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전시관에 들어서면 어둑한 공간에 낯선 빛과 소리가 겹쳐 흐른다. 부식된 필름의 파편, 물속을 유영하는 신체, 확대된 씨앗의 영상, 숲과 태양을 잇는 빛의 궤적, 그리고 일식이 만들어낸 검은 원까지. 다섯 편의 영상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얼굴을 불러내며 관람객을 사유의 자리로 이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비(非) 극장 상영 프로그램’의 주제는 ‘자연의 얼굴’이다. 폭염과 홍수, 산불 같은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 전시는 재앙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사라져가는 존재와 현상들을 포착한다.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관계가 어떻게 단절되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묻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이장욱의 ‘창경’이 관람객을 맞는다. 일제강점기 창경궁 동물원의 비극을 발광하는 나뭇잎과 부식된 필름 속 이미지로 소환하며, 식민지 시대 또 다른 희생자였던 동물들의 존재를 되새긴다. 이어지는 마리아 에스텔라 파이소의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 거야’는 필리핀 해안선을 배경으로 유년의 기억과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교차시킨다. 바다를 헤엄치는 신체는 저항과 생존의 언어로 변모하며, “우리는 침몰
20여 년간 표류해온 ‘수원 영화 문화관광지구’가 국토교통부 주관 2025년 상반기 도시재생 혁신지구 국가시범지구로 선정됐다. 경기관광공사(이하 공사)는 "지난 5일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원 영화 문화관광지구’가 도시재생 혁신지구 국가시범지구로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수원 영화 문화관광지구(장안구 영화동 154-3번지 일원, 2만452㎡)는 수원화성 주변 난개발을 막고, 세계문화유산과 연계한 관광 인프라 조성을 위해 계획된 부지다. 도시재생 혁신지구는 노후 지역을 산업·상업·주거가 결합된 복합 거점으로 재생하는 사업이다. 이번 선정으로 국비 250억 원, 도비 50억 원, 주택도시보증공사 기금이 투입되며, 건축 규제 완화와 행정 절차 간소화 혜택도 주어진다. 공사는 수원시·수원도시공사와 함께 ‘경기관광기업지원센터’를 유치해 관광산업 기반을 넓히고 ‘세계문화유산센터’를 조성해 수원화성 관광객을 흡수할 예정이다 또 상업·숙박시설을 마련해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 수원의 대표 관광 명소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조원용 공사 사장은 “수원영화지구는 수원화성 인근에 위치해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중요성을 동시에 지닌 곳으로, 그 정체성을 살려 공공문화 복합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움직이며 퍼포먼스를 만들어가는 배리어프리 프로그램 ‘몸 오르기’를 오는 27일과 28일 양일간 개최한다. ‘몸 오르기’는 참가자가 각자의 움직임을 탐구하고 이를 즉흥적 퍼포먼스로 확장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백남준의 예술을 바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 돌봄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경계 없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 관람객은 백남준아트센터 공간에서 단순한 감상자가 아닌 몸을 매개로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진행에는 배리어프리 창작을 꾸준히 이어온 네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장애인 권익과 신체를 주제로 작업해온 김원영, 박나예, 하은빈과 전통·현대 타악을 매개로 신체와 감각 소통을 실험해온 연주자 타무라 료가 참가자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다.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되며 참가 신청은 오는 10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정원을 초과할 경우 양일간 참여 가능한 신청자를 우선 선정해 개별 안내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번 프로그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몸을 매개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교류의 장”이라며 “차이를 넘어서는 움직임 속에서 예술적 연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이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해 ‘경기인디시네마 프로슈머 조각투자’ 사업을 시작한다. 이번 사업은 관객이 영화 제작 단계부터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첫 지원작은 배우 김향기 주연의 '한란'이다. 도는 독립영화 시장의 가장 큰 난제인 제작비 조달과 안정적 배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관객이 투자자로 참여해 성과를 공유함으로써 독립영화 창작 기반을 넓히고, 경기도 중심의 영화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도는 SPC(특수목적법인) 설립 및 플랫폼 수수료 등 조각투자 절차와 비용을 지원한다. 앞서 7월 진행된 공모를 통해 독립영화 '한란'이 첫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영화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한라산으로 몸을 숨긴 모녀의 생존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김향기는 스물여섯 해녀 엄마 역을 맡아 열연한다. 연출을 맡은 하명미 감독은 '그녀의 취미생활'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상 및 상파울루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제작은 ㈜웬에버스튜디오가 맡는다. 투자자 모집은 온라인 소액투자 플랫폼 ‘펀더풀’을 통해 진행된다. 현재 사전 안내가 공개됐으며 2차 사전공모 정보는 오는 15일…
수원문화재단이 오는 13일 오후 4시 정조테마공연장에서 ‘무(舞)에서 유(有)를 짓다’를 선보인다. ‘무(舞)에서 유(有)를 짓다’는 경기도무용단의 공연으로, 태평무, 한량무, 요고무, 농악무 등 다양한 우리 춤을 통해 전통의 서사와 울림을 전한다. 1993년 창단된 경기도무용단은 정재, 전통, 창작무용을 무대에 올리며 관객들과 소통해온 경기도 대표 예술단체다. 공연에서는 무용수들의 몸짓과 시선, 절제된 선과 여백, 순간을 채우는 호흡이 어우러져 무대에 긴장감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는다. 국가무형문화유산 제92호인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국태민안을 기원한 춤으로 장단의 복잡성과 기교 속에 절묘한 발 디딤새가 특징이다. 단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 속 절제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한량무'는 본래 시류를 풍자한 극적 군무에서 시작해 독무 형태의 남성 춤으로 발전했다. 도포와 갓을 쓴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호방하면서도 우아한 춤사위는 옛 선비의 기품과 삶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요고무'는 장구보다 작고 날렵한 전통 타악기 ‘요고’를 활용한 여성 군무다. 꽃나무의 생명력과 나비의 나래짓을 형상화해 역동적이면서도 정제된 춤을 선보인다. '농악무'는 풍물놀이를 현대적
한국도자재단이 오는 8일까지 프랑스 파리 노르빌뺑드 전시장에서 열리는 ‘2025 메종&오브제(Maison&Objet Paris 2025)’에 참가해 한국 현대 도예의 예술성과 가치를 국제 무대에 선보인다. ‘메종&오브제’는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인테리어·디자인 박람회로, 59개국 이상에서 약 7만 명의 관람객과 구매자가 찾는 행사다. 가구, 생활용품, 공예품 등 최신 인테리어와 디자인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장으로 평가되는 ‘메종&오브제’에 한국도자재단은 2023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참가하고 있다. 재단은 여주시, 이천시와 공동으로 ‘케이 세라믹(K-CERAMIC)관’을 전시장 5A 홀에 운영한다. ‘한국의 품격을 담아, 현대의 삶을 빚다(Timeless Korean Elegance, Crafted for Modern Living)’를 주제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생활도자 작품을 선보여 한국 현대 도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경기도 도예업체들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한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도가, 여주도자공동브랜드 나날, 휘세라미카, 박재국갤러리, 영주헌도예, 도예공방 석진, 한울디자
용인 파네시마복합문화공간은 공간 내에 위치한 갤러리 윤캔버스에서 9월 2일부터 30일까지 엘리다니와 고월 김태형의 특별 순회전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25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된 엘리다니의 아시아 순회전시의 일환으로 런던, 도쿄, 서울, 상해를 포함한 다양한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인다. 용인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파네시마복합문화공간은 빵을 의미하는 'Panis' 와 본질을 의미하는 'Essima'를 섞은 합성어이다. 제빵제조업을 운영중인 모기업에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2025년 상반기부터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 작가 엘리다니는 인간의 트라우마와 무의식 속에 숨겨진 고통을 주제로 한 네오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인다. 친밀한 소녀의 초상에서부터 동양화풍의 거친 붓터치로 표현된 작품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엘리다니는 자신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새와 짐승에 매료되었고, 기독교적 신학체계에서 신의 상징인 독수리, 사자, 소, 스랍천사와 함께 하늘과 들판을 주로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엘리다니의 창의적인 예술 혼(魂)은 확립된 규범의 파괴와 혁신을 통해 재구성…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 Docs)가 영화제 기간 고양특례시 문화공간에서 야외 상영, 공연, 토크 이벤트를 결합한 ‘다큐콘서트’를 개최한다. ‘다큐콘서트’는 관객 친화형 부대행사로, 다큐멘터리를 색다른 감각으로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행사는 영화제 기간인 9월 13일~14일 이틀간 일산호수공원 노래하는 분수대, 9월 12일~14일 사흘간 현대백화점 킨텍스 10층 하늘정원 두 곳에서 진행된다. ‘다큐콘서트-다큐X음악’은 일산호수공원에서 펼쳐진다. 재즈 무브, 튠어라운드, 이상웅 밴드, 셸위펑크의 공연이 이어지고 분수쇼 이후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우리는 펑크를 원해!'가 상영된다. ‘다큐콘서트-다큐X토크’는 현대백화점 킨텍스 하늘정원에서 열린다. 오아밴드 공연, 권나무와 재즈해설가 김아리의 토크 및 공연이 진행되며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슬기로운 초등생활', '한여름밤의 재즈'가 상영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며 공연팀·상영작·일정 등 세부 내용은 DMZ Docs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오는 11일부터 17일까지 7일간 파주시와…
시간의 흔적은 낡은 건물 벽 틈, 바래진 간판, 닳아진 기둥 속에 스며 있다. 한때는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을 담던 공간도 기능을 잃는 순간 빠르게 잊히지만 경기도 곳곳에서는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숨결을 얻은 장소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수처리장은 정원으로, 폐교는 문화촌으로, 창고는 쉼터로 변신하며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공간은 시민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동시에 건넨다. ■ 하수처리장이 정원으로 성남 ‘물빛정원’ 성남의 탄천과 동막천이 만나는 자리에 자리한 성남물빛정원은 한때 하수처리장이었다. 30년간 흉물처럼 방치됐던 공간이 올해 시민의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달항아리 형태의 조형물이 놓인 담빛쉼터,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는 꽃대궐정원,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모이는 소풍마당 등이 대표적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은 현대적 정원과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 9월부터는 뮤직홀과 카페도 문을 열어 문화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 폐교가 문화촌으로 평택 ‘웃다리문화촌’ 평택 금각초등학교는 2000년 문을 닫은 뒤 6년간 방치됐지만 지금은 웃다리문화촌으로 변신했다. 교실은 전시실, 별관은 세미나실과 쉼터로 바뀌어 시민들을 맞
“학교폭력에 대비한 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체감되지 않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은평구 증산역 인근 카페에서 경기신문과 만난 김현호 연출가는 “피해자 가족이 무너지고, 때로는 피해자 부모가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며 연극 재판을 통해 학교폭력과 법정의 모순을 무대에 올린 이유를 밝혔다. 연극 '재판'은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가해 학생의 죽음에 연루되면서 살인 혐의로 기소됨으로써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기막힌 상황을 그리고 있다. 불완전한 증거와 상충하는 증언 가운데 판사, 검사, 변호사가 치열하게 맞선다. 법정 밖에서는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부모의 갈등이 교차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풍랑속으로 빠져든다. 진실은 사라지고 갈등만 증폭되는 현실이 지리멸렬하게 펼쳐지면서 피고인은 이렇게 절규한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죽었다” 이에 대해 김 연출은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다보다는 열린 결말로 끝내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무대는 무죄 판결에도 남는 의심으로 이어지고, 가면을 쓴 범인의 웃음과 함께 암전되며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김 연출가는 이 재판극을 만들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