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장군이 의병을 규합, 함경도 일대에서 왜군을 물리친 업적을 기리고자 숙종 34년(1708년)에 함북 길주에 건립된 비(碑)다. 그 후 러일전쟁 중(1905년) 일본군이 강제로 일본으로 가져간 뒤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재일 사학자 최서면 박사가 발견하면서 반환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한국의 초산스님과 일본의 카키누마 센신스님이 만나 일본의 참회차원에서 한국 반환을 추진키로 약속하면서 세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비의 반환 과정을 단순화하여 설명하면, 두 스님이 야스쿠니신사의 궁사에게 간청하여 반환의 확약을 얻어 내었으나, 남북간 비의 소유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남북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는 그해 11월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개성에서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의 심상진서기장을 만났었다. 심서기장과의 대화 속에 북관대첩비 반환에 김정일위원장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 일의 성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후 초산스님이 이끄는 한일불교복지협회를 통해 금강산에서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과 협의를 하도록 방북승인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했다. 실패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함은 패배로부터도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제사회에서 엑스포와 같은 국제대회를 유치해야 하기에 반면교사가 필요해서이다. 11월 29일, 2030년 엑스포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치른다고 결정됐다. 사우디는 119표,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였다. 일부 언론은 석패라는 등 ‘졌잘싸’를 외치고 있지만, 역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받은 최악의 성적표였다. 더욱이 1년 이상을 정권 차원에서 전력투구한 결과치고는 초라함이 수준을 넘어선 충격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온통 시내를 엑스포로 도배해 놓았던 부산 시민들의 상실감은 어떤 위로의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용한 공식 예산만 5천 7백억 원이 넘었으며 대통령은 연일 엑스포 유치를 위한 해외순방에, 총리와 부산시장 등도 덩달아 해외로 돌았고, 심지어는 엑스포와 무관한 법무부 장관까지 해외로 달려 나갔다. 재벌기업의 총수들도 도대체 그 일 아니면 할 일이 없는 것인지 연일 따라다니기 바빴다. 공개되지 않은 비용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되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의 부추
백목림(白木林) ! 눈 맞아 흰 나무가 된 숲길을 걷는다. 나이 든 가슴에도 설렘이 남았는지 심장이 쫄깃거린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예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럴 때 생각나는 그 한 사람. 바닷가에서 만났던 그 사람! 예쁜 꿈을 심어주고 싶었던 그녀. 오빠는 성직자였다. 그 무렵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그 사람 손목을 잡고 잠에서 깨어났던 추억이 누에머리처럼 고개를 든다. 산사의 깊은 밤 종소리나 이른 새벽에 듣는 교회의 종소리에는 거룩한 음이 배어있었다. 큰 사찰의 종소리는 산 넘고 강 건너 먼 마을까지 다가가 듣는 이들 영혼에 스미어 깨어나는 빛 안개 같이 감싸주었다. 종소리는 여운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속에 스며들어 맑아지게 한다. 그 소리 정신을 일으켜 세운 뒤 아늑하고 그윽하고 포근하게 하면서 새로운 기운을 안겨주는 힘이 있다. 종은 울려주는 사람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에 땡땡이 종이 있었다. 이 종으로 사환아저씨는 공부 시간의 시작과 끝 종을 쳐주었다. 사찰에서는 수도승이 온몸의 힘을 균형 잡아 시간에 맞게 종을 울리고,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분이 교회의 종지기를 하면서 정확한 시간에 종소리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도시나 농촌이나 그 소
주요 방송의 날씨(일기예보)는 대개 용모(容貌) 단정, ‘날씨요정’ 별칭으로도 불리는 젊은 여성들 차지다. 영어권에서도 일기담당자(전문가)라는 미티오랄러지스트(meteorologist)라는 (공식)명칭이 있는데도, 꽃나이 묘령(妙齡) 여성이면 ‘웨더 걸’이라 부른다. 어디서나 ‘그 세계’는 경쟁의 도가니라고 한다. 선후배 간 소통방식이나 규칙, 어휘(語彙) 활용법 등의 내림(전통)이 있겠다. 허나 어떤 때 (좀 있어 보이는) 어떤 말을 누군가 쓰기 시작하고, 시청자에게 먹힌다 싶으면 다른 이들도 경쟁적으로 따라한다. 일반 시민의 언어생활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때로 어색한 말이 (그 동네에서) 돌다가 하릴없이 사그라지는 것도 관찰된다. 방송의 언어는 시민의 ‘말글 선생’이어서 공공(公共)언어로서의 역할(책임)을 잊으면 안 된다. 겨울 되면서 ‘온화하다’는 말이 날씨요정들 사이에 유행을 타는 듯하다. 들어보니 ‘온난하다’의 뜻으로 이 말을 대충 질러버리는 모양새다. 계절에 비해 따뜻한, 그러면서 햇살도 좋아 산책이라도 즐길만한 날씨가 온난(溫暖)이겠다. 온화는 ‘편안하다’는 穩을 쓰는 穩和와 ‘따뜻하다’는 溫을 쓰는 溫和의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온
지난 주에 만주 항일무장투쟁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던 '범도'의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의 마지막은 대련이었다. 나는 대련에서 잠을 설쳤다. 잠자리가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대련의과대학 드넓은 교정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정결하고 쾌적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친 바람과 해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때문만도 아니었다. 대련에서 최후를 마친 세 거인의 생애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여장을 푼 대련의과대학의 지척에 있는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참모중장이 교수형 당한 것이 1910년 3월 26일, 겨울이었다. 나는 소설 '범도'에서 다시 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안중근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홍범도 장군을 쓰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고 먹먹했다. 이회영 선생이 최후를 마친 곳도 대련이었다. 상해에 머물던 그는 다시 만주로 돌아가 무장투쟁을 재개하기 위해 대련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밀정들이 이회영의 이동 경로를 일본 영사관에 알렸고, 체포된 이회영은 처참한 고문을 당한 끝에 나흘 만에 옥사했다. 1932년 11월 17일이었다. 그를 밀고한 밀정은 이회영의 조카 이규서와 연충렬이었다. 이규서는 이회영 형
은퇴한 중년의 김모 씨는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딸에게 그간의 저축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자녀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므로 고민을 하던 차에 창업 자금의 경우에는 일정 한도내에서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증여세 과세특례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이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 근자에 들어서는 이전과는 달리 취업 대신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으며 세법에서는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창업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 증여세 부담을 대폭 줄여 주는 ‘창업자금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먼저 제도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부모로부터 받은 창업자금에 대해서는 50억 원(10명 이상을 신규 고용하는 경우에는 100억 원)을 한도로, 5억 원을 공제하고 10%의 저율로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 그 골자이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세금 없이 5억 원까지 창업 자금을 증여를 할 수가 있으며, 이를 초과하더라도 낮은 세율의 증여세만 부담하고 사업자금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억 원의 현금을 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일반 증여인 경우에는 6.2억
작년 이 맘 때 우리 언론에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북한전문가들이나 정부당국자의 논평이 연일 보도되었었다. 그런데 금년 들어서 북한에서건 남한에서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했다는 보도나 핵실험 징후가 있다는 보도조차도 없다. 그 이유가 무었일까. 북한은 금년 들어 첩보위성발사에 올인 하면서 2차례의 실패 후에 최근 들어 3차 발사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첩보위성 발사를 9.19군사합의 위반으로 간주한 우리 정부는 9.19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하자, 북한은 9.19군사합의 자체를 무력화 하는 발표를 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 걷고 있다. 북한이 상황에 따라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절대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측면에서 북한 핵실험을 저지시켜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고 싶다. 북한이탈주민들 중 길주군 인근에서 탈북한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 ‘귀신병’이라는 희귀병이 돈다는 루머가 있다고 말한다. 병의…
"지구는 두 나라가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 지난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 모두 발언이다. 이에 대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이 갈등으로 바뀌지 않도록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중국이 ‘공존’을 말하니, 미국은 ‘경쟁’으로 응수하였다. 바이든의 대중국 전략의 핵심 개념은 ‘전략적 경쟁’이다. 작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신냉전’의 우려를 불식하고 대신 치열하게 ‘경쟁’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경쟁이 양국 관계에 큰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종국에는 대결과 갈등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공존과 상생 협력’을 주장한다. ‘경쟁’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왜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PI)의 네이선 르바인에 의하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에서 경쟁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경쟁과 유사하다. 서로 전력을 다하여 싸우지만, 상대를 정치의 장에서 제거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경쟁이 적어도 생사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치적 경쟁이란 권력투쟁이고, 권력투쟁은 경쟁자 제거의 서막이다. 종국적으로 생사의 문제
쿠르드족은 뉴스 속의 나라였다. ‘어린 소년들의 늙은 노래’를 듣기 전까지. 그 노래는, 개봉한지 10여년 지나 보게 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4년 개봉/바흐만 고바디감독)’이라는 영화에 나온다. 언론 속에서 접한 쿠르드족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메마른 산악지역의 전사, 독립을 위해 늘 분쟁 속에 사는 투사…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 아이들은 없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고아가 된 다섯 남매의 이야기다. 가난만 남은 집안에서 가장이 된 열두 살 맏이 아윱에게 학교는 사치고, 설상가상 죽을 병 걸린 동생을 위한 수술비 마련이 발등의 불이다. 어린 누나가 수술비를 보태려고 이라크 노인에게 신부로 팔려갔지만 돈을 받지 못한다. 아윱은 유일한 재산인 노새를 팔기 위해 밀수꾼들과 함께 이라크 국경을 넘는다. 제목의 ‘취한 말’을 은유로 생각했는데, ‘험산 넘는 노새가 한파에 쓰러질까봐 미리 술을 먹여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행위’에서 나온 말이었다. 삶이 곧 전쟁인 이 다섯 남매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고울 리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트럭 뒤에 탄 아이들이 무심결에 부르는 민요 가사는 섬뜩했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
종교의 차이라니, 이 얼마나 기묘한 표현인가! 물론 종교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대에서 시대로 전해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신앙은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젠다베스타(페르시아의 고대 경전), 베다(바라문의 경전), 코란과 같은 여러 가지 종교 서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진실한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 여러 가지 신앙도 다만 진정한 종교에 대한 보조 수단 외에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그 보조 수단은 우연히 출현한 것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칸트)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다. 특히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잔인한 말을 서로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네가 만약 이슬람교도라면 그리스도교도에게 가서 함께 살아라. 만일 그리스도교도라면 유대인과 함께 살아라. 만일 가톨릭교도라면 정교도와 함께 살아라. 네 종교가 어떠한 것이든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사귀어라. 만일 그들의 말에 네가 화내지 않고 자유로이 그들과 사귈 수 있다면 너는 이미 평화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