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는 고도성장과 무한경쟁 사회에서 협동과 연대를 통해 사람 가치를 중시하며 경제적 이윤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해 가는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 지역사회문제 해결, 사회적가치 창출, 공유가치창출(CSV), 기업가정신, 자율경영공시, 윤리경영 등이 사회적기업 창업과 연관된 키워드들이다. 효율과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발생하는 양극화, 고령화 사회, 환경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경제기업 창업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창업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문제해결자로서 단체나 활동가들의 참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그에 부합하는 조직화나 창업 단계로 이어 가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에게는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이나 활동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험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 요구된다. 경청과 공감 그리고 배려와 나눔에 기반하는 소통과 올바른 태도가 사회적경제가 필요로 하는 사
지난 3월 15일 자 조선일보 동서남북 칼럼에”정권은 바뀌어도 방송은 안 바뀔 것”이란 글이 실렸다. ”공영방송이나 정부, 지자체가 대주주인 방송사들은 언제나 여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5월 대통령이 바뀌어도 방송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이다. 보수세력이 집권했으니 공영방송과 정부가 대주주인 방송도 친여 보수적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노조 등 장애요인이 있어 어렵다는 내용이다. 공영방송은 죄 없다.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정치인과 정파적 집단 그리고 그에 붙어먹는 일부 경영진과 경영진 희망자들이 문제일 뿐. 왜 보수가 집권했다고 공영방송이 친여 보수적으로 가야 하나? 제발 공영방송이 제자리 잡도록 놔둬라. 욕하고 이용해먹으려 하지 말고. 신문사가 경영하는 종편이나 잘해라. 종편은 극단적인 보수 방송이다. 조선일보는 공영방송의 편파적 방송태도를 문제 삼는데 TV조선의 편파성은 어떠한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공영방송이라 편파적이면 안되고 종편은 신문사가 운영하는 민영방송이라 극단적 편파성을 가져도 문제없다면 공영이 아닌 민간기업이 만드는 제품들은 불량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논리다. 신문과 방송이 만드는 제품은 뉴스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초인간적인 무언가를 의식하게 된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상 신도 역시 존재한다. 그것을 신이라 부르건 뭐라 부르건, 어쨌든 우리 안에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 생명의 원천을 신이라 부르건 뭐라 부르건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마치니) 숲을 거닐면서 내 눈을 피해 전나무의 뾰족한 잎 속에 몸을 숨기려고 다급하게 움직이는 딱정벌레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묻는다. 어째서 이 딱정벌레는 이렇게도 겁을 먹고 나에게서 숨으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그 녀석의 은인이 되어 그들의 무리에게 무척 기쁜 소식을 전해줄지도 모르는데. 그럴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위에, 즉 이 딱정벌레나 다름없는 인간 위에 서 있는 위대한 은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로) 신은 마치 그물과 물의 관계와 같다. 뜨고 있는 동안 물은 그물 속에 있지만, 떠냈을 때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색과 행위를 통해 신을 찾고 있는 동안에만 신은 우리 안에 있다. (표도르 스트라호프) 이 세계와 우리의 삶 뒤에 왜 이 세계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왜 부
꽃비가 내릴 땐 세상이 고요해진다. 사락사락 떨어지는 꽃잎은 숨죽여 바라볼 만큼 아름답지만, 이유 모를 슬픔도 따른다. 4월은 아름다움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달이다. 4월 3일 제주에서는 짧게 사이렌이 울렸다. 4월 15~16일에는 경기도교육청의 각 기관과 학교에서 사이렌이 울릴 예정이다. 제주도에선 붉은 동백이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고 경기도에선 노란 리본이 나무에서 흔들렸다. 추모는 4월 내내 이어진다. 가장 멀고 소외된 지역에서 피어난 어둠은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드러나지 않았다. 실시간 정보가 다양한 채널로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에도 똬리를 튼 어둠은 배를 침몰시켰다. 깊숙한 동굴에서, 깊은 바다에서 가장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사라졌다. 꽁꽁 감춰졌던 일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알린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번져갔다. 세계적인 관광지를 여행하던 사람들은 붉은 동백 뺏지를 받고 제주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됐고, 거리를 걷던 이들은 무료로 받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았다. 유행처럼 번져나간 물결이 묻혀있던 역사를 서서히 밝혔고, 사람들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가 퍼뜩 잊지 않겠다 다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크투어리즘은 어둡고
지난 3월 4일 시작된 드라마 ‘파친코’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다.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했던 1화 동영상의 조회수는 1500만 뷰에 육박하고 있다. ‘파친코’는 재미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글로벌OTT사업자인 애플TV플러스에서 1000억원의 들여 8부작 드라마로 제작, 공개한 것이다. 소설 ‘파친코’는 2017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던 책이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 살다가 일본으로 이주한 주인공 선자 가족의 4대에 걸친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 식민지배의 잔혹성과 재일 한인(자이니치)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과 탄압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국내에서의 흥행은 예상된 일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글로벌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8%를 기록했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평점 만점을 주었으며 최근 몇 년간 나온 최고의 드라마라고 했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가족과 여성의 힘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지만 고통스러운 이주자의 삶의 초상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
지난 2월 바이든은 트럼프의 인도-태평양전략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인도-태평양전략 버전 2’를 내놓았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Quad) 4개국을 중심으로 인도양, 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경제, 기후, 팬데믹, 기술 등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10개의 실천 과제를 선정하였는데 이 중 주목되는 것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구상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구상은 높은 수준의 무역 조건을 내세워 중국을 배제한 국제 디지털 경제권과 국제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에 대하여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통하여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을 공언하고, 이를 위한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구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 시기 부통령으로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대외문제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TPP에서 탈퇴하였다(이후 TPP는 일본의 주도로 CPTPP로 변경하였다). 한편 TPP에 대항
인도의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도시였다. 그곳에는 성스러운 하천(河川) 갠지스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은 여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축복을 내린다. 갠지스 강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장지(葬地)였다. 상여를 매고 수천 킬로를 걸어 온 사람들도 있었다. 화장터 장작더미에 올려진 시체를 태우고 수습해서 강에 수장(水葬)했다. 장작을 사지 못한 가난한 사람은 시신을 몰래 강에 던진다고 했다. 어느 것이든 지상에서 삶을 마친 인간을 신에게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강물에서 목욕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인도인들도 있었다. 죽은 몸들이 잠긴 강에서 한 모금 물을 떠먹으며 기도하기도 했다, 이해가 불가한 풍경이었다. 나는 바라나시 가트에 우두커니 앉아 구경했다. 청년 시절, 언제나 뭔가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경쟁 사회에서 벗어 나와 긴 여행을 떠난 나는 인도에서 그렇게 넋잃은 채 가만히 있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머물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필 세균성 장염에 걸려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몹시 아팠다. 밤이면 갠지스 강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게 보였다. 환시였다. 바라나시에서 병을 얻으면 죽어 나간다
사람들의 내부에 있는 신적 본원의 해방은 필연적으로 사회 체제의 개혁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래 살면 살수록 내 앞에는 할 일이 더욱 더 많아진다. 우리는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일찍이 사람들 앞에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현대는 좋은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 물질적인 의미가 아닌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이다. 숭고한 사회체제의 이념, 숭고한 인간성의 이념이 창조되고 있다. 우리는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지만, 믿음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채닝) 모든 사람이 한 형제자매라는 종교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대에 진정한 학문은 이 인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예술은 또 이 인식을 사람들의 감정 속에 불러일으켜야 한다. 나는 내 눈앞에서 예속과 정치적 속박에 갇힌 민중이 누더기를 걸치고 굶주림에 지쳐 부자들이 호사스러운 술자리에서 모욕적으로 던져주는 음식 찌꺼기를 줍는 민중을 보고, 또 야수 같은 증오와 야만적인 기쁨에 취해 무서운 반역의 충동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때 야수로 둔갑한 사람들의 이마에도 신의 손가락 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
사람들은 살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전쟁’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살인이 살인이 아니게 되고, 범죄가 범죄가 아니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쟁은 신성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대지가 피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말짱한 거짓이다. 대지는 하늘을 향해 하천에 댈 물을 구하고, 하늘의 구름에서 맑은 이슬을 내려줄 것을 구하지, 피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신에 의해, 심지어는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저주받고 있는 행위이다. (알프렛 드 비니) 전쟁이란 모든 사람들과 모든 백성들이 그 뒤에 숨어서, 세계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잔인무도함을 드러내는 휘장 같은 것이다. (스프링필드) 예수는 마음으로 짓는 죄 또한 행위로 인한 죄와 동일함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번 마음을 먹다 보면 결국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적(主敵)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살인 행위와 같다. (조헌정) 씨ᄋᆞᆯ은 말하자면 내재의 평화, 극소세계의 평화다. 본질적인 평화다. 씨ᄋᆞᆯ의 바탈이 평화요, 평화의 열매가 씨ᄋᆞᆯ이다. 그러므로 씨ᄋᆞᆯ의 목적은 평화의 세계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극소는 극대에 통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순간도 그 눈을
일본 조총련계 동포 감독 양영희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국내에선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지난해 DMZ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으며 얼마 전 '4·3과 친구들' 이란 특별상영회에서 소수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짐작하듯이 4·3 제주항쟁에 대한 얘기이다. 아주 적은 폭의 관객들에게만 알려졌지만 작품 내용이 갖는 ‘참담함의 감동’에 대해 입소문이 퍼져서 인지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꽤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영희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보다 면밀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엄마 강영희 씨의 삶을 가족의 시선으로 그려 나간 작품이다. 강영희 씨는 제주 애월면 하귀리 출신이다. 영화의 시작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강영희 씨가 딸에게 중얼중얼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보이는 사람들은 무조건 죽였어. 총으로 쏴서도 죽이고 아버지 앞에서 애를 칼로 찔러 죽이기도 했어. 눈앞에서 애가 죽은 남자는 눈이 돌아가서는 니들도 인간이냐고 비명을 질렀지. 그리고 그 남자도 죽었지. 그땐 다 그랬어. 진짜 무서웠어.” 강영희 씨는 눈앞에서 목격한 4·3 학살 장면을 딸에게 얘기한다. 그녀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