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잠시도 멈춘 적이 없는 여야 정치권의 ‘무한 정쟁’ 형국이 갈수록 태산이다. 도무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집권당이나 정치를 사뭇 전쟁터로 몰아가는 다수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행태가 가뜩이나 깊어지는 국민 불안을 하염없이 덧내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경제위기 쓰나미 앞에서 숨넘어가고 있는 가계와 기업들의 애환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실종된 정치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사회·안보 등 전 분야에 있어서 복잡한 난제들이 동시다발로 불거지는 총체적 난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특히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마저 나오는 세계 경제 회오리의 여파로 민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시련 속으로 빠져드는 중이다. 각자도생의 처절한 수난 속에서 아시아에서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는 경고마저 등장해 대외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한국 경제에 공포의 그늘마저 감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2분기 재고자산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0%나 늘어난 106조 원을 넘었다. 총부채도 동기 대비 10% 늘어난 같은 기간 588조 원으로 증가했다. 증시가 얼어붙으면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른 사람과 미리 정하여 두는 일을 약속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크든 작든 대부분의 일은 이미 약속에 따라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약속을 저버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사람 관계가 험악해진다. 사람이나 조직체 사이에 서로 지켜야 할 의무를 글로 명시하여 법률로 책임을 지도록 한 계약은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약속은 인격을 담보로 하는 것이고 계약은 법률적 강제를 담보로 한 것이다.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법률적 책임만 지면 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인격의 훼손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법률적 책임보다 인격을 점점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이 심각성을 주목하는 사람도 드물다. 약속을 가볍게 저버리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인격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다.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약속을 두렵게 여기고, 어려워도 약속을 지킨다. 한국사회가 기억해야 할…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하고 나오면서 했던 대통령의 말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외국 정상들이 참석한 회의장에서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외교부 장관에게 한 대통령의 말로써 비속어와 함께 미국 대통령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이 xx”는 미국 의회가 아니고 한국 국회를 의미하고, 바이든은 “날리면”이라는 해명이 대통령실의 홍보수석으로부터 나왔다. 한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에서 한국 국회에 대한 언급과 비속어로 논란의 초점이 옮겨졌고 이 말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바이든? 날리면? 어떻게 들리십니까 논란이 된 이 영상을 수십번 반복해서 들어 봤더니 누군가는 “바이든”으로 들린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날리면”으로 들린다고 한다. 이 같은 관심은 언어음성학적 차원(linguistic phonetics)의 문제이다. ‘ㅂ(비읍)’이 나타내는 소리는 입술소리(양순파열음)로 입술모양을 본떠서 ‘ㅁ(미음)’에 획을 더한 것인데,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위·아랫입술로 입을 다물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리와 선을 아는 소수의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시민의 대표자 다수가 정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막말과 저급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사실, 정치인의 막말과 시정잡배 같은 행태는 종종 목격되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으며 다음 선거를 기다린 후 투표를 통해 개인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의사 표시였다. 이쯤에서, 이러한 정치무관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할까라는 환원론적 관심이 생겨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의 대부분은 좋은 학벌과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정치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무관심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명제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학벌은 좋은 정치인의 덕목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
진정한 현자는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수고와 탐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알려면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한다. (몽테뉴) 모르는 것을 남에게 묻는 것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언제나 진실을 말하라. 학문을 배우고도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사람은 모처럼 밭을 갈아 놓고 씨앗을 뿌리지 않는 사람과 같다. (아라비아의 아르비테스) 철학이나 자연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보통 사람들이 확실하다고 믿는 것을 단순히 그럴 수도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리히텐베르크)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데살로니카전서 5장 21절) 우리의 영혼에는 양식이 부족한 일이 없다. 그것을 자기 몸에 섭취하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과거에 존재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요소는 육적, 지적, 정신적인 모습으로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요소들을 지배하는
“깨져 버린 바이든의 밀어”, “미국의 전기차 ‘뒤통수’에 ‘허둥지둥’”, “‘실망 안 시키겠다’던 바이든이 '현대차의 꿈' 깼다”, “14조 선물 고맙다더니, 미국 이익만 챙기는 ‘중국 견제’”, “이게 한·미 경제동맹이냐” 등등은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유독 현대·기아자동차만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사건에 대한 신문 표제들이다. 필자는 2022년 6월 30일 자 칼럼 “지경학적 분열의 시대,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서, “기업 경영자는 ‘탈통합’에 선제적으로 앞장설 필요는 없다. 기존의 글로벌 ‘통합’의 이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서서히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긴 호흡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 강대국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맞추어 대응하여도 늦지 않다.”라고 조언한 바 있다. 바이든의 행위는 2016년 트럼프가 일반적 예상과 달리 클린턴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의 관심은 국제문제보다 일자리 증대와 같은 국내 경제 문제로 이동하였다. 트럼프는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승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제일 지표는 ‘아메리카…
섣부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궁지에 몰린 푸틴이 또다시 핵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푸틴이 진정 핵을 사용하고 이로 인해 핵전쟁의 길목으로 들어설 것인지 모두가 우려스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는 80여년 간의 타부가 깨어지고 서서히 “사용가능한 핵무기”로 패러다임이 shift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푸틴의 핵위협이 ‘선언적 사용’ 단계였다면, 이번 핵사용 위협은 ‘실제적 사용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엄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암울한 ‘핵무기 사용 협박’ 에 편승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정은이다. 조만간 실시될 7차 핵실험은 ‘핵무기가 협박용이 아닌 실전용’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한편, 지난 9월 7일 제7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한 핵독트린은 ‘핵실전 사용’ 가능성이 결코 망상적 시나리오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는 북한이 사실상 핵선제 불사용을 폐기하였음을 시사하면서, 6조는 북한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김정은의 핵시계가 매우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엄혹한 핵환
내 사랑, 내 누이/꿈꾸어보렴 거기서/단 둘이 사는 달콤한 행복을! 한가로이 사랑하며/사랑하며 죽을 것을/너를 닮은 그 나라에서!(...)/ 그곳은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호사, 고요 그리고 쾌락(...). 잠자던 로망을 불타오르게 하는 시다. 너를 닮은 그곳에서 단 둘이 달콤한 행복을! 깊어가는 가을 몽상 속에 풍덩 빠지게 한다.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여행에의 초대.’ 시인은 애인과 함께 이상의 나라 네덜란드로 떠나 살고파 했다. 감각을 승화시키고 절대적 진실을 찾아 헤맸던 보들레르. 그는 파리 오뜨푀이(Hautefeuille)거리 13번지에서 태어났다. 스물여섯의 처녀 카롤린 뒤파이는 육십이 넘은 조제프-프랑수아와 결혼해 보들레르를 낳았다. 아버지는 그가 겨우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어린 보들레르는 어머니와 함께 행복했다. 어머니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함께 나눴고 이는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됐다. 자전적 시, ‘하얀집’에서 그는 여름날 어머니와 함께 보낸 뇌이쉬르센을 회상했다. 그런 어머니는 재혼했고 그때부터 보들레르의 인생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대학 대신 시인의 길을 걸으면서 의붓아버지와 싸웠고, 결국 보들레르는…
인간은 고독해질수록 항상 자신을 부르고 있는 신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 오로지 침묵하고 감추어라 너의 감정도, 꿈까지도! 네 영혼 깊이 그것을 키우고 심화하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그것을 사랑하며 침묵하라!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누가 이해하랴 네 마음을 누가 이해하랴 네 생명을 언어는 사상을 속이는 것을 샘물은 흐림을 꺼리는 것을 오직 침묵하고 헤아려라! 이젠 고독을 배울지어다 네 마음에는 한없는 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지거늘 떠들썩함은 마음의 귀를 빼앗고 드러난 빛은 눈을 빼앗도다. 침묵 속에 마음의 노래를 들어라. (추체프) 좋은 의도도 입 밖에 내어 말해버리면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청년 시절에 선을 지향하려고 분발한 감정을 입밖에 표현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훨씬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아직 제대로 피지도 않을 꽃을 기다리지 못하고 꺾었다가, 얼마 후 그것이 땅 위에서 짓밟혀 있는 모습을 볼 때처럼 후회하게 된다.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고독하다.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역사는 결코 남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연출되는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독백 또는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