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점액질로 뒤덮인 듯 끈적끈적하고 여기저기 돌기가 돋은 몸.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한 애벌레 13마리의 성장 이야기가 책 한 권에 담겼다.
아동문학가 이상권 작가가 직접 애벌레를 관찰하고 기록해 청소년을 위한 소설로 펴낸 ‘애벌레를 위하여’는 애벌레 성장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벌레는 나방이 되기까지 오직 한 나무에만 기대 자란다. 작품에 등장하는 열 세 마리의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들도 물개바위가 있는 계곡의 산초나무에서 나서 자란다. 애벌레들이 하는 짓이라곤 기껏 산초나무 잎을 뜯어먹거나 잠을 자고, 때가 되면 허물을 벗고 변태하는 것이 전부다.
작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 과정을 상상력과 더불어 흥미진진하게 펼쳐냈다.
또 애벌레를 둘러싼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박쥐, 청설모, 고양이, 사마귀, 톱사슴벌레, 게거미, 뱀허물쌍살벌, 자벌레, 밭배나무, 오리나무, 진달래 나무 등 셀 수 없이 많은 숲 속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이들 생명체 각각이 갖는 나름의 특징을 독특하고 간결하게 드러낸다.
또 고양이나 사마귀와 같은 크고 작은 다른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해가는 이야기를 함께 다뤄 숲의 생명력, 삶과 죽음의 장엄한 순환을 보여준다.
숲 속의 생명들은 때로는 먹이사슬로, 때로는 공생관계로, 때로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촘촘한 그물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매일매일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기도 한다. 작가는 잔혹한 살상과 어이없는 죽음, 긴박한 생존이 교차하는 모습까지 생생히 보여준다.
가진 거라곤 꿈틀대는 재주밖에 없지만, 작품 속에 드러난 애벌레의 성장과정은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삶과 죽음, 생명의 위대함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