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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온 국민에게 환희와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하며 막을 내린 2012년 제31회 런던올림픽.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펜싱은 ‘금 2개, 은 1개, 동메달 3개’의 성적으로 종목 최고의 성과와 함께 우리나라의 새로운 효자종목으로 발돋움했다.

대회 초반만 해도 한국 펜싱은 메달권 후보로 전망됐던 여자 플뢰레 남현희(성남시청)와 남자 사브르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연거푸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여자 에페에서는 신아람(충남 계룡시청)마저 그 유명한 ‘멈춰버린 1초’ 오심 사건에 희생되는 등 다소 침체에 빠졌었다.
 

 

 


하지만 펜싱 대표팀의 맏형이자 화성시청 펜싱팀 소속 최병철이 남자 플뢰레 개인전 3~4위전에서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발디니를 15-14로 힘겹게 따돌리고 동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본격적인 메달 사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최병철의 값진 동메달은 이번 올림픽에서 경기도 시·군 직장운동경기부 소속 출전 선수가 따낸 ‘마수걸이’ 메달이었다. 또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 김영호 이후 12년 만에 한국 남자 펜싱 플뢰레 올림픽 메달이기도 했다.
 

 

 


여기에 최병철의 팀 동료 정진선도 남자 에페 동메달 결정전에서 켈시 세스(미국)를 맞아 연장 승부 끝에 12-11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추가하며 대표팀에 큰 기를 불어넣어줬다.

이처럼 한국 펜싱이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데에는 지난 20여년간 비인기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한국 펜싱을 이끌어 온 화성시청 펜싱팀의 공이 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에페, 플뢰레, 사브르 종목 선수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화성시청 펜싱팀은 화성시가 ‘우리나라 남자 펜싱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화성시가 시로 승격되기 전인 지난 1990년 1월 1일 창단한 화성시청(당시 화성군청) 펜싱팀은 경기도 최초의 남자 펜싱팀으로 첫 출발했다.

화성 발안농고 펜싱부 출신으로 전국체육대회 양달식 현 화성시청 감독(경기도펜싱협회 전무이사)의 소속팀을 마련하기 위해 팀을 꾸린 것이 창단의 계기다.

당시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이었던 정기철 경기도체육인회 회장이 양달식 감독에게 고향팀을 만들어주자고 예강환 화성군수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해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마땅한 전용경기장이나 훈련장도 없는 직장운동경기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화성 발안중, 발안바이오고, 양감중·고, 향남중·고 펜싱부 등 지역 학교운동부와 연계 육성이 가능해질 만큼의 규모로 성장했다.

또 펜싱전용경기장이 건립되고 우수 선수들이 영입된 지난 2006년부터 전국체육대회를 비롯해 대통령배, 전국펜싱선수권, 종별펜싱선수권 등 각종 국내 대회를 휩쓸며 경기도 펜싱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더욱이 아시안선수권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은 물론 창단 이래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등 명실공히 국내 남자 펜싱 최강의 직장운동부다.

올해로 23년째 팀에 몸을 담은 양달식 감독과 송수남 에페 코치, 이승호 플뢰레 코치 등의 지도진이 팀을 가르치고 있으며 정진선, 박민태, 김승구, 소문수, 심승한(이상 에페)과 최병철, 송승찬, 김대영, 장우영, 전승배(이상 플뢰레), 김민수, 정안성, 박영준(이상 사브르) 등 13명의 선수까지 전·현직 국가대표와 유망주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전국 최강은 물론 세계적인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화성시청 펜싱팀이게도 다소 아쉬운 점은 있다.

바로 현실적인 문제인 급여와 처우 문제다.

각 지자체의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해 운영되는 시·군 직장운동경기부의 특성상 일반 기업체나 공기업 등이 운영하는 실업팀에 비해 훈련 여건이나 급여 등이 다소 열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국내를 비롯해 국제적으로도 화성시를 널리 알리고 위상을 드높이는 펜싱팀의 성적에 비해 화성시청 선수들의 처우는 현저히 부족한 편이다.

최병철과 정진선은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적지 않은 급여라고 할 수 있지만 10년 정도에 불과한 짧은 현역기간을 지내는 선수들에게는 결코 여유있지 않은 수준”이라며 “더욱이 계약금이나 상여금 제도 등이 잘 갖춰진 다른 실업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정도”라고 입을 모아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병철은 “처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도 운동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꼭 현실적인 급여체계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부족한 훈련 환경도 한 가지 걸림돌이다.

현재 화성시청 펜싱팀이 사용하고 있는 발안바이오고 내 아시안게임 2관왕 양달식 기념 발안 펜싱경기장은 지난 2004년 건립된 펜싱전용경기장으로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1천300여㎡의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인 6~7개 펜싱팀 70여명의 선수단이 매일 같이 동시에 훈련을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보니 훈련 공간이 협소한 편이다. 이 때문에 정작 화성시청 선수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훈련을 하거나 인근 대학교 체육관 등을 빌려가며 연습을 해야하는 실정이다.

양달식 감독은 “현재 화성종합경기타운 인근 부지에 신규 펜싱전용경기장 건립을 위해 시에 적극적으로 건의할 계획”이라며 “화성시청 펜싱팀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인터뷰>양달식 화성시청 펜싱팀 감독

“제가 아시안게임 2관왕을 달성했을 때보다 10배, 100배 이상으로 감격스럽고 행복합니다.”

자식처럼 가르친 제자들이 일궈낸 올림픽 메달이라는 성과에 양달식 화성시청 감독(경기도펜싱협회 전무이사)은 마치 자신이 메달리스트가 된 것 처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지도자로서 올림픽 메달까지의 과정과 어려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이기에 제자들을 더욱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지난 1962년 화성시 우정읍 태생으로 화성 화수초와 삼괴중을 거쳐 발안농고(현 발안바이오과학고)를 졸업한 화성시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 감독은 화성시가 대한민국 남자 펜싱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 장본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천부적인 자질을 보여 자연스레 육상, 배구, 축구 등의 종목을 두루 섭렵하며 스피드와 순발력, 지구력 등을 기른 양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펜싱을 접하게 됐다.

발안농고 재학시절 축구부 소속 선수로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해인 1982년 팀이 해체되면서 마땅히 운동할 곳을 순식간에 잃게 된 것. 하지만 이 것은 오히려 양 감독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됐다.

다행히 같은 해 1월 발안중과 발안농고에 펜싱부가 새롭게 창단되면서 자연스레 창단 멤버로 펜싱에 입문할 기회를 얻게된 것이다.

난생 처음 펜싱을 접한 것이었지만 양 감독은 검을 잡은지 9개월만에 첫 출전한 제63회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 펜싱 에페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또 한국체대 진학 후에도 국내 각종 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하던 양 감독은 펜싱 경력 2년만인 1984년 8월에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고 이듬해 일본 고베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했다.

양 감독은 “남들보다 경력도 짧았고 환경도 넉넉치 못했기 때문에 연습만이 살길이었다”며 “훈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만큼 죽기살기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당시 태릉선수촌에서도 연습벌레로 소문났던 양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단체전 7위, 1989년 제1회 베이징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우승 등의 업적을 달성하며 세계적으로도 실력을 떨쳤다.

결국 화성시청 펜싱부 창단 원년인 1990년 제11회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사상 처음으로 에페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며 2관왕의 오르며 한국 펜싱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이후 화성시청 펜싱팀의 코치 겸 선수로 활약한 양 감독은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도 각종 전국대회를 출전하며 노익장을 과시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지도자로도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경기도펜싱협회 전무이사로서 후진 양성을 위해 남다른 열정을 갖고 경기도체육회와 경기도교육청에 적극적으로 건의해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펜싱전용경기장이 건립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기본을 중시하고 선수들을 가족처럼 아끼는 리더십을 강조하는 양 감독의 지도력은 이번 올림픽에서 애제자인 정진선과 최병철의 값진 동메달이라는 결과로 그 결실을 맺었다.

특히 정진선은 메달 획득 직후 공동취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두번째 아버지인 양달식 감독님께 영광을 돌린다”며 깊은 존경과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각각 체육훈장인 거상장(1990년)과 맹호장(2008년)을 수상할 만큼 누구보다 화려한 시간을 보낸 양 감독의 앞으로의 목표는 후진 양성을 위한 펜싱학교를 건립하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의 선전을 감개무량하게 느낀 양 감독은 누구나 쉽게 펜싱을 접할 수 있는 펜싱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양 감독은 “지난 시간 동안 펜싱이라는 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경기도는 물론 한국 펜싱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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