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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59>-깨달음의 길

혜봉, 과거 급제 후 참선 주력 - 소설가 이재운

 

혜봉에 대한 부정(父情)이 그만 잘못 솟구친 것이다. 그래도 선비끼리의 일이라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고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까치집같은 나뭇짐을 비틀거리면서 지고 오는 혜봉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이 고개를 잔뜩 떨군 채 흐트러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단 둘이 남게 되자 아버지는 혹시나 하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그래 공부는 얼마나 했니? 통감 정도는 벌써 익혔겠지?”

“예? 그건 모르고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넉자는 압니다.”

“정말 그것밖에 아는 게 없느냐?”

“예, 선생님께서 그것밖에는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어릴 때의 그 천진하고 명랑하던 아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당장에 혜봉을 데리고 밤길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버지 자신이 자식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혜봉의 아버지는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글자는 모르지만 글을 이해하는 정도는 이미 사서(四書)에 앞서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자식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천지현황 넉 자 속에 모든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으니 그것을 철저히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즉 천지현황은 우주의 근본이니 근본을 알고 나면 지엽은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이고, 그랬었구나.”

혜봉의 아버지는 즉시 친구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미안하네. 참말 내가 잘못했네.”

“이 친구야, 혜봉이가 어렸을 때 그 애의 천진난만한 성정을 길러주고자 하던 자네 뜻을 잘 아는 내가 또 다시 쓸데없는 문자의 숲 속으로 혜봉이를 몰아주기를 바랐단 말인가!”

혜봉은 그 후 문자에 매이지 않는 공부를 마치고 소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뒤로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 관직을 잠시 맡아보기도 하고 독립운동도 하는 등 방랑을 하다가 서른여섯 살이 되던 무렵 상주 남장사로 출가하였다.

그뒤 우연히 금강경을 읽다가, ‘아무 것에도 이끌림이 없이 마음을 내라.’는 구절에 막혀 여러 해 동안 참선에 주력하였다. 유가적 안목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그는 금강산 내의 여러 사찰과 전국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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