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단어 스마트(smart)의 뜻은 이제 누구나 안다. 혹시나 해서 네이버 사전을 찾아봤다.
1. 맵시 좋은, 말쑥한 2. 깔끔한 3. 똑똑한, 영리한 4. 잽싼, 활기찬 5. 상류층, 고급의 등등 형용사 형태의 뜻 만해도 5가지가 넘었다.
사물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표현도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명사다. 스마트 뒤에 명사를 붙여 스마트+명사 형태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스마트가 들어간 표현해 익숙해 있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은 사전에 있는 5가지 뜻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광주시 실촌읍 건업리 213 일대 청아랑 영농조합법인 임성혁(42) 대표이사는 스마트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나이다. 그에게 스마트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적어도 ‘버섯’이란 작물로 그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 해 평균 60억 원의 고수익을 올리는 경기도 대표 농업전문경영인(2010년)이다.
임 대표는 느타리 버섯의 국내 대표 브랜드인 맛타리를 창시한 장본인이다. 맛타리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까지 고난과 시련도 많았다. 무엇보다 짝퉁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맛타리와 유사 상표를 낸 경쟁 버섯 생산자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버섯의 고유 재배 기법인 병 재배에 성공했다.
병 재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세월은 임 대표의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원래부터 머리가 명석(스마트)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육군사관학교로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 청문회 TV모습을 시청하면서 군인에 대한 환상을 깼다. 어린 나이지만 생각이 깊고 폭은 넓었다.
그래서 방향을 잡은 게 농대다. 서울대학교 89학번 농대. 평생 따라다닐 그의 학적이다. 남이 하지 않을 길을 가는 것, 그것은 농업 농촌에 대한 그의 원대한 포부였고 희망이다.
서울대 입학 후 그는 우리농촌연구회에서 활동했다. 91년도엔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졸업 할 때가 다가오자 그도 현실에 눈을 돌렸다. 농림직 기술고시를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바꾸어 놓았다. 한 번의 교통사고로 그는 고시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1993년 졸업과 동시에 늦깎이 이등병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육군병장 만기 제대 후 그는 잠시 1년 간 동부 한농화학㈜에서 농림사업 업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씨감자와 버섯 지원 사육 업무를 봤다. 버섯이 그 중 하나였는데 지금의 청아랑 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됐다.
89학번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아내 김서연(42)씨도 이 때 만났다. 둘의 만남은 정말 우연의 일치였다. 당시 회사 업무 상 방송통신대학교(서울 송파)에 편입한 임 대표는 스터디 모임에서 아내 김씨를 만났던 것. 아내는 이후 SK텔레콤에 입사했다.
임 대표는 외환 위기가 터진 다음해인 1998년 사표를 내고 현장 농업을 실천하기 위해 부모님 고향인 광주로 내려왔다. 본격적인 귀농의 시작이다. 당시 그에겐 아래 위로 형 동생이 있었다. 만만한 동생에게 부탁했다. 인천 계양구에 있는 버섯 농장에서 기술을 배워 오라고 했다. 전자회사 제어 연구원으로 있는 형도 불렀다. 은행에서 3억 5천만 원의 대출을 냈다. 3형제가 똘똘 뭉치니 두려울 게 없었다.
1999년 3월 임 대표의 버섯 농장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균상이나 상자 재배 방식으로 길러보니 버섯이 자라나지 않는 것. 당황한 임 대표는 기다리면 되겠지 자만했다. 하지만 실패다. 대출 이자는 나날이 불었다. 하루는 형과 대출 문제로 불화가 생기면서 3형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건 아내와 임 대표 둘 뿐이다. 둘은 벼랑 끝에 섰다. 그의 스마트한 승부수는 이 때 이뤄졌다. 당시 성남에 있던 4천 만 원 짜리 전세방에 손을 댔다. 2천 만 원은 천안에서 폐업한 병 재배 버섯 농가의 시설물을 인수해, 지금의 광주로 옮겨왔다. 나머지 2천 만 원으로 단칸 셋방에 옮겨왔다.
아내에게 더할 나위 없이 미안했던 그는 “나에게 앞으로 모든 것을 걸면 정말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잘다가던 대기업에 다니던 아내가 사직서를 내게끔 올인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인터뷰 내내 임 대표는 그 때가 생애 가장 큰 갈림길 이였음을 고백했다.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것마저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는 건데 정말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달렸죠”
병 버섯 재배의 성공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를 채찍질했다. 교만하지 않았다. 항상 초심을 지켰다. 임 대표는 여느 농업인과는 다르다는 게 그 동안 그를 지원해준 광주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들의 평가다.
사실 학벌 계급장은 농사지을 때 쓸모없다. 농사란 오로지 땅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자연의 순리대로 열매를 거두는 숭고한 행위다. 그의 서울대 학벌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더 나은 농촌 공동체와 성공 모델 제시를 위한 스마트한 상징 요소 일 뿐이다. 혹시나 자신의 학력이 스스로에게 엘리티즘적 우월주의에 빠지게 만드는 성공의 장애 요인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스스로에게 들었단다.
그러나 임 대표는 자신의 재능(탤런트)을 100% 활용 할 줄 아는 농업전문경영인이다. 버섯을 단순히 재배해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그의 아이디어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그래서 시작하려는 게 버섯 가공 분야 사업이다. 이미 판을 깔았다. 지역의 학계와 관공서, 산업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었다, 버섯을 원료로 웰빙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햄과 김치, 죽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로 버섯이 최고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농업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행위의 반복 속에 항상 사고와 성찰, 아이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진정 존경받고 인정받는 분야죠. 버섯은 그런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작목입니다”
그의 스마트함은 또 있다. 바로 버섯이 다 자라고 남는 배지를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만든다는 복안. 이미 단양 등 타 시군에선 시설까지 다 갖추었다. 그는 경기도 광주를 대표해 청아랑에서 생산되는 배지로 우드펠렛 사업을 벌인다. 농업면세유 대체재로서 고유가 시대 이후의 대안으로서 비전을 본 것이다. 그는 오는 10월 산림청에서 공모하는 우드펠렛 분야 사업자 선정에 응모해 선발되는 게 목표다.
“맛타리로 성공했지만 이제부터가 고비입니다. 버섯 농업도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아이디어와 통찰력으로 버섯의 응용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버섯 농업 CEO인 임 대표의 그릇은 컸다. 광주 산골에서 버섯 가공 식품으로 굴지의 대기업을 만드는 것. 그런 그의 꿈이 언제 이뤄질지 기대해 보면 흥미롭기 만하다. 청아랑 영농조합법인: ☎(031)762-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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