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지 않아도 압니다. 얼굴은 필요 없습니다. 뒷모습만 보아도 분명할 때, 확인이라는 절차는 생략해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방송에서는, ‘이십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이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그건 그들의 방식입니다. 나는 그냥 ‘엄마와 아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리 불러도 무방할 만큼 두 사람의 뒷모습은 닮은꼴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습니다. 쾌활한 팔 동작과 명랑한 발놀림만 봐도 틀림없습니다. 저런 생김새와 걸음걸이는 물려줌과 물려받음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손과 발을 교차하며 걸어갈 때, 고개 젖히며 웃는 머리 각도와 어깨 들썩이는 모양새까지 영락없습니다. 보여주지 않아도 압니다.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까르르 웃을 때, 서로를 향해 쏟아지는 봄 햇살 같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발달장애 아들을 보살피는 어머니’라고 보도할 것입니다. 그건 그들의 말투입니다. 나는 그냥 ‘엄마와 아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리 불러도 좋을 만큼 두 사람의 웃음은 온전합니다. 억지웃음은 들키기 마련입니다. 특수학교 통학버스에 오르는 아들의 웃음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아들을 배웅하는 엄마와, 차창 안에서 손 흔
2002년 평양에서 열린 경제회담에 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 지하철을 처음 타 볼 기회가 있었다. 평양지하철은 동서와 남북 2개 구간에 17개 역의 노선으로 되어 있고, 지하 100-150m 깊이에 만들어져 있으며, 1973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다. 총연장 길이는 34km이고 당시 내가 타고 내려갔던 에스컬레이터는 길이가 120m 정도였다. 플랫폼은 대리석 돔 형태로 되어 있고 벽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중세 유럽의 궁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역구조상 4량 운행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나 당시 내가 탄 차량은 3량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 구간)이 1974년 광복절에 운행을 시작했으니 평양보다 1년 개통이 늦다. 70년대 초 평양주민의 교통수요가 많아 지하철을 건설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북한의 안내원 H선생에게 건설 경위에 대해 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실 미군의 핵 공격에 대비한 대피 시설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6·25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을 북한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하나
부자는 아무래도 무자비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인간다운 자비심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이내 가난해질 것이다. 우리가 식탁에 둘러 않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불리 먹고 있을 때, 길가는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화를 내고 사기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빵 한 조각 때문에 남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그 사람이 정말 그랬다 하더라도, 너는 그를 가엾게 여기고 더욱더 그 사람을 가난에서 구해주어야 한다. 만일 네가 끝까지 자선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모욕만은 주지 말아야 한다. (요한) 먼저 약탈을 중지하고, 그 뒤에 자선을 베풀어라. 부정한 돈에서 손을 뗀 뒤, 그 손을 이웃을 위해 내밀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제 손으로 어떤 사람의 옷을 벗겨, 같은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입힌다면, 우리의 자선 행위가 곧 범죄행위에 대한 방아쇠가 되는 셈이다. 그 같은 자선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요한) 부자가 자선 행위를 할 때만큼 그의 잔인함이 잘 드러날 때는 없다. 부잣집에서는 세 사람 앞에 열다섯 칸의 방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몸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상위 순위에 들어갈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정치와 경제 성장 그리고 분배를 이루고 있는 유럽의 리더 국가다. 시민의 의식도 높아 새벽 시간에도 교통 신호를 지키고, 자발적 자원봉사 조직이 전국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동산, 주식에 열광하기보다는 저축에 집중하고, 총리도 퇴근 후에는 마트를 가는 시민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독일이다. 몇 년 전 베를린 공항에서 프랑스행 항공권을 구매한 뒤에야 일행 중 한 명이 태블릿 PC를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을 알았다. 시간도 상당히 지났고 복잡한 베를린 공항이니 포기하고 있는 순간 독일인 택시 기사가 태블릿을 들고서 나타났다. 택시 안에서 일행이 프랑스 이야기하는 것을 기억하고 프랑스행 게이트로 급히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너무 고마워 사례를 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며 당연한 일을 했다고 기사는 조용히 사라졌다. 이렇게 선량한 시민들이 한때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2차대전의 전범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베를린 시내 중심의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는 엄청난 광장에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F) 의약품 등 지원물자가 1월 초 해로를 통해 북한에 반입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북한은 코로나19 발병직후 지금까지 국경 봉쇄 중이며, 북한 상주 국제기구 직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후반에 활발했던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은 현재 많이 약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인식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 러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국제사회는 북한을 세습 독재체제로 핵무기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도적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휴머니즘과 자유와 인권, 일상의 행복을 북한주민과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정서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은 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으로 20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세계식량기구(WFP) 등 유엔기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산 쌀 15만 톤 지원 등 가급적이면 남북간 직접 지원을 선호하는 입장이었고, 국제사회는 우리의 참여와는 무관하게 피골이 상접한 북한 아동 사진
‘하나 들으면 열 깨친다.’ 공자님 시대부터 있었던 이 말, 이렇게 뒤집어보자. ‘하나라도 들어야, 열을 깨친다.’ 전편(前篇)에서 문일지십(聞一知十) 얘기 했더니 친구가 전화했다. 첨단 교육기업이나 전문가들이 수두룩한데 낡은 그 얘기를 왜 하느냐고. 은퇴한 역사교사다.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깜깜한 상당수 우리 2세들, 그 절망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는 마냥 좌절했다. 오래 전, 언론재단의 고교생 대상 미디어리터러시 강의 중 겪은 일이었다. 원래의 관심사를 밀어두고 말과 글 ‘선생’ 일 시작한 계기였다. 언론과 블로그 통해 훈수도 해왔다. 문일지백(-百)인들 못하랴? 그런데 하나 들어 그냥 백(100)을 아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들어야 한다. 그 하나, 씨앗 지식(의 내용)이 뭔지를 아는 것이 제대로 듣는 것이다. 요즘은 부모 교사 심지어 족집게 강사조차 대개 ‘말의 뜻’과 ‘언어를 어떻게 이해할지’와 같은 수용(受容)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온 제목 또는 개념)만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科) 치료하는 의사냐고 묻더라는 ‘유머’, 2세들에 대한 모욕이자 실례다. 기성세대 스스로…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자 서울에서 밤새워 달려온 아들과 손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손자와 손녀가 차에서 내려 ‘할머니!’ 하고 품으로 달려들면 아내는 힘껏 껴안으면서 아이들 등을 두드려주며 ‘어서 와’ 하고 반겼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해도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어서 오라’면서 손 벌려 환영해 주던 기억이 새롭다.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나면 언제 누구에게 이렇듯 따뜻하고 정감어린 어투로 환영 받던 일이 있었는가?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 정감어린 언어를 언제 듣고 못 들었던가.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 아이들이 서울로 돌아간 다음 날 허전한 마음으로 도서관 주변 산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는 건장한 아들과 얼굴 빛 고운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믿음직스럽고 다정한 부자의 새벽길 같았다. ‘나는 저렇듯 살아오지 못했는데-’ 갑자기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으로 가슴이 건조해지는 순간이었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일까? 열심히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의 길일까? 행복한 가정은! 새삼스럽게 자문하게 되었다. 내 욕망만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며 동양 문학과 한국인의 문화와 멋도
새해 미래적 소통 풍경 계묘년 새해 정월이다. 새해 소통 풍경은 어떨까. 양력이 정착되고 사회적으로 익숙하여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전통사회적인 특성이 아직 곳곳에 숨쉬고 있다. 새해 첫 날인 설과 팔월 한가위 추석은 민족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한국인이 세시풍속으로 지내는 큰 명절이다. 설은 송구영신의 새해 출발이다. 그러니 설날에는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여 조상들께 차례를 올리고. 서로의 건강과 화목을 소망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전통사회에서 정월 대보름 때까지는 새해맞이 분위기 속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렸다. 그렇게 세배를 받은 어르신들은 새해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해 주고 조심해야 사항들도 일러 주셨다. 일종의 새해 운세의 길흉화복 예언이었다. 주역과 토정비결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어서 불확실하다. 불확실하니 불안하다. 인간의 심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뭔가 확실성을 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대부터 정초에 또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미래의 길흉화복에 대해 예측하고자 했다. 전통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예언은 주로 점술이 지배적이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중국 간의 지경학적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강대국들 사이의 경제제재로 인하여 기업경영의 리스크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경제제재 주체 및 수단의 다양화 현상이다. 경제제재의 주체는 전통적으로 유엔과 미국이었으나 최근 유럽연합과 중국 등이 가세하고 있다. 유엔은 국제 평화에 대한 위협과 침략 행위에 대하여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형식으로 제재를 부과해 왔으나 최근 상임이사국의 분열로 그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지정·지경학적 목적을 위하여 활용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다.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과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 등을 통하여 기술 제재를 새로운 제재 수단으로 도입함으로써 국제경제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은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제재 결정권을 회원국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주로 유엔의 제재를 실행하는데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단독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스위프트(SWIFT) 제재는 유럽연합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 중 하나다. 중국은 2020년 수출통제법과 2021년 반외국제재법을 제정하여 외국의 대중국 제재에 대한 반격의 근거를 마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한 마리의 제비로는 봄을 부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봄을 느끼고 있는 첫 번째 제비가 날지 않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그처럼 온갖 꽃봉오리와 풀이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라면 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가 첫 번째 제비든지 아니면 천 번째 제비인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그것이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인도 자기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영원해진다. 그는 영원해짐으로써 비할 데 없이 강력해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한다. 개인의 생활이든, 사회 전반의 생활이든, 법칙은 오직 하나, 생활을 개선하고 싶으면 그것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냐 예속이냐 하는 인류 미래의 운명이 걸려 있는 오늘날, 이같이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병사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한 하느님 나라 군대 지휘관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죽은 사람이란, 변천하는 것에 대한 번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