을 증폭시키고 그것으로 권력의 본래적 야욕을 감추려 한다. 역설적으로 개중 누군 가는 그러니까, 매우 정치적, 아니 권모술수적인 인간이라는 얘기이고 그런 인간이 있다는 얘기이다.

 

문화 쪽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렇다. 여기가 대체로, 지금의 정부 마냥, 아수라장인데도 사람들은 넋 놓고 손 놓고 앉아 있다. 어쩌려고 그러는지 한숨이 나온다는 소리들이 많다. 그 이유는 생각해 보면 자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진작에 예상됐던 사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 얘기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하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벽을 보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정작 사태가 터지니까 뭔가 고치고 변화할 의욕마저 잃은 셈이 돼버린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모두가 공석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두 직책의 사람 모두 자진 사퇴를 했기 때문이다. 역시 형식적으로만 볼 때 시작은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했다. 그가 사표를 던졌다. 그러자 부산영화제로 영화계의 비난이 쏟아졌고 이번엔 이용관 이사장이 그 책임을 진다며 사표를 던졌다. 둘의 사표가 이사회에서 수리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아마도 이 글이 나갈 쯤에는 이사회의 결정사항이 발표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부산영화제는 그 초심의 생명력을 다했다. 둘이 사표가 반려되든, 두 사람 스스로 사퇴를 철회하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영화계의 민심을 되돌리거나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초기 멤버들이 너무 ‘오래 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도 18년을 했다. 부산영화제 멤버들은 다들 20년 넘게 자리를 이리저리 바꾸며 지켜 왔다. 당연히 새로워지지 않았으며 배가 산으로 갔다. ‘사이즈의 미학’ ‘레드 카펫의 사치스러움’ ‘스타 시스템의 행사’로만 치중됐다. 영화제는 20억원에서 시작해 140억원까지(코로나 이전) 예산을 키웠지만 정작 사무국 직원들의 복지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모두 한국 최고의 영화제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강제성이 횡행했다. 실로 전근대적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부산시에서 교부되는 지원예산은 경상비로 전환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돼있다. 직원들 월급과 경상비는 모두 기업의 후원협찬비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게 ‘쥐약’인 것이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중단됐을 때 이 협찬금은들어 올 수가 없는 것이 돼버렸으며 따라서 직원 월급은 고스란히 은행 빚으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쌓인 게 십수억원이다. 반면 지방자치단체 교부금을 경상비로 전환시키도록 시행령을 바꾼 곳은 전주와 부천, 제천영화제 등이다. 부산영화제는 그들처럼 되기 위하여 그간 부산시를 향해 정치적 법적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어야 했다. 투쟁이라도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시장과 싸우려 하지 않으려 했는지, 잘 보이려 했는지) 기업 마케팅을 강화하는 쪽으로 갔다. 그러니 당연히 영화제 운영에 있어 기업경영 논리가 우세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를 키운 셈이 됐다   

 

십여년전, 부산영화제가 승승장구할 때 미국 독립영화계의 태두 선댄스영화제의 존 쿠퍼 집행위원장이 온 적이 있다. 쿠퍼 위원장이 부산영화제를 둘러본 후 한 말은 지금 와서 보니 꽤나 선견지명이 있는 얘기였다. 그는 ‘영화제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내실에 더 힘을 기울이는 게 좋다’고도 했다. 맞는 얘기다. 영화제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상영관을 더 늘리고 영화를 2회, 3회 틀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관람 기회를 더 주고, 영화에 대해 사고하고, 또 그럼으로써 세상에 대해 보다 진실되게 걱정하게 하는 것, 그래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연대하게 하는 것, 그것을 제1의 목표로 해야 한다. 부산영화제가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영화 그 자체, 그 본질이다.

 

이용관 이사장은 과거 날카로운 평론가 출신의 대학교수였다. 그는 2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써가며 평론을 썼다. 그는 멋있는 상남자였다. 영화제가 변질된 것은 어쩌면 그런 그가 평론을 쓰지 않고 글을 멀리 하면서부터일 수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영화적 공과(功過)는 분명하다. 공만 있고 과는 없거나 과만 있고 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 공과가 있는 법이다. 그건 박정희도 그랬고 문재인도 그랬다. 다만 질서 있는 퇴진을 계획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이건 부산영화제 초기 멤버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세상사는 늘 그런 법이다.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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