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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순례] 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

천재 문화행동가 백남준의 네트워크 이어가기

 

글ㅣ권은희기자 keh@kgnews.co.kr

사진ㅣ최우창기자 smicer@kgnews.co.kr



“백 남준이 21세기를 위해 던진 가장 큰 화두는 바로 ‘네트워크’다. 문제를 푸는 열쇠는 바로 네트워크에 있다.”

지난 2008년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백남준의 작품 세계와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재단이 설립했다. 전체면적 5천605㎡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자료실, 창작공간, 수장고, 연구시설,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아트센터는 그간 백남준의 예술혼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고, 국제 세미나 진행, 백남준 연구소 추진, 추모행사 진행, 오늘날의 작가들과 연계한 기획 전시 마련 등 우리 사회가 백남준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만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쳐왔다.

개관 2주년이 갓 지난 현재는 한 해 관람객 수가 16만 명을 넘어섰고 그의 감성, 역사와 교감하고자 하는 이들의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독특한 전시, 화려한 음악 속에 암호처럼 들려오는 말, 퍼포먼스, 비디오, 조각의 세계를 넘나드는 백남준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백남준을 ‘오래된 미래였고, 미래의 미래’라고 설명하는 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 관장(53)을 만나 그 실마리를 풀어봤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일하는 이영철 관장은 백남준과의 인연에 대해 “아주 큰 인연이 아니라면 아트센터 관장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백남준과 악수 한 번 못 해봤다. 1997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직을 맡아 일을 시작했던 때가 백남준이 쓰러진 1년 뒤였다. 25살의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그에게는 워낙 대단한 영웅이라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는 것.



백남준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

“지식을 개인적 성공을 위한 술책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분야를 지키는 고매한 학자의 그것처럼 사용하는 것도 아닌 실천적인 제작자의 위치를 끝내 고수해나간 그 방식이 백남준의 탁월한 면모라 본다. 그분은 천재 기획자인 동시에 문화행동가다. 주파수가 맞아 그분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운이 좋아 그동안 해온 국제 행사가 거의 다 성공적이었다.

그 가운데 백 선생님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그간 해온 일의 마무리인 동시에 새 출발이라고 본다.”

이 관장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국제전시, 기획전시 등 보폭을 넓힌 운영 방침으로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도의 지원을 받는 기관의 역할에 더욱 비중을 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나라, 백남준아트센터

“2년 전 개막 당일에 백남준아트센터를 ‘백남준 나라’라고 선포했다. 그 나라는 ‘네트워크의 나라’다. 이는 도민들만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도민들이 세계 속의 시민 혹은 다중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백남준아트센터는 한국 내에서 비로소 국경을 초월한 미술관이 되리라 본다. 지금 한국에서 말하는 경기도 정체성, 전라도 정체성, 경상도 정체성은 작은 중심들의 격전장을 방불케 하는데 한반도의 케케묵은 고정 관념이라 본다. 네트워크를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를 만들거나 컨트롤하는 사람은 예술 기관을 동물 농장으로 만드는 조지 오엘들이다.”

그의 이러한 소신은 개관 2년 만에 관람객 수를 16만명에 이르게 했고,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반드시 가봐야 할 미술관으로 손꼽히기도 한단다. 즐거운 것이 일상 속에 가득한 오늘날 소비자들의 높은 수준과 개개인의 취향을 맞추는 일은 녹록지 않다.

그동안 관이든, 개인이든 지식, 역사, 예술의 ‘해방자’였던 백남준의 이름을 이용하려 한 이들은 많았어도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질문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이 관장은 아트센터를 의미 있는 질문들이 생산되는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힘써왔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을 것.

“수위를 낮춰라, 상식을 존중해라, 너무 앞서간다. 대중에 대한 배려가 적다 등등 온갖 애정 어린 험담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청하고 있다. 모든 어려움은 사람의 능력과 자리가 어긋나 비극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무능이 대의를 항상 그르치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여기서도 그렇게 일을 했다. 그 점에서는 백남준 선생님이 백배 스승이니. 나로서는 사실 조용히 일해야 한다. 사람이 모두 벽이다. 나 역시 타인에게 그럴 테고….”

 



관람을 통한 自覺

개관 2년을 맞은 백남준아트센터는 이제 대중과 젊은 미술인 사이에서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한다. 이 관장은 아트센터를 학교, 가정, 사회 그 어디서도 배우지 못하는 것을 찾고 배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한다.

“백남준과 동시대 작가들을 연결하는 요소는 광범위하지만 그렇다고 애매한 것은 아니다. 답을 구하기보다는 질문을 스스로 발견하고 던지는 곳이 돼야 한다. 즉 누구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그에 대해 열등감, 강박증, 조급한 요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스승이 무지해서 제자를 가르칠 수 없으니 스스로 질문을 찾아내고 스스로 답을 구해가는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의 가르침-배움의 특징이고 전시는 그것에 유용한 수단이다.”



백남준 학교 신설

백남준에게는 유형 무형의 자산이 아주 많다. 이 관장은 앞으로 백남준 학교를 만드는 데 무게를 둘 계획이다. 또 경기도 안과 밖, 국내와 국제 간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백남준’에 대한 이해, 그 열쇠는 백남준아트센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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