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으로 16년간 투병하던 원로 작곡가 박춘석 씨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0세.
가요계에 따르면 박 씨는 이날 오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1930년 5월8일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했다. 본명은 의병(義秉).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ㆍ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나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사랑의 맹세(패티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아가씨(박재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 등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로 부상했다.
이미자와는 그동안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를 비롯해, 30주년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까지 무려 500여 곡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 지구레코드사 전속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거성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며 1950~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온 그는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천700여 곡을 작곡했고,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천152곡이 등록돼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그도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모습을 감췄다. 16년간 투병하면서 거동은 물론, 언어장애로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다. 고인은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KBS 방송가요대상, KBS 가요·가사·음반기획상, MBC 10대가요제 특별상, KBS 가요대상 작곡상,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 옥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