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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난 우리가락 일본열도 흔들다

일본 후쿠오카 ‘삼일문화제’

일본 후쿠오카에는 장마철 마냥 강한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지칠줄 모르는 빗소리를 뚫고 북소리가 들려온다.

 

금세 일본 열도를 뒤흔들만큼 신명나는 징과 꽹과리, 장구의 어우러짐이 울려퍼진다. 고개를 돌려본 그곳에서 한국인과 재일동포, 일본인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국’을 울부짖고 있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 풍물패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음악도 쉽게 담지 못했던 진정성이 빛을 발해 숭고하다고 느껴질만한 소리였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한국땅이 아닌 일본의 후쿠오카 작은 초등학교에서 더욱 아름답게 존중받으며 18년째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본지는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18회 삼일문화제를 현지 취재했다.

 

3·1운동 기념 재일동포·일본인 등 매년 한국문화 소개
400명 민속놀이·사진전 등 관람 ‘축제의 장’ 자리매김


삼일문화제는 3·1 운동을 기념해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일본 후쿠오카 지요초등학교에서 열린다.

재일동포들과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등으로 구성한 삼일문화제집행위원회가 1년간 틈틈이 사물놀이를 비롯한 풍물 무대공연을 준비하고 민속놀이와 먹거리 등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부대행사를 계획한다.

그리고 만세 소리가 한국땅을 뒤덮었던 3월, 신명나는 우리소리로 일본 열도를 뒤흔드는 것이다.

자발적인 민간단체 참여로 이뤄지는만큼 한국은 물론 일본 해당 시의 그 어떤 예산지원도 없다.

재일동포들과 일본인 등의 마음을 담은 회비로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재정상황이지만 회원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18년째 의미있는 축제를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일 새벽, 수원 우리소리 풍물단은 삼일문화제 한국 대표 민간 단체로 참여하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었다.

일명 ‘우리소리 주부 풍물단’은 경기도무형문화재 31호 경기소리 이수자인 홍은상씨의 인솔 아래 북 신은영, 장구 서희재, 꽹과리 고희숙, 징 신선휘까지 모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던 팀으로 25일 축제 전날에 진행하는 리허설 참가를 위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 도착한 후쿠오카는 아침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컴컴했다. 날씨가 이래서야 내일 열리는 축제가 가능할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초등학교 체육관에서는 동포들과 일본인 20여 명이 뒤섞여 장단을 맞추고 무대를 만들고, 객석을 마련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반가운 인삿말을 건네자마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임이 주어졌고 모두 찌뿌린 날씨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체육관을 뛰어다녔다.

서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동포들, 그리고 일본인들과의 첫 만남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어서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축제 당일인 25일.

그토록 걱정했던 날씨는 눈부신 햇살로 축제집행위원회의 근심을 날려버렸고,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날 체육관을 찾은 사람들은 족히 400여 명이 넘은 듯 하다.

매년 이 정도의 관람객이 오고 많을 때에는 800여 명이 문화제를 즐긴다고 한다.

특별히 홍보도 없는 것 같아 그저 ‘우리만의 축제’로 가볍게 여겼던 짧은 생각을 반성하게 된다.

리허설에서 만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공연을 위해 속속 축제의 장으로 몰려들었다.

교포3세와 일본인 교사,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 등 우리소리를 배우고 있는 친목단체부터 자원봉사자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열림굿으로 시작한 축제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본격화 됐다.

관광객들이 한국의 아리랑을 부르며 단심줄(소나무에 여러가닥의 줄을 매어 드리우고 그것을 한 아이가 한끝씩 쥐고 돌아가면서 꼬는 대동놀이)을 체험하고 널뛰기와 제기차기, 윷놀이 등 한국 민속놀이를 즐겼다.

생전 처음해보는 한국 민속놀이에 일본인들은 마냥 빠져들었고 웃음소리와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고운 한복 입기였다. 무대 한켠에 마련된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으며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수원 우리소리 풍물단이 삼일문화제집행위원회 부탁으로 마련한 한국 과자와 열쇠고리, 핸드폰고리 등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2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 대폭발이었다.

즐거움과 함께 모든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공간도 있었다.

재일본 대한민국청년회 후쿠오카현 지방본부가 마련한 사진전 ‘한국의 역사’였는데, 지나가는 모든 이가 매 사진마다 오랜 시간 멈춰서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희망을 꿈꾸는 듯했다.

일본 중학교 교사 토오다 유키노디(55)씨는 “동료 교사와 제자들과 이 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찾아온다”며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앙금을 털어내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동포 박분순(72) 할머니는 “초·중·고 모두 일본에서 나왔지만 아직까지 한국말을 할 줄 안다”며 자랑스럽게 입을 뗐다.

이어 “일본인과 어울려 모두 함께 아리랑을 부를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빔밥 등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 관람객이 조용히 객석을 채웠다. 본격적인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곱게 옷을 차려입은 수원 우리소리 주부 풍물단의 공연에 많은 이들이 귀기울였고, 홍은상씨의 신명나는 소리에 어깨를 들썩였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뒤섞여 체육관을 뛰어다니며 풍물을 즐겼다.

재일동포들의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일본인들의 한국 문화 사랑, 일본땅을 밟은 한국인들의 감동이 모아져 하나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비록 그 무대는 작았지만, 그 곳에서 번져나간 감동은 내년 제19회 삼일문화제가 펼쳐질 때까지 이어지기에 충분해 보였다.

재일동포등은 ‘현대의 독립투사’라고 불릴 정도로 검질긴 민족애를 품고 갖은 배척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땅’에 함께 있지 않지만 한국문화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더욱 깊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인터뷰]삼일문화제 집행위원회 김일근 위원장

 

“2세들에게 고국문화 자부심 키워주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우리나라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또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본에 있는 많은 재일동포들이 저처럼 애국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삼일문화제 집행위원회 김일근(가네야먀·59) 위원장은 더듬거리며 내뱉는 한국어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재일교포 2세로 다섯 명의 아들을 두고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 살고 있다.

15년 전 네 명의 아들을 일본학교에 보낸 김 씨는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들이 ‘조선사람인데 왜 일본에 있는지 모른다’고 고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일하게 한글이름을 가진 막내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자녀들에게 자국문화를 알려주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래도 아주 조금 한국말을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몰랐어요. 한국문화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죠. 한국인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이름을 한글로 짓는 것으로도 부족했고요. 그 때 봤어요. 신문에서 삼일문화제 참가팀이 길거리 공연한 것을 다룬 기사였어요.”

김 씨는 15년 전 접한 신문기사를 통해 삼일문화제를 알게 됐고 직접 아들과 이 모임에 참여해 10회때부터는 위원장으로 문화제 개최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일본에서 차별받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한국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마당’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 갔을 때도 차별을 느꼈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조국의 평화를 바라고 애국하는 마음을 지켜나갈 꺼예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보다 애국이라는 단어를 더욱 강조하는 그에게서 누구나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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