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가구에 밀리는 현실 안타까워 “혼 담겠다” 다짐
“처음 일을 배울때부터 옻을 타지 않아 하늘이 정한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37년을 옻과 함께 해온 ‘유명공방’의 유상희(51) 대표의 장인(匠人) 정신이 깃든 한 마디이다.
하남시 신장1동 6평 남짓 한 옥탑방에 마련된 유씨의 나전칠기 작업장에는 그가 직접 칠해 만든 서류함, 명함첩, 찻잔과 술잔, 다과상 등 현란한 빛깔의 칠기가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듯 즐비해 있다.
투박한 나무 하나가 온전한 칠기로 재탄생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4개월.
유씨는 “8~9회 옻칠을 하고 고운 사포로 광을 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공정과 아이들 키우듯 정성을 들여야 아름다운 빛을 낸다”며 “칠기에 혼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칠 장이’ 경력이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유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방황하다 우연히 광주군 소재 ‘한양공예’에서 심부름꾼으로 발을 내딪게되면서 칠기와 인연을 맺었다.
유씨는 “5남매 중 넷째로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면서 “당시엔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일을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1980년대 말 성남시 만정공방의 현 경기도무형문화제 제24호 배금용 선생을 만나면서 나전칠기 예술을 배워 훌륭한 전수자가 된 유씨.
그는 지난 1994년 한국종합미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프랑스 마르세이유 전통공예전에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각종 대회에서 입상을 거듭하며 전통공예부문 유명인사가 됐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유씨는 “15년 전만 해도 20여곳의 공방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랑 두 곳 뿐”이라며 “서양가구에 떠 밀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진 작품전에서 자신이 출품한 나전칠기 보석함을 감상한 한 시민으로부터 깜짝주문을 받기도 한 유씨의 작품은 예술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씨는 “제작시간과 비용을 줄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칠기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해야 할 이 시대 장인정신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남 건단산에 올라 옻순을 따다 작품에 쓰는 등 옻과 하나가 되기 위해 애썼다”면서 “나전칠기에 혼을 담아 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