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쬐다 /유홍준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중략-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시와반시 창간 20주년 기념 앤솔로지 「할퀸 데를 또 할퀴는 방식」/시와반시
孤獨死라는 것이 있다. 고독사는 주로 노인층에서 흔하게 발견되는데 오랫동안 곁에서 돌보는 사람도 없이 고독하게 죽는 사건이다.
이른 봄 양지바른 앞마당에 앉아 맑은 햇볕을 쬐듯이, 아니 추운 겨울날 난롯가에 앉아 두 손 내밀어 난롯불을 쬐듯이 ‘사람을 쬐다’니?(이런 발견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사람을 쬐’지 못하면 사람 몸에도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핀다’. ‘냄새가 나고 삭는다’. ‘사람을 쬐’지 못해 홀로 외롭게 쓸쓸하게 죽어가는 노인들. 이 시 속의 할머니도 살기 위해, 아니 살아내기 위해 ‘대문’ 밖을 나와 사람들을 쬐고 있다. ‘지팡이 내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을 온기처럼 쬐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홀로 지낸다는 것은 지극한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