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투의 시작 “내가 와세다(早稻田))를 들어갔을 때가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에 매료되어 문학에 탐닉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의에 대해 눈을 뜨면서 전공투 운동에 뛰어들었지요. 좌익 지식인으로서의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전공투(全共鬪)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시절을 회상한 일본의 사회사상 연구가 아라 다이스케(荒岱介)의 진술이다. 전공투는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약칭으로 1968년, 일본 전국 학생운동의 결집이 이뤄낸 조직이다. 그때까지 학생운동을 이끌던 ‘전학련(全學聯)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단계로 보다 전투화된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1967년 10월 8일, 경대(京大/교토(京都)대학)에 다니던 야마자키 히로하키(山崎廣明)가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길목인 다마가와(多摩川) 다리 위에서 경찰봉에 맞아 숨진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격렬했던 시기에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수상이 베트남으로 가는 것을 학생들이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참극(慘劇)이었다. 그의 친구들이 나중에 가족들에게 야마자키의 가방을 전달했는데 그 안에는 1권의 노트와 10권의 책이 들어
일요일 꼭두새벽,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씨가 각각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틀째 사전투표를 마친 날이다. 한국은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개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의 역량을 담아낼 국가나 사회와 같은 체제의 용기(容器)는 매우 부실하다. 걱정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분위기가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번을 얘기하지만 아베 이후 일본 영화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新星)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오죽했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명장(名匠)이 한국에 와서 한국영화를 찍겠는가. 일본 자국(自國) 내 침체된 분위기를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읽히는 부분이다. 고레에다는 한국 영화사와 《브로커》를 찍었고 그 주인공이 송강호이며 송강호가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탄 것이다. 한국영화와 한국의 배우가 아시아형 영화의 정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특히 유년 시절에) 다음과 같은 행복한 감정을 알고 있다. 즉 이웃도 부모도 형제도 악인도 원수도 개도 말도 풀도 사랑하고 싶어지는 감정, 오로지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특히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감정, 언제나 모든 사람이 즐겁고 기쁘게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싶은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만이 인간 생명의 원점이다. 선량함은 독자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것이다. 인간 속에 선량함이 있는 만큼 그 속에 생명이 있다. 이 법칙 중의 법칙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가장 행복한 감정을 일깨운다. (에머슨) 쾌락주의는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고, 의무에 관한 철학에는 적지 않은 기쁨이 있다. 그러나 구원은 오로지 의무와 행복의 일치 속에, 개인의 의지와 신의 의지의 합일 속에, 또 그 최고의 의지가 사랑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신앙 속에 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
고백건대, 대선이 끝나고 한참동안 뉴스를 보지 못했다. 괜히 보다간 혈압관리가 되지 않을 듯싶었다. 촛불혁명을 이룩한 나라에서 불과 5년 만에 총풍사건, 차떼기, 국정원댓글사건, 그리고 탄핵까지 국기문란 레퍼토리는 죄다 꿰고 있는 정치집단에게 다시 정권을 넘겼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수레바퀴를 뒤로 돌린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면 검찰이나 언론 탓 이전에 더불어민주당의 자중지란이었다.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은 분란과 내부총질이 빚어낸 참사였으니.. 자중지란은 선거패배이후에도 끊이지 않는다. 법무부가 장관직속으로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겠단다. 한동훈 장관에게 검찰 수사지휘권, 인사권, 감찰권 뿐 만 아니라 모든 고위공무원을 검증하는 정보권한까지 쥐어주겠다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안기부는 정보기능으로 모든 부처 위에 군림했다. 이제는 법무부가 수사권과 기소권에 정보기능까지 가진 무소불위의 사정기관이 된다. 지금도 법무부 장관 직권으로 상설특검을 발동할 수 있고(민주당은 권한이 있어도 쓴 적이 없으니 그런 권한이 있는 줄도 몰랐다), 경찰청장에 대한 인사검증 조차 법무부 장관이 가지는 판에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조정도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고뇌는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예수) 고통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첫째로 자신의 고통보다 더 큰 남의 고통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며, 둘째로 고통에 대처하는 데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나쁜 방법과 조용히 견디며 인내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성장해 간다. 즉 각자의 사상 속에는 이미 더욱 높은 사상이 들어 있다. 지금은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사람 속에도, 이미 더 높은 성격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청년은 유년 시절의 어린아이 같은 몽상을 버리고, 장년은 청년 시절의 무지와 거친 혈기를 버리고, 노인은 장년의 아욕을 버리며 점점 우주적인 정신을 배워간다. 그리하여 그는 더 높고 더 강한 인생의 기반에 서게 된다. 외적인 관계와 조건은 서서히 소멸하고 더욱 더 신 속에 몰입하면서, 신도 또
미즈노 남보쿠(1757~1834)는 200년 전 일본의 관상가다. 열살에 조실부모(早失父母)했다. 그 때부터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밥먹듯 했다.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도박에도 손을 댔다. 마침내 열여덟 살에 감옥에 들어간다. 그는 "짐승 보다 못한 삶이었고, 스물 전에 죽을 운명"이었다고 고백했다. 감옥에서 소년의 인생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죄수들의 관상과 행태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도 교도소를 '인생대학'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곳은 '역설의 대학'이다. 그 관찰력은 훗날 그의 성공에 큰 자산이 된다. 출옥하자마자, 이름 높은 관상가들을 찾아다녔다. 한 사람이 "1년 안에 칼 맞아 죽을 팔자"라고 단언하며 스님이 되길 권한다. 절에 가서 사정을 고백하고 받아주길 청했으나, 스님은 "1년 동안 콩과 보리만 먹고 다시 오라"고 말하며 내려보낸다. 그는 약속을 지키고 절에 가던 길에 검난(劍難)을 예언했던 관상가를 찾아갔다. "무슨 큰 공덕을 행하여 관상이 완전히 달라졌는가?"물었다. 그 후 청년은 스님이 되는 걸 포기하고 관상가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는 이발소에서 3년은 두상과 면상을, 목욕탕 때밀이 3년간
떠났던 자유가 돌아왔다. 2년여 동안 수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만남과 이동을 제한하고 사람들을 옭아맸던 코로나가 기세를 꺾었고, 이제 매일매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확진자 수 소식 대신 자유로운 시대를 향한 소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전히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원숭이두창 같은 새 전염병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해외는 아직 두렵고 국제선 항공권 요금은 2~3배로 치솟아 여행의 자유는 국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시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6월 2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 최대 50% 할인, 5만원 숙박 특별 할인권, 지역 특화 콘텐츠 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멈춰있던 대한민국을 살리자는 의미를 담은 ‘2022 여행가는 달’의 주제는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다. 재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테이프나 필름 등으로 본래의 소리나 모습을 다시 들려준다는 의미.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 또, 상실된 생물체의 일부가 다시 자라나는 일이라는 의미. 어떤…
미국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을 반대하는 극단적 자유주의 이론에서 시작해 이제는 강대국 자본가의 패권적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세계 곳곳에서 큰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칠레에서는 1970년대 미국 자본 소유의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추진하던 아옌데 정부가 미 CIA 주도의 군사쿠데타로 전복됐다. 냉전 종식 이후 이 이론은 한 단계 더 포악한 얼굴을 띠게 된다. 유통-제조업을 수직 계열화한 금융자본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도록 돕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이들은 현지 정부를 세계화와 ‘작은 정부’라는 그럴 듯한 담론에 매혹되도록 해 가장 먼저 자본 이동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도록 한다. 이후 허술한 자국 화폐 시스템을 집중 공격해 현지 정부가 이를 이겨낼 수 없도록 한 다음 부도 위기로까지 몰아간 뒤 국가 인프라를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헐값에 취한다. 이 부도덕한 투기자본의 폭주는 20세기 전후 남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거치면서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기세가 다소 꺾였다. 이같은 ‘약탈’로 얼마나 많은 우리 알짜 기업들이 그들의 먹이감이 되었고, 또 얼마나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고통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치있는 목표를 위해 얼마간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충족해야 하는 잠재적인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아우슈비츠 생존 정신과 의사) 당신이 바라는 것이 확장되기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인생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당신은 원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이뤄낼 수 있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을 때이다. 기회, 인간 관계 심지어는 부까지도 내게로 다가왔다. (오프라 윈프리: 14세 때 미혼모. 사고로 아기 잃음) 사람이 잘나서만 큰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의 숨에 접하기만 하면 아무도 없어서는 아니 되는 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큰 것을 생각 아니하는 사람들일수록 시시하고 조그만 일에 걸려 싸움을 합니다. 남의 결점에 공연히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만큼 큰 것을 내다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역사의 대체를 파악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계의 흐름 속에 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뛰려면 우선 바닷가에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전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언론은 첫날 삼성 평택공장 방문, 다음날 한미 정상회담, 마지막 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단독 면담 등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언론의 취재경쟁도 뜨거웠다. 우리 언론보도의 고질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외눈박이 보도였다. 장점만을 부각했다. 국가간 거래에서 한 나라에게만 혜택이 일방적일 수는 없다. 얻는만큼 잃는 것도 있다. 언론은 부작용도 짚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리는 중국을 자극할 여지가 있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확정 했다. 중국은 우리 교역량의 25%를 차지한다. 이면을 비추는 언론은 극히 드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보인 자국민을 위한 처절한 일자리 창출 노력을 부각하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23일(월)자 4면에 《올땐 삼성, 갈땐 현대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이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을 신설해 3000개, 현대차그룹은 8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미국에 만들어 줄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두 재벌 총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총수들에게 미국에 투자해달라고 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