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비해 요즈음 청소년들의 체격이 무척 좋다. 매스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지난 1960~70년대 청소년들보다 하반신이 길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상반신의 차이는 거의 없으나 하반신이 무척 길어졌다며 체격이 서구화되고 있다는 보도였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 보다 음식도 좋고 생활 조건도 좋아졌으니 당연한 결과인 듯 하다. 이렇게 사람이건 사회이건 시대에 따라 나날이 성장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시대를 이끌며 사회를 성장, 발전시키는 것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학자 슘페터 같은 사람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기업의 이노베이션에서 찾고자 했다.
끝없는 혁신에의 의지가 바로 이 시대의 눈부신 기술혁명을 이끌어온 견인차라고 생각된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창조적 정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류의 보배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들에게 창조적 정신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청소년기에는 신체적 성장·변화가 급격하며 이에 따라 정서적으로도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 전통사회처럼 일관된 가치체계를 청소년들에게 전달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상당한 가치의 혼란과 자아정체감의 위기를 맞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 원인으로 첫째 전통적인 사회체제의 해체와 핵가족화로 청소년들이 소속감을 잃었으며 둘째 가부장적 권위의 약화로 사회의 가치규범을 제시받지 못했고 셋째 서양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저속한 대중문화가 여과 없이 대중 매체를 타고 청소년들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며,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주변적인 인간으로서의 청소년은 그들의 좌절과 반항심과 욕구불만을 사회규범으로부터의 일탈(逸脫)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청소년 비행이다”라고 했다.
청소년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로서 학교에만 그 해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청소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사회전체의 건전화(sane society)를 지향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번주에는 고등학생들의 수능시험이 끝나게 된다. 속칭 입시지옥이라는 12년간의 굴레 속(?)에서 해방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동안 매년 수능시험이 끝나는 시점을 계기로 연말과 더불어 청소년 범죄 및 탈선에 대한 사건들이 부쩍 늘어나고 관련 기사들이 언론 매체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 되풀이 돼왔다.
비행·탈선을 예방하기 위해 경찰은 물론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라는 서양의 격언이 떠오른다.
먼저는 가정에서 가족의 역할이 가장 필요하고 적절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의 비행과 탈선은 그들의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과 또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 붓기 위한 돌파구에 대한 부작용인 것이라 싶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 존중받는 다는 느낌을 주는 사랑이 수반된 감성적 관심이 요구된다.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귀한 존재의 가치를 갖고 그 가치를 통해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자기 존중감을 높게 하기 위해서는 그냥 생각이나 말로만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보다 높은 자기 존중감을 원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청소년들은 유리그릇과 같아서 깨지고 나면 원상태로 복구하는데의 시간과 물리적 요소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되며 그 결과조차도 장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하는 간접 자본의 잠식일 수 있다.
어른들의 마음이 온통 대선정국으로 어수선한 지금 자칫 청소년문제에 대해 소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청소년들의 관심과 참여분위기 조성을 위해 여가활동,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 참여유도, 선도프로그램 운영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가정에서는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의 청소년을 돌보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