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백남준.
파리1대학 교수인 마리 안느 뒤게는 그에 대해 “백남준은 종종 몽상가로 불린다. 예언가 혹은 점성술사와 같은 개념에 아주 가까운 이 단어 대신에 나는 그를 단순히 아주 예리하고 자유로운 사상가였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힌바 있다.
그가 떠난지 2주기를 맞아 국내 미술계에서는 떠들썩한 추모식은 생략한채 그의 작품세계를 기억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조촐한 자리로 대신했다.
이 자리에 그의 부인인 구보타 시케코가 참석, 자리를 빛냈다.
도내에서는 김문수 지사가 오는 9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 구보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할 것을 제안하는 등 백남준=경기도라는 인식이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누구이며 왜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하는가’란 간단한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가 도래했다.
일반인들은 ‘백남준’ 하면 우선 수십 수백개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용한 작품들을 떠올린다.
그의 작품인 ‘비디오 스쿠터’(1994), ‘거북이’(1993), ‘침대’(1991) 등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된 텔레비전 수상기는 국내에는 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작품세계는 일반인의 폭과 넓이를 뛰어넘는다.
상상 속에서 읽어내야 할 그의 생각과 예술관은 또다시 읽어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광고 문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시대가 변해도 새로운 흐름은 언제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 광고 문구와 같이 국내에서 그를 지칭할 때 ‘비디오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광고는 한컷한컷 심혈을 기울이지만 그 작품의 시간성은 항상 유한하며 단편적이고 트랜디하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루구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씨와 어머니 조종희씨 사이에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2년 일본 동경 교양학부에 입학했고 1954년 동경대 미학과를 졸업한뒤 독일 뮌헨대에서 입학해 서구 미술계에서 새로운 시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르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텔레비전 매체를 이용한 비디오 예술의 길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신매체를 통한 미술의 새로운 길, 즉 창조적인 몽상가 백남준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후 1965년 뉴욕에서 제작한 비디오테이프들을 비롯해 1969~1970년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제작된 보스턴 WGBH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사용한 초유의 비디오 신디사이저, 1974년 제작한 TV정원 등 텔레비전 매체를 예술적으로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몽상적이라 칭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는 백남준의 예리한 감각을 통해 시간을 변주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텍스트, 선언, 재치 있는 경구, 에세이 등은 시각적인 효과 못지않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백남준은 독일에 유학온 이후 10여년만인 1963년 첫 작품전을 연다.
그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일반인들의 기억과 달리 백남준은 음악에 정통했다.
독일 유학시절 음악학적 논문을 쓰기도 했으며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을 투영시키는 작업에 몰입했다.
이와함께 후기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더라도 그의 영감의 실체는 음악이며 의외로 동양적이며 미래적이다.
미래를 기초한 그의 예술세계가 신매체인 텔레비전 수상기에 천착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백남준은 신미디어, 그런데 왜 신미디어인 텔레비전 수상기에천주목했을까?
또다른 한면에서 그는 현대적 감각의 이 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통해 자연으로 회귀, 즉 안티 자연의 정신을 구현하고 싶어했다.
1975년에 선보인 작품인 ‘물고기 TV,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를 통해 백남준은 수상기를 수족관으로 그 속에 살아있는 구피들을 넣어 반어적이며 기발한 착상을 실현한다.
한 인터뷰에서 백남준은 “나는 소위 기술에 대한 안티인 기술을 사랑한다”고 밝히며 언어적인 반어법과 그의 작품세계에 투영된 자연애를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작품태도는 유독 시간에 대한 미술적 형상화에 큰 기여를 해냈다.
그는 ‘TV 정원’(1974), ‘하늘을 나는 물고기’(1975)작 등을 통해 인간이 시간을 인지하는 사고를 통한 형상화에 심혈을 기울기도 했다.
초현실적인, 더욱이 인간적인, 시공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그는 우리를 떠난지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이제부터 백남준은 더욱 우리에게 친근하고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백남준은 미래적이며 현실적이다. 또한 인간을 사랑하며 74년의 그의 인생동안 미래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불안한 확신과 시사를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또 서구로부터의 찬사를 받아 국내에 화려한 복귀로 막을 내린 그가 우리에게 경기도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되돌아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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