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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서예가 석곡 차기동 선생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가진 최고의 행복

세살 때 관절염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고, 그 불편함에 고통과 아픔을 담기 보다는 희망과 미래를 담아 자신이 추구하는 서예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석곡 차기동 선생을 만났다.

석곡 선생의 글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한 자, 한 자 살펴보자면 처음에 부드러움이 있고 마무리에는 결단력있는 끝맺음이 묻어났다. 석곡 선생은 ‘해서체’를 쓴다. ‘해서체’는 시작과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한 후 다시 붓을 들었다.

글 l 민경태기자 mkt@kgnews.co.kr
사진 l 최우창기자 smicer@kgnews.co.kr

 

 


“피난 살이에서 배운 서예(글)가 잊혀지지 않고 가슴 속에 있었어요. 당시 다리도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게 됐지요. 이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학문을 접하게 되고 내가 가야할 길은 글 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계속해 글을 쓰면서 느꼈던 생각은 전과는 달라졌어요.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가진 최대한의 행복이라고 느꼈으니까요”

독학으로 붓을 잡다

지난 시절을 뒤로 석곡 선생은 26살이란 나이에 다시 붓을 들고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글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없이 공부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돈과 시간이 두배로 들었다. 그래서 이제껏 해온 노력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후 석곡 선생은 1981년 수원으로 정착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서울에서 혼자 독학을 하면서 여러 서예 대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한때는 방황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경기도미술대전에 첫발을 내딛게 되고 그 결과는 특선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니 만큼 나의 글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이곳 저곳에 작품을 출품하게 됐고 경기도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석곡 선생은 1990년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특선을 하게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길을 평가 받았고 그 결과가 ‘내가 해온 길이 맞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는 1993년까지 참가 하다가 졸업을 했다. 이후 초대작가로 초청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독학으로 해오던 것들이 인정받기 시작한 거다. 이 순간에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가 추구해 온 길에 대한 모든 사람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석곡 선생이 말하는 서예

“서예(글)이란 것은 참 대단하면서도 작은 것이다. 생활의 잡다한 것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서예의 매력이다. 무슨 힘든 일, 고통받는 일 신경이 쓰이는 일, 모든 일들을 생각 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석곡 선생은 “나이를 먹고 나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에게 봉사하자’였다. 남은 인생을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며 소감을 밝히며 ‘지앤아이피플’의 새로운 제호를 손수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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