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나는 너의 언니가 아니라 엄마야/ 언제부터?/ 16살이었어, 너희 아빠는 그 뒤로 만나지 못했어/ 엄마의 엄마는 아셔?/ 엄마가 아니라 언니인게 좋을 뻔했어 등장인물의 짧은 대화로 이루어진 장면 70편이 하나의 연극 돼 무대에 올랐다. 2012년 영국의 극작가 카릴 처칠이 연출했으며,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 진해정이 새롭게 구성했다. 5명의 배우들은 총 100명의 등장인물들을 연기한다. 90분 동안 나열되는 70개의 장면들은 핸드폰의 틱톡과 릴스를 보는 것처럼 흐른다. 방금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된 엄마와 딸, 놀이공원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부부, 부서진 컴퓨터 앞에서 인간의 사랑을 논하는 친구는 우리 사회의 단상을 나타낸다. 정보화시대에 방대하게 쏟아지는 정보들과 닮아있다. 핸드폰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에 의해 순식간에 흩어지는 피드와 동영상처럼 이야기들은 서로 관계를 갖지 못한다. 다음 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하는 순간 새로운 정보가 입력된다. 사람들은 이야기들의 관계를 설정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70편의 서사를 갖지 못한 이야기들처럼 인간의 사랑은 사고 할 겨를 없이 표류한다. 더 많이 안다고 행복해질 수 없는 것처럼, 정보 앞에
“개인이다 보니 개인주의적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연대적인 삶을 외면하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자신의 일곱 번째 소설 '해정'을 출간한 전민식 작가는 2일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책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달 25일 출간된 전 작가의 소설 '해정'은 거대 권력에 감시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박진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책의 제목인 ‘해정’은 한때 특수요원이 사용했던 용어이며 자물쇠나 빗장을 푼다는 은어로, 권력에 맞서는 요원들의 활동을 암시한다. 어둠을 꿰뚫어보는 남자와 그의 파트너인 여자가 조직의 명령으로 재야인사들의 집 열쇠를 따고 정보를 빼오는 사찰 요원으로 활동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저자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억압받는 부조리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남녀를 통해 그 어떤 세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보의 홍수시대를 그려냈다. ‘해정’을 쓰게 된 계기를 묻는 말에 전 작가는 오래전 읽었던 해외 토픽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몇 년 전 해외 토픽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생 2~3학년 아이가 어두운 곳에서 선생님이 제시한 수학 문제를 푼다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