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읍내에 가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를 왔을 때 묵었던 주막이 초가집으로 복원되어 있다. 1801년 12월 엄동설한에 40세의 다산 선생은 이곳 시장 골목에 있는 초라한 주막에 도착했고, 이때 늙은 주모가 건넨 밥 한 그릇을 먹고 차가운 냉방에서 유배 첫 날을 보냈던 집이 사의재(四宜齋)이다. 다산 선생은 정조대왕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동부승지와 형조참의라는 당상관직의 높은 벼슬에 재직하다가 하루아침에 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었다. 다행히 감형이 되어 이곳 강진에 유배를 오게 되었다. 함께 구속되어 심문을 받았던 정약전 둘째 형은 흑산도로 귀양을 가고, 정약종 셋째 형과 매부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하는 등 한 가문이 일시에 폐족(廢族)이 되었다. 이러한 엄혹한 여건 속에서도 다산 선생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전념하게 된다. 그 좌우명으로 다산 선생은 네 가지 덕목을 실천하기로 작정하였다. 첫째, 생각은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하고, 둘째, 외모는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하고, 셋째, 말은 과묵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넷째, 행동은 무거워야…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빚은 티몬·위메프 피해자들이 검은 우산을 들고 거리 집회에 나섰다. 검은 우산 집회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단기적으로는 피해 금액 회복을, 장기적으로는 전자 상거래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았다. 검은 우산은 정부의 관리 감독 책임을 묵과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다. 규제의 사각지대가 이 사태를 불렀다는 의미다. 정부는 5월까지 미정산액을 2천7백억 원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6월과 7월 거래분과 해외 미정산금까지 합하면 피해액이 최대 2조 원을 훌쩍 넘길 거란 예측까지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 입점 업체가 6만 개에 달한다는데 이중 대다수는 중소 판매자들인데다 규모가 작은 중소 판매자들이어서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시급한 일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섣불리 피해 규모를 재단할 수도 없어 보인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인리히 법칙’이 소환된다. 하나의 대형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유사한 사건이 십여 차례 발행했을 거고, 같은 이유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잠재적 상황은 수백 번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잦은 곳에 머지않
‘우리산을 푸르게 푸르게’ 이런 표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황폐해진 우리땅에는 나무가 사라져 민둥산이 많았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피해를 막기 위해 ‘산림녹화 사업’으로 생명력이 강하고 척박한 환경에도 강한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어 빠르게 우리산을 푸르게 가꾸는데 공헌을 많이 했다. 우리가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는 이 나무의 본명은 아까시이다. 아까시나무는 초여름 10일 이상의 꽃을 피어서 많은양의 꿀을 얻게 해준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에서 얻는 최고의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에서 사라지는 ‘산림녹화 주역’ 아까시나무의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쓸모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마구 베어 내 30만 헥타르가 넘던 것이 30년 새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양봉산업에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심각하게 벌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고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얼마가지 않아 벌들이 사라 질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전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0%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도시양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자체별로 양봉학교를 활발하게 운영
놀랍게도 한국영화 중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툭하면 벌어지는 역사 논란들이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작자나 투자자를 지배할 수도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위대한 쾌거의 독립운동 전투 ‘봉오동 전투’(2019)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절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요즘 같은 때에 다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영화 ‘파묘’가 아무리 일부에서 반일 좌파적 영화라며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라는 식으로 떠들어 댄다 한들 관객 천만을 훌쩍 넘기는(11,913,519명)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리석은 정치가 역사를 놓고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정부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홍범도 장군이 고려공산당 활동 전력을 문제 삼았다. 대중들은, 그렇다면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1,2차 국공합작(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한 것) 역시 장제스의 공산당 활동 전력으로 봐야 하느냐는, 기이한 역사 해석을 요구 받는 셈이라 느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를 놓고 대중들의 정
몇 년 전에 우연히 철학자 데이비드 베나타의 반출생주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철학 수업을 꾸준히 들어왔지만, 베나타만큼 비관적인 철학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출생주의자인 그는 삶이란 너무 나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은 번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베나타의 관점에 따르면 삶 자체가 악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 손에 손잡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진보적인 일이라고 믿는다. 반출생주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은 물론 느꼈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출산과 가족 형성, 양육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산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위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생명체를 위해 출산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욕구 실현? 자연의 질서? 이러한 흐지부지한 설명도 와닿지 않는다. 대개의 인간은 번식 욕구가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번식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출산은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임신 과정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가족을 꾸리고 싶어서.…
이 더위에 난 꽃이 피었다.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서 그럴 것이다. 먼저 올라온 꽃대는 시들해졌다. 난을 선풍기 옆으로 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본다. 꽃은 꽃인데 난 꽃이라서인지 코와 눈과 가슴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신석정 선생의 수상집 ‘蘭草 잎에 어둠이 내리면’을 펼쳐본다. 선생님은 한복을 곱게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책상머리에는 큼직한 난 화분이 놓여 있다. 그 사진 우측 아래는 작은 글자로 ‘그윽한 서실에서의 저자’라고 새겨져 있다. 책장을 넘기니 ‘서시’로써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라는 시가 있다.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 그때 나는/ 노을이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역일지라도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책이 아니겠냐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멈추지 않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쌓아온 많은 사람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나치스의 계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대한 해석론을 배경으로 나온 말이지만, 지난 한 세기 헌법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나 갖다 쓰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이 글도 그런 글 중 하나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주권자가 되고 싶은 주권자 지망생들이나 주권자 호소인들도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태라고, 예외상태에 필요한 예외적인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안’, 일명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5만 원 지원법”은 법률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헌법에 반하는 처분적 법률이고,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처분적 법률이 불가피한 상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이 민생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예외상태’인데
언론 보도의 많은 부분이 현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지만, 근미래를 전망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언론의 근미래 전망은 대부분 현실에 근거하기에 높은 확률로 실현된다. 최근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변화시킬 근미래를 제시하기 바쁘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해 개인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조직 운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산업 구조는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등이 매일 지면과 화면을 덮고 있다. 인공지능 이전에도 유사한 언론 보도 패턴은 늘 존재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얘기한 때가 엊그제다. 그전에는 인터넷, 이보다 전에는 컴퓨터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이들 보도 당시에도 개인 삶, 조직 운영, 산업 구조 변화를 전망했다. 근미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대응을 강조해 온 언론은 자신의 변화와 대응에 뒤처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이러니다. 다가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말해온 언론이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각종 데이터와 전문가 의견을 빌려 제시한 언론이다. 하지만 정작 언론인, 언론사, 언론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화에 둔감했으며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전면적으로 나타나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광복회장인 이종찬회장이 일갈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든 모든 이들은 본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했다. 어떤 국가든 이런 희생의 흔적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다름없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기리고 대한민국의 밑바탕으로 삼고자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폄훼하던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1948년 건국이전에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라는 생각은 곧바로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한 친일세력들에게 면죄부를 발부한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은 자신의 행적을 두고 “우리가 전력을 다해(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게릴라로 싸웠다고 해서 독립이 빨라졌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이런 백선엽을 “과도하게 친일로 매도된 측면이 있다”며 감싼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독립기념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2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지 일색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되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도 나름 맛집이 된 이유가 있듯 출판보다 판매가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과 ‘해방’으로 요약시킨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 풍경과 전남 사투리가 어울리는 문체가 좋아서일까. 이 책을 읽고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해방, 죽음은 고통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희망을 쓰고 싶어진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싸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빼앗은 자에 붙어 영달을 꾀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을 선지자, 애국지사라고 한다. 이들에 희생으로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으로 8월 15일을 국가 공휴일인 ‘광복절’로 기념한다. 그러니 8월 15일은 빼앗겼던 시간을 다시 찾은 해방의 날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 형태도 가지지 못한 신생아 국가는 허약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