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에 의한 어린이 성추행사건이 몇 건 있었다.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지역에서 끊임없이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던 사례들도 있었다. 위 사건들 중 피해아동의 부모들로부터 직접상담을 접한 상담기관과 지역의 인권단체들이 함께 문제제기를 하여 가해교사가 형사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없었던 일로 유야무야된 경우도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으며’ ‘담임교사가 우리학교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피해아동부모의 태도도 있었으나 그보다 학교측의 은폐시도가 주원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에서는 해당 교사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들어 휴직을 하게 하고 사건이 조용해지면 다시 출근하여 학교로 복귀하는 것이 대략의 순서이다. 아이들의 다친 몸과 상처의 치유는 영원히 묻어둔 채. 2년전 용산의 신발가게 아저씨인 전과 9범으로부터 죽어간 미연이, 올해 초 혜진· 예슬이 사건도 마찬가이지다. 최근 몇 년간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등은 사실 어찌보면 지역사회내 아동청소년의 성과 인권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는 사건들이
안일한 교통의식을 가지고 당연히 지켜야할 교통질서를 무시하는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신호등을 잘 보고 건너라”, “차조심해라”, “무단횡단 하지 마라” 라고 외친다면 과연 아이들이 이 말을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위반을 서슴치 않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누구나 말로는 쉽게 가르치지만, 평소 우리 아이들 앞에서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주었는지 반성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을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생활화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교통질서와 교통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전체 보행중 사고가운데 무단횡단을 하거나, 횡단보도를 보행하다 발생한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서부터 올바른 보행습관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은 주의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학교에서도 체계적인 교통안전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어린이들 대부분의 사고는 학교와 집주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모든 학부모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주택가 골목길과 학교주변에서
사물을 그릇되게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은 주로 자신만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할 때가 많다. 이 주관적 생각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어린시절에 그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습득된다는 것이다. 지역적 편견과 인종적 편견 등이 그렇다. 편견이 위험천만한 것은 올바른 정보가 주어져도 이미 비딱하게 고정된 시선은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편견, 그 따가운 시선만이라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편견이란 것에 항상 따라붙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으니 바로 차별이다. 마치 쌍둥이라도 되는 양, 편견 옆에 늘 차별이 있었다. 흑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지역차별과 인종차별이 그 좋은 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차별이 엄연히 존재했었고 외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리 동포들이 받는 차별이나 미국사회에서 받는 흑인들의 차별적 대우도 편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1992년에 일어난 LA흑인폭동도 인종차별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지구촌이다. 보다 많은 문화교류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다 객관화되긴
학교에서 보기엔 우리 국가?사회의 과거와 현재, 예측되는 미래의 모든 현상이 교육의 자료가 된다. 현장교육이 사회현상을 외면할 경우 고학년이라면 그 외면을 당장 눈치 챌 것은 당연하다. 가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과 포스텍(포항공대) 등의 로봇 기술개발 기사는 과학교육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서비스 로봇기술, 세계 1위 일본 맹추격…간호?순찰?군사용 등 다양화」「관공서 안내 로봇, 내년에 나온다」, 학생들에게 당장 소개해주고 싶은, 얼마나 신선하고 신나는 일인가. 믿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지난 10월 8일 사학재단의 편의와 교직원 인사잡음을 묵인하기로 하고 돈을 받아서 검찰조사를 받은 어느 교육감이 사퇴했다. 이어 10월 13일에는 인사 청탁 대가의 뇌물을 받은 다른 교육감이 또 사퇴했다. 뿐만 아니다.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교육감이 선거비용을 빌린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됐다. “교육계는 썩었구나”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저런 분도 있을까’ 싶게 직무에 혼신을 다 바치는 교육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 부정비리는 교육계이기에 더 부각되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를 이끌어
하남시의회가 새해의정비를 동결했다. 때문에 의정비 인상을 위한 여론조사와 의정비심의위원 위촉 및 개최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절차도 하지 않게 됐다. 이래저래 시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지난해 전국의 광역·기초의회가 의정비를 인상했을 때 크게 분노했다. 아니 지금도 그 분노는 남아 있다. 뒤늦게 행자부는 의정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재조정하도록 지시한 상태지만 절대 다수의 지방의회는 아직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의정비를 올릴 때 보이던 열성에 비하면 과다한 의정비를 내리는 데는 너무 인색하다. 하남시의회의 의정비 동결 결정이 돋보이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시국의 흐름과 시민의 감정을 정확히 읽었다는 점이다. 지금 세계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거들날 판이다. 우리 정부는 선방하고 있다고 하지만 큰 소리 칠 처지가 아니다. 민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자금을 풀어 민생을 안정시키려 하지만 그리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하남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의원은 시민의 대변자다. 시민이 어려우면 도와야하고, 돕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맞다. 의정비 동결은 작은 의미에서 자기 희생이다. 그래서 멋지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완승이었다. 비수도권을 포함한 모든 지방자치 단체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수도권규제완화방침은 김문수지사의 뜻대로 선택된 국가경쟁력 확보차원의 정책결정이었다. 역대경기지사의 업적 중 가장 굵직하고 확실한 정책의 선택에서 김문수지사의 옹골찬 의지가 또 한 번 승전보를 울린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김문수지사의 표상은 강직이다. 복선이 없는 직선. 그리고 대추씨보다 단단한 자기 소신으로 대표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직격탄을 퍼부으며 지켜내려 했던 수도권규제완화 방침의 처리는 그래서 더 크게 보인다. 대권도전 운운하는 언론이나 지역여론에도 불구하고 오직 현직에 충실하겠다는 그의 소신이 다시 한 번 확인받는 자리였다. 이에 따라 김문수 지사는 지난 1일 수도권 규제완화 등 최근 현안 논의를 위한 경기지역 자치단체장 워크숍이 열렸다. 그 속내는 젖혀두고 참석한 단체장들이 절반정도에 그쳤다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불참한 단체장들이 가을철 행사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연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중요한 워크숍을 외면하고 있다면 이건 속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나 하는 우려가 앞선다. 김문수 지사를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충
어떤 분야든지 소위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뭔가 다른 게 있다. 그 요체(要諦)를 일컬어 탁월함이라 부를 수 있는데 동서고금(東西古今) 하나의 천재가 만들어질 때는 선천적 재능, 즉 타고난 천재성과 후천적으로 부모들의 극성이 합해질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난 건 결코 세상 사람들로부터 천재라고 떠 받들어지는 사람들은 한사코 천재란 말을 거부한다. 이것도 일종의 겸손일까?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근거있는 겸손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백열전구와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을 우리는 천재중의 천재로 간주하는데 그는 주위의 모든 찬사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99%의 노력, 그리고 1%의 영감’ 이라고 말했다. 에디슨 왈 “날보고 전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천번의 실패를 겪었냐고 하는데, 실패는 무슨 실패 천번의 과정을 겪었을 뿐”이라고. 천번의 실패나 천번의 과정이나 그것이 그것인데 왜 이처럼 실패를 용서하지 않을까? 그것은 자신 때문이리라.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 그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과 신념, 이것이 탁월함을 만드는가 보다. 그리고 또 있다. 낙천성이다. 엄청난…
2002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에서 한국은 치명타를 얻어맞은 적 있었다. 리우회의 이후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친 101가지 사례에서 갯벌을 파괴하는 한국 새만금사업과 인공호시화호가 바로 그것이었다. 시화호의 비극으로 불리게 된 두 개의 습지훼손사업이 지구의 지속가능발전을 해친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2008 람샤르 총회를 환경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그 별칭에 맞게 행사자체는 친환경회의로 진행하면서도 한켠에서는 여전히 개발의 캐터필러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다. 한국에서는 현재 69개의 갯벌 가운데 41곳이 매립과 간척, 양식장, 관광지 등으로 인해 개발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화호 오염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오를 무렵 새만금사업도 한편으로는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화호 간척사업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개발론 자들의 경제적 이익에 더 큰 환호를 보내고 있으니 참으로 새옹지마가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시화호 주변이 아파트, 상업지구 등 복합지구로 개발되면서 수천억의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보았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에 대한 비수도권 지방의 반발이 거세다. 비수도권 모든 지자체와 정치권까지 가세하여 방침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자칫 소모적 국론 분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이번 방침은 세계적인 장기 경기침체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경쟁력 확보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비수도권이 강경한 반발에 앞서 냉정하고 침착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들이 있다. 과거 수도권 규제를 통하여 지방 균형발전을 추진했던 일본.영국.프랑스 등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과감하게 수도권 경쟁력 강화 쪽으로 정책 전환을 하여 성과를 거둔 바가 있다. 일본은 도쿄권의 인구집중을 막기 위하여 수도권정비법과 공업제한법을 도입하고 소위 신열도 개조론이란 명분으로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다가 90년대 부동산버블과 제조업 침체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는 실패를 맛 본 뒤 수도권 규제 완화와 페지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해외로 빠져나갔던 기업들의 일본 유턴이 줄을 이었고 국내 신규 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일본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이 다시 살아났다. 경기개발연구원의 연구 분석에 따르면 경기도의 최종수요(경기도 주민과 기업의 소비.투자.수출)가 1%만 증가해도 전국 생산 유발액이 올해 기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