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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우용식 수원화성오산 축협조합장

화성호 축산단지 조성 성공 위해 모든 힘 쏟아 부을 것

동물을 좋아하던 어린아이에서 수원·화성·오산 지역 축산업계의 대부로 자리 잡은 우용식(70) 수원화성오산축산업협동조합(수원축산농협)장. 1941년 일본 미야기갱에서 태어난 우용식 조합장은 우리나라에 6.25가 발발한 1950년 부모님 손을 잡고 제2의 고향인 경남 함양으로 건너왔다. 집안에서 거위·닭 등을 키워온 부모님의 영향이랄까 우 조합장의 동물에 대한 사랑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불과 10살의 나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닭장을 짓기도 하고, 염소와 돼지 등을 사육하기도 하는 등 한시도 동물들과 떨어져 있질 못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부모님이 아닌 우 조합장의 의지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마치 어려서부터 축산업이 한 평생을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임을 인식한 것처럼.

글 l 안경환기자 jing@kgnews.co.kr
사진 l 노경신기자 mono316@kgnews.co.kr

 

 


몸으로 부딪치며 일궈낸 농장

우 용식 조합장이 축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시기는 군복무를 마친 20대 초반. 군복무 시절 상관이 1962년 농진청 발족과 함께 농진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우 조합장에게 축산 관리 업무를 맡긴 후 부터다. 우 조합장이 수원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농진청에서 축사 관리 업무를 시작하면서 관련 업무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을 느낀 우 조합장은 축산 관련 교육이 있는 곳은 거리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배움에 몰두, 어려서부터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실무 경험에 이론을 더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척해 나갔다.

또 꿈에 그리던 자신만의 농장도 갖게 됐다. 1966년 수원 서둔동 농대 앞 1천700평 규모의 농장을 마련, 한 켠에서 80여두의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허나 기쁨도 잠시.

인근에 공무원 연수원 관사가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농장을 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고, 1973년 수원 평동으로 농장을 이전시켰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는 백지장 차이에 불과한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농장을 이전한 곳에 당시 수원축산농협이 위치, 이를 계기로 우 조합장의 인생은 수원축산농협과 함께하게 됐다.

수원축산농협과의 인연

1970년부터 대한 양돈협회 경기도지부장 등을 역임해온 우 조합장은 1977년 이사직으로 수원축산농협과 인연을 맺은 뒤 34년째 몸 담아 왔다. 또 1998년부터는 수장인 조합장으로써 수원축산농협을 이끌어 오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우 조합장은 곡반정동 축산유통센터 건립, TMR(Total Mixed Ration.완전혼합사료) 사료공장 건립, 국내 최대 생산 규모에 첨단 시스템을 완비한 안산연합사료공장 인수 등 수원축산농협 발전에 앞장섰다.

특히 조합장 취임 당시 2천억 규모에 그쳤던 조합예수금을 지난해 말 기준 1조원을 돌파시켰고, 경제사업 규모 역시 600억 규모에서 4천400억 규모로 키우는 등 수원축산농협을 국내 동종업계 최고의 반석에 올려놨다.

 

 


국내 최대규모의 축산유통센터 건립

우 조합장에게는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남달리 뛰어나다는 것과 의구심이 많다는 것. 길을 걸을 때 조차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이 없고, 궁금증은 바로 풀어야 한다.

또 해결한 궁금증은 되도록이면 현실에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 우 조합장의 생활철학 이다. 1980년 일본 동경을 찾은 우 조합장은 동경시내에서 특이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

시내 어디를 둘러봐도 정육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육점이 없다면 도대체 일본인들은 육류를 어디서 구입할까.

궁금증이 도진 우 조합장은 길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워 이유를 물었고, 결국 모든 육류는 마트에서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에 비해 20~30년 정도 뒤쳐진다는 점을 감안, 우 조합장은 늦어도 10년 이내에 우리나라에서도 정육점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마트에서 직접 가공, 판매할 경우 조합과 조합원에게 보다 큰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판단, 귀국과 동시에 축산유통센터 건립에 나섰다.

자신이 보유한 땅까지 원가에 매각하면서 수원 팔달문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축산물유통센터를 건립, 이후 독일 벤치마킹을 통해 햄소시지를 직접 가공,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조합과 조합원 모두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우 조합장은 지난 2002년 수원 곡반정동에 추가로 축산물유통센터를 건립, 현재 년간 소 1만3천두, 돼지 8만8천두를 유통시키고 있다. 이는 현재 국내 최대 규모다.

또 하나 우 조합장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들이 하기 힘든 일들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보이는 언밸런스한 점이 그 중 하나다. 양쪽 구두의 색상이 다른가 하면 정장 하의 길이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다.

헤어스타일도 한쪽은 짧은 스포츠 타입이나 반대쪽은 긴머리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한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정도의 바이크의 선두주자 였다. 1970~1980년까지 수원오토바이협회장직을 역임, 197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기동순찰대를 발족시킨 장본인 이기도 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오토바이 사진만 8천여종에 달한다.

우 조합장은 “타인과 차별화를 주는 것은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함”이라며 “스스로에게도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화성호 축산단지 조성사업 추진

한평생을 수원축산농협과 함께해온 우 조합장에게도 남은 과제가 있다.

바로 화성호 축산단지 조성사업이다.

우 조합장은 축산단지가 조성될 경우 종자계량 등으로 현재 1만3천두 유통되는 한우를 3만두 수준으로 늘리고, 축산관광단지를 통해 관광객도 유치할 예정이다.

또 청사이전은 물론 한우의 품질을 높여 자매결연 관계인 일본 신명축산을 통해 일본 수출길을 열어 조합과 조합원의 소득을 증진시킬 계획이다.

우용식 조합장은 “누구나 일을 계획하고 설계는 할 수 있으나 추진한 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계획과 설계, 일을 추진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져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용식 조합장은 “축산인으로서 한평생을 수원축산농협의 발전을 위해 바쳐온 만큼 최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용식 조합장 프로필

△1970 ㈔대한 양돈협회 경기도지부장

△1972~1973 ㈔대한 양돈협회 이사

△1972 한일양돈수출위원장(직무대리)

△1977~1978 수원축산농협 이사

△1981 수원시 정책자문위원회 국산분과위원장

△1988 국제라이온스협회 수원클럽 회장

△1990 국제라이온스협회 경기도부총재

△1992 국제라이온스협회 경기도 국제분과위원장

△2000~2003 전국축협 운영협의회장

△2005~2006 축협배합사료 가공조합 협의회장

△1998~현재 수원축산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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