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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전,란’은 왜 부산영화제 개막작이 됐을까

 

얼마 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가 역사극 ‘전, 란’을 개막작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다소 의미심장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전, 란’은 조선 선조 때의 이야기로 일본의 침략, 곧 임진왜란 당시 내우외환의 혼란스런 정변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그러나 왜군(倭軍)과의 전쟁보다는 선조라는 지도자의 무능과 부도덕 그를 타파하려는 대동계의 반란, 그 조직을 만든 정여립의 사상에 방점이 찍혀져 있다. 정여립의 대동주의는 일종의 생시몽 식 사회주의로 흔히들 몽상적 사회주의로 불리운다. 생시몽 주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나왔지만 정여립의 사상은 16세기 조선에서 나왔다 더 빠르다. 노비와 양반이 하나되는 세상,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정여립은 당연히 반역죄로 참수됐으며 영화 ‘전,란’의 오프닝 씬은 그의 목에 칼이 꽂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여립은 현재의 전라북도 장수군 신전마을에서 목이 잘렸다.

 

영화 ‘전,란’의 원래 제목은 ‘전쟁과 반란’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너무 직설적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그래서 줄인 것으로 짐작된다. 세상에 대한 반역, 임금에 대한 모반, 위정자들을 향한 혁명을 다소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작은 블랙리스트 감독 출신이자 세계적 명성의 박찬욱이 했으며 연출은 김상만 감독이 맡은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200억을 투자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노비 천영(강동원)과 종려(무가 집안의 장자)이다. 둘은 신분 차이에도 우정을 나눈다. 둘은 대동계의 ‘이즘(ism)’대로 노비와 양반의 귀천을 없앨 만큼 친하게 지내지만 결국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치열하게 대립하며 피바다의 싸움을 벌이다 결국 죽음의 화해를 이룬다. 둘은 이 와중에 왜병 잔당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반면 임금 선조의 폭정을 견뎌 내기도 해야 한다. 사회적 모순과 갈등은 워낙 중층적으로 벌어지기 마련이라 폭정과 싸우는 게 먼저인지, 외환을 없애는 것이 먼저인지 늘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영화 ‘전,란’이 보여주는 시의성이 조선조가 아니라 기묘하게도 지금의 우리 현실과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단순한 기시감이 아닐 터이다.

 

영화, 특히 영화제는 시대를 읽어 내거나 앞서 가는 코드를 간직하고 있을 때가 많다. 국내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고 무엇보다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전,란’을 선택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관객들이 그것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 결과는 아마도 2~3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영화가 주는 사회적 메시지는 그것이 사회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영화 속 선조가 경복궁을 재건하려고 탐욕을 부리는 장면, 모든 공간이 주는 형식이 권력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의 아전인수 격 논리를 펴는 장면은 지금의 정부가 청와대를 버리고 수백 억원을 들여 용산과 한남동으로 이전한 모양새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얘기한다. 미래가 곧 과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 ‘전,란’은 꽤나 정치적이다. 오로지 정치인들 만이 안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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