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필 씨 별세, 김용남 법무법인 일호 대표변호사(前 국회의원) 부친상 = 23일,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49번길 46), 발인 25일 오전 8시15분, 장지 광주공원묘원, ☎ 010-9502-0411
▲최귀인 막달레나 씨 별세, 박소영(경기신문 인천본사 기자) 씨 조모상 = 23일, 시화병원장례식장 특실(1층), 발인 25일 오전 7시, 장지 파주평화묘원. 0507-1316-4444
▲최화순 씨 별세, 허범행(경기도장애인체육회 경영본부장) 씨 빙모상 = 21일, 수원시연화장 206호,발인 24일 오전 8시 50분, 장지 수원시연화장 제2추모의 집. 031-218-6565
▲도익규씨 별세, 이연우씨(경기일보 경제부 기자, 인천경기기자협회 사무국장) 외조부상=20일, 천안하늘공원 장례식장 3호실(2층), 발인 22일 오전 8시30분. 041-553-8000 [ 경기신문 = 오재우 기자 ]
▲ 이명조씨 별세, 김태수씨 배우자상, 이진국(신한투자증권 포항지점장)∙신애∙신정씨 부친상, 정승혜(동평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최현진(시지FM치과 원장)∙이환덕(알파엔지니어링 대표)씨 빙부상 = 18일,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장례식장 101호, 발인 20일, ☎ 053-250-8451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
▲ 김혜영씨 별세, 천성호(교보증권 금융상품감리 부장)씨 배우자상 = 18일,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20일 오전 8시 15분, 장지 벽제승화원, ☎ 02-6986-4440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
▲이상갑씨 별세, 이해동·해원·해문·해정(KB국민카드 신성장사업그룹 부사장) 씨 부친상, 김정숙·허영필·강현정·김남희 씨 시부상 = 17일, 한중프라임장례식장 202호, 발인 19일 오전 11시, 장지 경남 합천 선영, ☎ 051-305-4000
▲김대순씨 별세, 고진택(의정부시 국장)씨 빙모상 = 17일, 의정부장례예식장 특3호실(의정부시 체육로 113-18), 발인 20일 오전 5시.☎ 010-2066-2487
김성수 구리농수산물공사 사장은 서울가락시장과 강서시장,양곡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에서 34년을 근무한 유통 전문가다. 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4년 전 구리농수산물공사 사장 공모에 응해 선발되면서 구리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 “2018년 9월,구리시에서 도매시장 유통전문가를 사장으로 채용한다는 정보를 듣고 응모해 개설자인 구리시장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부임해보니 공영 도매시장의 기능이나 역할 측면에서는 중앙이나 구리시나 대동소이했으나 도매법인 및 중도매인, 유통종사자들의 유통에 대한 인식, 직업 만족도, 활동성 등에서 차이가 보였다. 그래서 부임 초기부터 시장 내 유통인들과 시장 활성화에 대해 수많은 소통과 회의를 하면서 3년 간의 사업계획을 수립·실행했다. “청과시장 소분가공센터 구축 등 시설물을 재배치하고, 수산시장 회센터 등 신규시설 구축과, 옥상 주차장 전면 보수로 이용고객 편의성 강화 등 하드웨어를 재정비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거래규제 대폭 완화, 상장예외품목 확대, 폐기물 종량제 등을 실시한 결과 민원이 대폭 감소했고 ‘Clean도매시장’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덕분에 행정안전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자신을 송도 원주민으로 소개하는 이강구 인천시의원(국힘, 송도2·4·5동)은 허허벌판에 높은 건물들이 하나둘 세워지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지역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인천과 첫 인연을 맺은 건 10살 무렵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5남매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인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어머니가 갖은 궂은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살뜰히 돌보는 모습에 그는 바르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등 직접 돈을 벌기도 했다. 학창 시절 그의 첫 번째 꿈은 작가였다.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던 경험도 있었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꿈만 바라보기엔 무거웠다. 5남매 중 셋째였지만, 장남이었던 만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고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기에 작가라는 꿈은 추억으로 남겨뒀다. 이 의원의 첫 직장생활은 광고물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10여 년간 배운 것을 토대로 직접 사업장도 차리게 됐다. 처음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