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는 아니지만 반도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불안한 기사이다. 아는 사람도 백혈병, 하지만 회사의 영향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백혈병인데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그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도 했다고 한다. 결혼했다 아이도 못 낳고 갑자기 더 아프면 어떻게 하냐면서...’ 22살의 ‘새싹맘’이란 여성 블로거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발, 지난 3월31일 세상을 떠난 고 박지연(23)씨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중의 일부이다. 이 여성은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아프다며 다시한번 근무환경을 살펴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5일 삼성전자가 1983년 공장설립 이후 최초로 국내외 보도진에게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는 최근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했던 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22명 발병에 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백혈병 환자가 9명 발생하고, 이중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양측의 시각은 여기서부터 엇갈린다. 산업안전공단이 두차례 실시한 역학조사에서는 백혈병이 작업과정에서 발
1960년 4월 26일 아침. 송요찬 계엄사령관은 경무대로 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를 한다. “발포를 안 하면 수습이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승만은 “발포는 안 돼. 국민이 무엇을 원하나?” “하야하시랍니다.” “그럼 하야하지.” 당시 송요찬의 수석부관이었던 김운용 전IOC수석위원장이 모 주간지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다. 이승만이 적어도 4.19라는 국민적 저항 앞에 끝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3.15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꾀하려던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의거로 시작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그날의 주역들이 이승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던 데서 벗어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며 ‘이승만 다시보기’를 시도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청춘인 20대에 생각했던 이승만과 고희를 넘겨 바라보는 이승만이 같을 순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장차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날의 주역들이 50년이라는 세월
따오기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라 다닌다는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의 봄은 오지 않는가! 몇 년전 봄 이맘때 본 아름다운 서해5도 백령도는 하늘은 높고 구름한점 없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고요함 속에서 창공을 힘차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바위에 앉아 볕을 쬐는 물범들의 한가로운 일상과 심청각에 올라서면 효녀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임당수가 시야에 들어오고 길게 펼쳐진 콩돌해안과 백사장 장군바위의 위상이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백령도의 관문 선착장에서 야트막한 섬길을 따라 길게 하늘을 이고 핀 개나리와 목련꽃들이 꽃망울을 피우며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을때 바다에서는 꽃게잡이로 만선을 이룬 어선들이 뱃머리를 돌려 부두에 정박하여 마중나온 주민들과 어울려 풍어가가 울려 퍼졌던 몇 해전의 넉넉했던 백령도 봄을 뒤돌아본다. 지금 백령도에서는 해군초계함 침몰현장에 실종된 병사와 어부들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약관의 젊은이들을 구하겠다고 검게 출렁이는 바다에서 가족들의 만류에도 뱃머리에 서서 어떻게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의지를 태우며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든 고 한주호 님의 살신성인 정신과 고기잡이를 하다가 나랏일이라며 도와야 된다며…
지난달 26일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함미가 23일만인 17일 오후 7시9분께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로 귀환했다. 3천t급 바지선 현대프린스호는 16일 오후 함미 인양 해역인 백령도 장촌포구 남쪽 1.4㎞ 지점에서 함미를 실은 채 예인선 2척에 이끌려 출발한 지 21시간만에 무사히 2함대 평택군항에 들어온 것이다. 바지선 위에 똑바로 올려진 천안함 함미는 절단면 부분에 그물망이 쳐진 채 지난 15일 인양된 후의 모습 그대로였다. 18일에는 선체에서 탄약과 무기류를 분리해 하역했다. 이어 천안함 함미를 육상 거치대에 옮겨 민.군 합동조사단의 정밀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요즘 TV를 켜면 얼룩무늬 복장의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좀처럼 공개된 장소에 나서길 꺼려하는 그들이 TV의 주역으로 등장한 적도 없었다. 군은 항상 업무의 특성상 드러내 놓지 않고 음지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요즘 군은 그렇지 못하다. 천안함 사태의 심각성과 중요성 때문이다. 군은 항상 폐쇄적이었다.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답답함과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군에 대해 신뢰를 거둬들이지 않을까 불안하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17일 전군 작
지난해 경상북도 문경지역에 새로운 레저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짚라인이 텔리비전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가 된적이 있다. 해발 487m의 문경 불정자연휴양림에서 즐기는 9개의 짚라인 코스는 문경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들려야 하는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짚라인은 열대우림 정글지역 주민들이 바닥에 있는 뱀이나 벌레, 독이 있는 식물을 피해 나무와 나무사이를 이동하던 교통수단의 한방법이다. 과거 호주와 뉴질랜드의 개척시대는 음식이나 담배, 우편물, 기타 공사에 필요한 각종 공구를 계곡이나 강 건너편과 같이 직접 가져다 주기 어려운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외줄에 의지해 공중을 나는 짚라인은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레포츠다. 짚라인이라는 명칭은 와이어를 타고 이동할 때 “지잎∼”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평군이 17일 자라섬과 남이섬을 쇠줄로 연결하는 레포츠 시설인 ‘짚 와이어(Zip wire)’를 착공했다. 오는 8월 완공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짚-와이어는 가평 선착장 타워를 중심으로 자라섬까지 710m, 남이섬까지 700m에 각각 80m 높이로 설치된다. 이곳에 설치되는 짚-와이어도 계곡과 계곡
날개 접은 백로가 진저리치다 휘적 휘적 날아간 자리엔 원형탈모증에 걸린 민둥가지만 퀘퀘한 눈물을 달고 산다 사철 푸르리라던 소나무는 수액조차 줄어드는 기근에 온몸에 녹이 슬어가고 아는 지 모르는지 긴모가지에 레이더 삼아 순항하던 백로는 낙낙장송의 싹을 발톱으로 쥐어 뜯으며 안착하고 있다. 우 아 하 게 시인 소개 : 충남 아산 출생, <문학세계>로 등단 저서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그대를 두고도>
시골 출신이어서 그런지 어릴적 부모님이 논밭에서 두렁이나 마른 작물찌꺼기 등을 태우던 장면을 많이 보아왔다. 그땐 마냥 불구경이 좋아 그 옆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어릴적 하나의 추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위험했던 기억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만약 불씨라도 다른데로 옮겨 붙었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 말이다. 최근에도 금지는 되었으나 어김없이 논밭두렁을 태우는 분들이 있다 하겠다. 그러면 도대체 왜 시골 분들은 논밭두렁은 태워야만 하나? 그 이유인즉 오래전부터 논밭두렁의 마른 풀과 비닐, 볏짚, 고추대등 영농 잔해물(쓰레기)을 정리하여 편리한 농작업을 추진하려는 의도와 논밭두렁에서 겨울을 넘긴 병해충이 방제된다는 고정 관념에서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병해충이 방제 된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 이며 오히려 병해충을 방지하는 천적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또한 논밭두렁 소각시 인근 야산으로 불씨가 비화되어 산불로 이어지고 다시 인근 주택이나 농장 및 공장에도 연소가 확대되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전 년도 3~4월 오산소방서 화재현황을 살펴보면 산불이나 들불 화재가 전체 화재 출
인생을 살면서 삶에 자극이 되는 좋은 자료나 책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최근에 내게 좋은 자극을 준 자료가 있다.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치유성 논문’이라는 박사학위논문과 ‘시 치료’다. 매우 가치 있는 자료다. 시치료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좋은 자료를 쥐게 되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시치료의 개념이 역사적, 학문적 차원에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시치료의 과정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도록 해준다. 단순히 그것을 기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시를 가지고 혹은 시를 쓰게 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열거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치료의 한 형태이다. ‘당신들은 왜 창작을 합니까?’ 하고 예술가들에게 물으면 대개의 경우 그들은 당연히 해야만 하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고 대답한다. 피카소도 ‘내 모든 시간을 예술에 쏟아 붓지 않고선 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창의적인 노력이야말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을 포함하고 있다. 예술은 창작적인 면뿐만 아니라 치유적인 면도…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키에르케고르. 그에게 있어 코펜하겐은 지옥, 그 자체였다. 가난을 원망하며 신에게 저주를 퍼부은 아버지. 목재상으로 부를 축적했으나 죄의식으로 두려움에 빠진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의 어린 시절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집안은 불화가 끊일 날이 없었고 그 자신 역시 엉망이었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신학이었다. 그러나 신학을 선택했기에 첫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에게 불꽃처럼 짧은 인생은 온통 불안의 기록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키에르케고르를 가리켜 ‘불안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그는 소름끼치는 체험적 자기소외 과정을 저서인 ‘불안의 개념’에서 ‘불안’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으로 각각 분석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특히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전통적인 철학과 달리 그들은 죽음, 위험, 불안, 권태로움, 모순과 무지로 엮어진 존재인 인간의 현실을 개개인적 실존의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하이데거는 당시 만연하던 ‘니힐리즘’을 이용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새롭게 정립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모른다.” 처녀작인 ‘존재와 시간
세월따라 저 강물도 말없이 흘러간다. 내 영혼이 여기 잠시 머무르고 육신을 저 흐르는 강물위로 흘려 보내고 싶다. 어디쯤 갔을까 어디에 머무르든 그저 하얀 추억속으로 흘려 보내고 싶다 그리움과 슬픔은 오늘은 보이지 않으리라 부서졌다 살아나는 저 물거품처럼 잠에서 깨어난 듯이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리라 시인 소개 : 강원 영월 출생 <순수문학>으로 등단.시집 <사랑은 빚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