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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길을묻다] 이상규 전 외교관

한국 청소년들에게 고한다
열린생각 가지고‘자기만의 끼’살려야
외교관시절, 태극기 알리기 운동은 가장 큰 보람

“청소년들이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향해 멀리 뻗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미래 사회를 리드해나갈 청소년들을 육성하는데 마지막 힘까지 보태고 싶습니다.”

대담 l 이민상 협성대학교 교수
정리 l 이종일기자 lji22@kgnews.co.kr
사진 l 이준성기자 oldpic316@kgnews.co.kr

 

 


이상규(66) 전 외교관은 지난 1981년부터 1998년까지 해외 영사를 담당했다. 18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며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은 더욱 커졌다는 이 전 외교관. 그에게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우리 국민의 국가관과 청소년들의 미래 가치에 대한 고견을 들어본다.

- 경기도청소년수련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하게 됐는데,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현재 맡고 있는 일은 없다. 공직을 벗어나 나 개인에 대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소위 ‘자유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웃음) 1970년대부터 언론사 생활을 하고 공직에 머무르며 그동안 짜여진 조직생활에만 몸담아왔던 것 같았다. 그래서 퇴직한 후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색소폰과 기타 연주는 그 중 하나였다. 또 요즘은 예술 사진에 대한 관심도 갖고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늦깍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간간이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강연 활동도 펼치고 있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 사업도 연구하고 있다. 퇴직하면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나름 바쁘게 지내는 편이다.

- 외교관 시절 가장 보람 느꼈던 때는.

▲1988년 주미공보관으로 있을 때 미국의 중?고등학교에 태극기 보내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 국민들은 태극기의 위, 아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대사관 직원들과 일일이 수를 놓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학교장들과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태극기 알리기 운동에 큰 성과를 남겼었다. 또 1990년에는 6.25전쟁의 현실을 알렸던 종군기자들을 찾는 사업을 벌인 적이 있었다. 우리 정부에 건의해서 추진한 사업인데, 해외 각지에 있는 기자들을 찾기 위해 펜타곤(미 국방부)에 가서 당시의 기록을 일일이 찾았었다. 몇몇 기자들의 거주지를 확인해 연락을 취하게 됐고 벨기에, 호주, 프랑스 등 해외의 기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기념행사를 치뤘다. 그때 기자들이 가진 자료들로 6.25전쟁 사진전을 개최할 수 있었고, 전쟁 당시의 생생한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전쟁은 가슴 아픈 상처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 그럼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1980년대 초 이집트에서 근무할 때였다. 당시 이집트는 북한과 가까운 관계였지만 한국은 비동맹국가로 총영사관급에 머물러 있었다. 이 가운데 (이집트)사다트 대통령 암살과 (버마)아웅산 테러 등 민감한 사건들이 발생하며 해외 공관에서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이러다 한국 공관들과 북한 공관들 사이에 민감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나 또한 말레이시아 국왕 탄신일 때 북한 공관과 부딪히는 일이 생겨 갈등을 빚은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힘들었던 때였으나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해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서도 상호간에 감정적인 문제를 일으켰던 냉전의 산물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 문제 말고도 외교관 일을 하면서 어려웠던 문제는 태극기를 올바로 게양하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을 모두 13번 수행했었는데 해외에서 대통령 영접을 하며 태극기를 거꾸로 달아놓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경우 곤란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일일이 점검하고 태극기를 바로 달아 놓곤 했었다.

- 무한경쟁의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할 국가관과 글로벌 마인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이 발전한 나라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후 국민적 저력을 발휘하며 빠른 시간 내에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때 해외 원조를 받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반대로 PKO와 KOICA 등 해외 지원활동을 왕성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변화와는 달리 국민들 의식이 따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지하철만 봐도 휴대전화를 쓰면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승차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천암한 사건 때는 일부 부모들이 자식의 군 복무기간부터 챙겨들며 전쟁을 우려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인들도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당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서는 국가 정체성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우리의 사고와 인식도 국제적 수준으로 변화해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기본적인 예의와 상대를 배려해주는 인식이 갖춰져야 세계에서 대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즘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좁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 작은 일에 너무 연연하고 남들과 소통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나약해지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적어진다. 청소년수련원에 있을 때는 이런 일로 친구들과 싸우는 모습도 자주 봤었다. 청소년들이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넓고 크게 멀리 볼 수 있도록 시각을 키워야 한다. 더 넓은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끼’를 살려야 한다. 아이들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설계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예로부터 한 나라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가고 현재를 보기 위해서는 시장을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창은 학교다.

 

청소년들에게 의지가 있을 때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그러나 현재 학교가 미래의 창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교육공무원 비리, 교사 부정부패, 이념문제, 사교육 증가, 학생 체벌 논란 등 이 같은 문제는 어른들의 목표를 위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학교가 미래의 창 역할을 하려면 교사, 학부모, 어른들이 심기일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갖고 현재의 생활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이상규 전 외교관은…

그는 1944년 강원도 출생으로 춘천고등학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부터 합동통신 연합뉴스사 기자로 활동하다 1981년 외교관으로 발탁돼 해외 영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 전 외교관은 주이집트 영사, 주미공보관, 주UN 삼사관 등을 지내며 해외 공보활동에 전념했다. 1998년 문화관광부 본부국장을 역임한 후 2008년까지 한국청소년수련원 상임이사, 경기도청소년수련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 현재는 용인 수지에서 부인 서종남(58)씨와의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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