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그프로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인기 유행어가 됐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1등 하지 못하고, 1등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구조를 풍자하는 뜻일 게다. 또 그 이면에는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못한 사회, 빈부의 차로 똑같이 재능을 계발할 기회(교육)가 상실된 사회, 그리고 사회적 지위, 혈연, 학연, 지연에 따른 불공정 세태를 원망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자조가 담겨져 있습니다. 개그맨이 말하는 1등은 아마도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서 자신보다 앞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잘나가는 개그맨, PD, 연예인부터 시작해 부자, 권력기관장, 판검사, 국회의원에서 대통령까지 단계별로 수없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있고, 모든 것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1등만이 영광을 받고 포상을 받는 사회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1등을 할 수 없듯이 1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단지 1등은 모두가 행복하고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에 1등을 부러워하고 1등을 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도 간절해
강원도 평창군 황계리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대관령 삼양목장은 어머어마 하다. 동양 최대 규모인 600여만평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의 7.5배이고 남한 전체 면적의 1/5천 규모이다. 축산업을 통해 대자연의 생명력을 식품산업 속에서 활성화시키려는 삼양축산의 개척정신이 해발 850~1천400m의 높은 지대 광활한 초원에 900두의 육우와 젖소가 뛰어 논다. 초지개발은 1972년에 시작돼 1985년에 이르러 현재 목장의 모습을 갖췄다. 고랭지에서 겨울의 눈과 높은 기온차를 이겨내는 양질의 풀 ‘리드 카나리그라스’와 ‘티모시’가 성공적으로 자라나 농약 살포없이 무공해 목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소의 발자국이 한번도 지나지 않은 초지가 도처에 널려있어 봄이면 얼레지가 지천이고 가을에는 구절초가 군락을 이룬다. 소들의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조성해 놓은 삼정호에는 천연기념물 원앙이 아예 텃새로 자리 잡았다. 목장 울타리를 따라 난 백두대간 능선에 종주산행의 발길이 잦아지고 대관령 목장의 뛰어난 경관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이 늘어나 고 있다고 홈페이지(www.samyangranch.co.kr)에서 소개하고 있다.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눈길을 끄는 많지만 풍력발전기를 빼
구제역 사태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침출수 유출로 인한 2차 재앙으로 번져 방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매몰지 상당수가 하천변에 있는 탓에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팔당수계를 오염시킬 수 있는 우려에서다. 방역 당국이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허겁지겁 매몰하면서 그 지침을 어긴데다 매몰지 상태도 부실했기 때문이다. 환경부 지침에는 하천으로 부터 30m 이내에는 구제역 매몰지를 조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도의 구제역 매몰지의 전수조사 결과 149개 소가 하천에서 30m 이내 조성돼 있고, 팔당상수원 보호구역과 15km 이내 구제역 감염 가축 매몰지도 무려 77곳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매몰지의 소하천은 도민들의 젓줄이자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의 수계인 북한강과 남한강 상류 지역으로 흘러들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은 더하다. 또 매몰지 866개소(47%)가 지반 침하, 1천33개소(56%)는 배수로 및 저류소 보완 필요, 829개소(45%) 는 침출수 유공관 설치 보완이 필요했다. 급경사 지역에 매몰지가 조성돼 우기 땐 붕괴·유실될 우려가 있는 지역도 85곳에 달했다. 방역 당국은 뒤늦게 사태 수습이 나서고 있다. 매몰지에 대한 사후 관리 대책도 세우
시작은 늘 노랑이다. 물 오른 산수유나무 가지를 보라. 겨울잠 자는 세상을 깨우고 싶어 노랑별 쏟아낸다. 말하고 싶어 노랑이다. 천개의 입을 가진 개나리가 봄이 왔다고 재잘재잘, 봄날 병아리 떼 마냥 종알종알, 유치원 아이들 마냥 조잘조잘, 노랑은 노랑으로 끝나니 노랑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잠든 아이를 내려놓듯이 노랑꽃들을 내려놓는다. 노랑을 받아든 흙덩이는 그제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초록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노랑이 저를 죽여 초록 세상을 만드는 것. 시인소개: 1961년 광주 출생. 1985년 창작과비평사 <16인 신작시집>에 ‘내 울타리 안에서’ 외 7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지리산 갈대꽃’,‘붉은산 검은피(상,하)’, ‘나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겨레말큰사전 남측
인간의 도리를 중시한 경영으로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상인으로는 전무후무하게 1품관직을 받아 ‘홍정상인(紅頂商人)’으로 불리는 호설암(胡雪巖, 1823~1885)은 범려, 여불위와 함께 중국 3대 상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익을 보면 먼저 의리를 생각한다’는 유상(儒商)의 전형인 호설암이 일찍이 주목한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브랜드’다. 상호(商號)를 정할 때 그가 세운 원칙은 눈에 잘 띄고, 부르기가 쉬워야 하며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특색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상도(商道)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름이 없으면 고객을 모을 수 없고, 고객이 없으면 장사가 잘 될 리 없다는 것으로 이는 ‘브랜드 가치’가 상품의 가치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 현대의 관점에서 단순하지만 대단히 앞선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이 브랜드의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국가든 도시든 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확고한 브랜드를 갖춘 국가와 도시는 그렇지 못한 곳에 비해 훨씬 큰 경쟁력을 갖는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은 곳에는 관광객이 몰리고 기업의 투자가 확대된다. 너도나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효시라 볼 수 있는 대우자동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GM대우가 지난 달 20일 공식 명칭에서 ‘대우’를 빼고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꿔달았기 때문이다. 이어 한국GM은 지난 19일 부천 실내체육관에서 ‘쉐보레(Chevrolet)’ 브랜드 출범식을 갖고, 새로운 슬로건으로 ‘예스 쉐보레’를 선포했다. 대우자동차의 전신(前身)은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신진자동차는 1971년 지금의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한다. 그러나 GM은 70년대 말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알토란같은 GM코리아를 산업은행에 넘겨야 했다. 그러는 사이 GM코리아는 새한자동차를 거쳐 1983년 대우자동차로 거듭난다. 대우자동차는 이후 굴지의 자동차 업체로 자리매김하지만, 잇따른 해외 공장 건설과 쌍용차 인수, 소비자를 외면하는 품질 등 부실 경영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경영난 때문에 한국을 떠났던 GM이 대우자동차를 다시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만 10년이 지난 지금, GM대우는 연 매출 10조원에 1만7000여명을 고용하고, 연간 160여만대를 수출하는 국내 최대 외국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전 세계 ‘GM 쉐보레’ 브
구제역과 AI로 인한 피해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영세한 규모의 식당업을 하고 있는 소상인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에 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국민들은 이제 서툰 초기 대응으로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정부를 탓할 기운도 없어 보인다. 구제역이 장기화 되면서 식재료 공급난으로 시장에서 파는 순댓국도 가격이 대폭 올랐고 그나마 선짓국이나 족발 등은 없어서 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유도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가축 전염병 구제역의 창궐은 국가적 재앙이다. 공무원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죽거나 다쳤다. 발생한 지 80여 일만에 전국적으로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 매몰됐다. 이 사태는 농가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축산업을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매몰지 환경오염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면 또 다른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것이다. 초동 대처를 잘못한 후유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 연상의 여인에게만 사랑을 고백하고 다니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청년은 쇼팽의 연인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를 찾아가 물었다.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청년의 말에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샘 속에나 있을까…” 하지만 청년은 그녀의 말을 곧이듣고 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화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청년의 이름을 따 ‘드메 신드롬’으로, ‘연상녀 연하남 커플’을 ‘드메 커플’이라고 부른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도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드메 커플’이었다. 1897년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 뮌헨으로 온 22세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14세 연상의 루 살로메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니체의 연인으로 그의 청혼을 거절하고 떠난 살로메였다. 그로 인해 니체는 아편에 취해 괴로워했고, 이별의 고통 속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대작을 완성한다. 유년기 부모의 이혼으로 결핍의 시간을 보낸 릴케는 이런 살로메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 후 4년 동안 연인으로 지내던 두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릴케에게 염증을 느낀 살로메가 이별을 선언하며 파국을 맞지만 릴케는 포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