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 하더라도 절대 후회는 하지 말자.”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법원 행정고등고시에서 수석 합격한 20대 법원 직원이 연달아 사법고시에 합격해 화제다.
수원지법 형사2부에서 참여관(법원 직원)으로 근무중인 강정현(29)씨는 과장과 같은 직급의 5급 사무관이다.
지난해 9월 법원 행시에서 60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9급 법원 직원이 15~20년 걸리는 5급 사무관을 단번에 차지하게 됐다.
더 놀라운 것은 강씨가 지난 3~6월 사무관 연수기간에 사법고시 2차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 오는 11월20일 사법연수원 면접만 남겨 두고 있다는 사실.
면접에서는 큰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대부분 통과되므로 사실상 사법고시를 통과한 셈이다.
경제적인 뒷받침과 본인의 노력이 있어도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잇따라 통과한 강씨의 첫인상은 어렵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공부에만 매달렸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아버지가 하던 건물임대업이 어려워지면서 고등학교 때 고향인 경남 진주를 떠나 대전으로 이사온 강씨는 막연히 동경하던 검사의 꿈을 이루려고 98년도 충남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를 하며 동생과 어머니 등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대학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쓰러지자 강씨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패스트푸드점 점원, 할인매장 짐꾼 등을 하며 가정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서 각 과목에서 낙제점수(F학점)를 받게 되었고 2년간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가정을 일으켜 세우겠다’며 2000년부터 본격적인 사시준비에 들어갔다.
사시공부에 매달 들어가는 60만원 가량의 돈이 어머니가 한 달 동안 식당일로 힘들게 버는 150만원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고 공부한 강씨는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지 2년도 채 안된 2002년 1차 사시에 합격했다.
너무 빨리 1차 시험에 합격해 자만한 탓인지 강씨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2차 시험에 탈락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당뇨병 합병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강씨는 결국 2004년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올라와 사시 준비를 하는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3년 가까이 과외를 해주는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와신상담’한 끝에 지난해 사시에 다시 도전해 1차 합격했고 지난 6월 드디어 2차 시험도 통과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는 2차 시험 한 달 전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스럽다’는 그는 면접이 끝나면 내년 초 휴직하고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수업을 받게 되며 좋은 성적을 거둬 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민사법, 국제거래법, 법경제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강씨는 “불행했던 지난 일에 대해 너무 많이 후회했었는데 후회해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괴감만 들었다”며 “후회하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가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