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따라 불렀던 노래의 본뜻을 알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라 쿠카라차가 대표적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데다 방송을 많이 타서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 병정들도 싱글벙글/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후략)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 원뜻을 붙여 보면 ‘바퀴벌레 바퀴벌레 아름다운 그 얼굴’ 이렇게 부른 셈이니 황당하고 우습다. 그러나 ‘바퀴벌레’가 가사 속에 들어간 사연을 알고 나면 웃음은 쏙 들어간다. 사연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격동의 과거사를 가진 멕시코를 알아야 이해된다. 마야문명과 아즈텍, 찬란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에 정복 당하면서 300년간 식민통치 받는 굴욕을 겪는다. (라 쿠카라차는 원래 스페인 민요로 스페인 상륙과 함께 전래되었다.) 1821년, 독립했지만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영토를 대거 빼앗기고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는가 하면 외국자본, 대지주와 결탁한 부패한 정부에 의해 노동자, 농민의 삶이 파탄지
예전에 있었던 학폭사건으로 연예계나 체육계가 뜨겁다. 지금도 초·중·고의 어두운 곳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학폭을 당한 아이나 부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한다. 내 친구의 경우는 아들이 따돌림을 당해 학교를 찾아가니 선생님이 비협조적이었고 교육위원에다 진정서를 보내보라고 했단다. 문제는 상대 학부모를 찾아가도 자기 자식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자식 편만을 든다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들은 말로는 피해 학생이 병원에 입원해서 가해자 아버지가 입원한 학생을 찾아갔더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상황이었다 한다. 그 아버지는 공부도 잘했던 자신의 딸이지만 마주하면 그 애가 생각나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고 하였다. 학폭은 정말 잔인하고 무섭다. 언젠가는 놀이터에 있는 아이까지 납치해 죽이게 한 사건도 있었다. 어른인 나도 브레이크 없이 날뛰는 망아지 같은 아이를 타이를 수 있을까 의문이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까 옛날같이 선생님을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선생님도 체벌이 금지됨은 물론 부모들의 간섭으로 학생을 정성껏 지도하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할 것이다. 훈육은 부모도 한몫이 되어야 할 것인데 자식의 기를 꺾을 수 없다는 이유
- 말을 하는 가축, 흑인 노예- 미네소타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만장일치 유죄평결이 내려졌습니다. 무저항 상태의 흑인 조지 프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한 혐의로 말이지요. 이 같은 인종차별문제는 총기문제, 의료보험문제와 함께 미국의 계급적, 구조적 모순을 상징하는 3대 암종(癌腫)으로 불립니다. 오늘은 인종차별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광고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미국 남부의 주요 신문에 빈번이 등장하는 광고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지요. 이들 콘텐츠는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생각과 양심을 지닌 인간을 가축처럼 사고파는 습속이 이렇게까지 성행했던 곳은 이 나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북아메리카 땅에 최초의 흑인노예가 도착한 것은 1619년 8월.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스무 명을 싣고, 대서양 연안 버지니아 주 포인트 컴포트(Point Comfort)에 화물선이 도착한 거지요. 이것이 미국 노예제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유럽 산(産) 공산품과 서아프리카 지역 현지 노예들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곧 인력이…
의심할 여지없는 행복의 조건은 노동이다. 그 첫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유로운 노동이며, 둘째는 식욕을 돋우고 깊고 고요한 잠을 자게 해주는 육체노동이다. 세상 번뇌가 없는 낙원같은 생활이나 동경해 마지않는 호화로운 생활이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둘 다 어리석고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쾌락만 있는 곳에는 결코 진정한 쾌락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틈틈이 찾아오는 짧은 휴식만이 진정으로 즐겁고 또 유익하다. (칸트) 육체노동은 지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활동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자극하고 촉진시킨다. 지적인 활동과 상상력의 활동은 둘 다 특수한 활동으로, 그 천직이 주어진 자에게만 의무이고 행복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천직인지 아닌지는 학자이든 예술가이든 거기에 몸을 바치기 위해 자신의 평화와 안녕을 얼마나 희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원한 게으름은 지옥의 고통으로 생각해야 하거늘, 사람들은 반대로 천국의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 (몽테뉴) 가장 평범한 노동에 있어서도, 인간의 영혼은 그가 일을 시작하자마자 차분히 가라앉는다. 의혹, 비애, 상심, 분노, 절망...... 가난한 자도 남들처럼 이런 모든 악령에 시달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어떻게 봐야할까? 그간 쏟아진 분석 중에 와 닿는 게 단 하나라도 있는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결과는 명료한 분석이 쉽지 않다. 이처럼 분석이 어려운 선거는 일찍이 없었다. 실제 문자로 쓰여 진 것들 중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답답해서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신뢰하는 기자들이나 정치평론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극과 극인 수치가 똑떨어지게 이를 대변한다. 4‧7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 수치와 지난 19일 보도된 JTBC 여론조사 결과 수치. 당선된 국민의힘당 오세훈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무려 18.32%포인트. 그러나 투표가 끝나고 열흘 뒤 발표된 여론조사는 '야당이 잘해서 당선됐다'는 응답이 고작 3%. 심지어 국민의힘당 응답자들 중에서조차 국민의힘당이 잘했다고 평가한 건 4% 정도. 부동산 정책 실패와 LH사태, 코로나백신 대처 미흡, 무능과 오만, 불공정 등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야당에 몰표를 줬지만 그들이 잘해서는 절대 아니라는 표심은 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한 그릇을 반분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오히려 겨울이 따뜻했다’ 라고 적고 있다. 겨우내 잠을 자던 생명체가 봄을 맞이하여 새 싹을 돋아내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황을 잔인한 달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침잠에서 깨어나기가 어렵지만 잠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시작한 새로운 하루는 그냥 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낸 하루하고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북한도 4월에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4월 들어 노동당 최 말단 조직인 세포비서를 평양으로 불러 연찬회 겸 궐기 대회를 3일간 개최하였다. 이후 4.15 태양절을 맞이하여 지난해와는 달리 군중 체육대회와 문화행사 등을 전국 단위로 진행하고 야외 축포행사를 통해 축제 분위기를 띠웠다. 이와 함께 500만명이 속해 있는 청년동맹 10차 대회를 27일부터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하였다. 북한은 4월을 나름대로 노동당 최말단 조직과 앞으로 북한 미래를 짊어지고 갈 청년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한 새로운 사
“이렇게 힘든데 검사해봐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그런데 아프고 치료해도 낫지 않는것이 힘들어요.” 그녀는 종합병원에서 온몸을 스캔하듯이 한 심전도, 심초음파, MRI, 면역학적 검사까지 포함한 가능한 모든 혈액, 소변등의 실험실검사를 포함한 여러 검사상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대해서 힘들어했다. 검사상 이상이 없다면 그건 아직 혈액검사나 가타 영상검사 등에서 측정될 정도의 물질적, 기질적 변화가 없다는것이니까 이제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 치료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말은 그녀에게 전혀 닿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이미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질염, 위염, 경추디스크 진단도 받았다. 다만 그 병명과 그에 대한 약들은 그녀가 가슴을 비롯한 몸의 여러부분에서 두근거리고 목구멍이 답답해서 잠을 자지못하고 다리와 둔부, 목과 어깨 등 전신의 여러군데에서 발생하는 고통에 도움을 줄수 없었다. 그녀는 내원시 심한 우울과 중등도의 불안소견을 보였는데 그녀가 가장 불안한 원인은 무슨병인지 모르는데 힘든 증상들이 있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피임약을 다시 복용하기 시작하고서부터 두근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 피임약은 정맥혈전의 부작용이
“방역은 과학이다” 그렇다. 칼럼을 쓰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가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른 것인지, 사망한 사람이 사망 전 백신을 접종한 상황인지 구분하지 않고 단순 사실을 중계한 언론이 문제라고 바라봤다. 선거를 의식해서 정치의 이슈로 백신과 방역을 논하는 것이냐고 의심을 가졌다. 정치가 끼어들면 불안은 불신과 불만으로 부정적 감정을 키우고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시 정치의 힘을 빌리게 만들려는 계산이 아니겠냐 싶었다. 백신과 방역은 의학과 과학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백신 접종이 기대한 대로 빠르고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면 “(방역을) 정치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이냐?” 같은 질문을 논할 가치도 없었다. 초기 방역에 실패했던 이탈리아와 미국 등은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하루 신규 확진자 4만 여명을 넘겼었고, 미국은 지난 1월초 30만 여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작년 연말 하루 1237명의 확진자수가 최대였다. 나라마다 방역 상황이 다르다. 한국의 초기 방역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이제 감염병 유행을 통제하는 상태인 ‘집단면역’ 단계를 내다봐야 한다. 감염 후
상대에 대해 나쁜 감정이 일어나면 그를 비난하고 싶어지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난을 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나쁜 감정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퍼져 있는 미신 중의 하나는 인간은 저마다 정해진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열정적인 사람, 냉철한 사람 등이 있다는 미신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일 때보다 좋은 사람일 때가 더 많고, 어리석을 때보다 현명할 때가 더 많으며, 냉정할 때보다 정열적인 때가 많다거나 그 반대로도 말할 수는 있지만, 만약 어떤 사람은 언제나 선량하고 현명한데 다른 사람은 언제나 사악하고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너는 이웃의 약점을 보고 있지만, 그의 선행 하나가 너의 한평생보다 더욱 신을 기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네 이웃이 불행히도 죄에 빠졌을 때, 너는 그가 그 전에 흘린 눈물도 모르고 그 뒤의 참회도 모르며, 그의 슬픔과 상심의 목격자인 신은 그를 용서했는데도 너는 여전히 그를 비난하고 있다. (성현의 사상)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양쪽에 다 잘못이 있다. 만약 한쪽이…
약 40년 전 어느 날 사회면 톱기사다. 6·25 때 월남하여 성공한 한 노인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돈 참 많이 벌었다. 그의 여러 빌딩들 가운데 가장 허름한 게 장충동에 있었다. 노인은 그 건물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삼각진 작은 공간에서 일을 봤다. 낡은 전기장판, 전화, 오래된 치부책들 몇 권, 볼펜 두어 자루, 목침 하나가 용품의 전부였다. 점심은 항상 혼자서였고 언제나 값싼 짜장면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서 부자가 되었고, 그 노하우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화려하고 당당한 부자들의 가슴 속에 이 노인의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스무살 쯤 된 청년이 침입하여 주판을 놓고 있던 노인을 놀라게 했다. “돈 내놔.” “뭐 이 도둑놈의 새끼야.” 노소(老少)가 실랑이 하던 중, 허리춤을 잡힌 청년이 위협용으로 품고 간 칼로 노인을 찔렀다. 부노(富老)의 삶은 그 시간 거기서 멈췄다. 어설픈 청년 강도의 삶 역시 사실상 끝났다. 나는 당시 20대 신문방송학과 복학생이었는데, 그 시절 수첩에 아쉬운 미담들이 적혀있다. 지갑을 털어 주면서, “앞날이 창창한 놈이 왜 이렇게 사냐? 이거 가져가 쓰고,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