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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사람들] 구두 장인 이병오씨

수원에서 구두만들기 47년 이병오씨
손으로 빚는 검정구두 자부심으로 산다

글 사진|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구두는 만드는 사람 마음 먹기에 따라 수만가지로 나올 수 있습니다” 47년동안 수원에서 구두만을 만들어 온 이병오씨(58)는 지겨울만도 한데 구두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구두 자랑 그만하고 구두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의 손이 분주해 지기 시작한다. 구두 창을 갈고 있었다. “요즘에도 구두창을 가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구두창을 3번까지 붙여 신는 단골이 수두룩 하다”고 귀띔한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19일 오후 수원 못골시장 근처에 ‘플라워 제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구두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만을 듣고 이씨를 찾아 나섰다. 이왕 온김에 전국에서 성공한 재래시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못골시장을 둘러봤다. 한가한 오후 시간 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가 않는다. 플라워 제화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4평남짓 매장에는 손수 만들어 놓은 남녀 구두가 빼곡히 진열돼 있다. 거의 같은 평수의 안쪽작업실은 발디딜 틈조차 없이 작업도구와 기계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이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뷰 자세를 취한다. 그럴필요 없으니 하던 일을 계속 하라고 주문하자 그는 구두수선은 이골이 난 듯 능수능란하게 순식간에 해치운다.

이씨는 수원지동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1965년 당시 수원 영동시장에서 유명세를 타던 보신양화점 정완섭씨 휘하로 들어가 구두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말이 배움이지 온갖 허드렛일에 꾸지람까지 온몸으로 받아 들여야 했던 수모의 기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구두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배움의 열정은 그 어느누구도 꺽을 수가 없었다.

이씨는 구두를 배우기 시작한지 6년만인 1971년 독립해 직원을 거느리는 양화점이 주인이 되었다. 그의 구두사업은 승승장구 했다. 81년도에는 구천동에 구두공장을 차려 구두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84년도 들어서는 영동시장 중심으로 진출해 직원 12명을 거느리는 공장으로 성장, 큰 재미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구두사업도 80년대 말 대기업의 기성화가 쏟아져 나오면서 사양길로 접어 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번영기를 누렸던 양화점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운게 구두라고 그는 지난 93년 이곳에 플라워 제화 간판을 내걸고 지금까지 구두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는 수작업을 원칙으로 한다. 고객의 발을 재고 본을 떠 가죽으로 재단을 한뒤 박음질을 하고 틀에 씌워 고정하고 창을 부치는 작업을 18년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해오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까지 그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구두는 1∼2켤레가 고작이다. 한켤레 만드는 가격이 10만원 정도이고 보면 그의 수입은 뻔하다. 집세 내고 자재비용 치루고 나면 100만원 정도가 한달 수입 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더 부를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동네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 이거나 발이 불편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산, 화성, 용인 등지에서 꾸준히 그를 찾는다.

성남에서 장애인 딸을 데리고 해마다 방문해 딸에게 새구두를 신켜 가던 사람이 있었다. 지난 3년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지만 1년에 3켤레 구두를 주문해 오면 국제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그럴때면 더욱 정성을 들여 구두를 만들게 된다고 말한다.

인터뷰 도중 40대 아주머니가 구두를 맞추러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신기한 장면이 목격됐다. 종이본에 발을 올리고 자로 이리저리 재며 치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을 끝낸 이씨는 가격을 흥정한다. 팽팽한 다툼(?)끝에 구두 제조가격은 10만원으로 결정됐다. 이씨의 얼굴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씨는 성장한 세딸을 두고 있다. 막내가 이제 고등학교 3학년 이라고 했다. “딸들도 아빠에게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느냐”고 묻자 그는 “요즘 애들 누가 구두를 만들어 신어요. 다들 사신지” 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씨는 지난 2005년 경기도지사 인증 구두제조부문 경기으뜸이로 지정됐다. 그의 가게 한켠에 경기으뜸이 인증서와 함께 인증서를 받는 대형사진이 아주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그는 구두에 관한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40년이 넘는 동안 거친 가죽과 접착제 그리고 칼날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의 손은 둔탁하고 다소 검정빛을 발한다. 47년 구두장인의 자랑스러운 손이다.

그의 작업실에 놓여있는 가죽을 깎을 때 쓰는 스키라는 기계는 60년이 넘은 것이다. 구두 창 붙일 때 쓰는 압축기와 미싱도 40년이 넘는 그의 구두제조 경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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