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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세(21).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서 탄생한 인간승리의 아이콘이다. 네 번에 걸친 수술로 뇌의 90%를 절단해 냈지만 개막식이 열린 강원도 평창의 용평돔을 가득 메운 4천여명이 환호할 정도로 애국가를 100% 소화해 냈다. 지적장애 3급, 지체장애 3급, 시각장애 4급, 중복장애 1급 등 모든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가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전 세계인 앞에서 노래를 완벽하게 부른 것이다. 기자는 장애인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군과 그의 어머니 조영애(49)씨를 만났다.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번의 죽을 고비.. ‘모세의 기적’

수원시 영통구 하동 광교신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는 그는,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오셨네요” 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20여년 전이다.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무렵, 박군의 어머니 조씨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곳에서 조씨는 ‘살 수 없는 아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후두부 뼈가 없어 태아의 뇌가 흘러나와 가망이 없다는 의사는 그에게 낙태를 권했다.

오진 가능성을 기대하고 재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도 같았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일념으로 출산했으나 상태는 심각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의사 진단에도 조씨 부부는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하고 아이를 수술대에 올렸다. 그리고 네 차례에 걸친 수술로 대뇌 70%, 소뇌 90%를 절제해 내야 했다.

“지하에 있는 어둡고 습한 집에 갓난아기를 데려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단 하루라도, 아니 단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수유를 하고 내 품으로 보듬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일 집으로 데려왔어요.”

기자와 마주앉은 조씨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의사는 아이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모습이라도 좋으니 살아만 주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죠.” 그런데 조씨의 기도와 사랑은 기적으로 나타났다. 아이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더니 3개월 됐을 때는 웃음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8개월이 되자 뇌수가 흐르지 않아 뇌출혈이 일어난 것. 머리에 관을 삽입하는 아이의 수술을 지켜보며 조씨는 ‘이 아이가 살길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기적을 일으킨 모세와 애국가의 인연

오늘의 기적을 일으킨 ‘모세’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배경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겼을 때 조씨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모세’라는 아이의 이름을 제안했다. 박군이 처한 상황이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박군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바로 노래다. 다섯 살 무렵 찬송가를 따라 부른 것이다. 이후 오른쪽 귀가 안 좋았음에도 박군은 노래를 좋아했고, 7살이 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1년 전국 장애인부모대회에 참여해 노래를 부른 박군은 당시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였던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자 프로농구 개막식의 애국가를 제안 받았다. 박군과 애국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어 2012년 8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위 캔 서머 뮤직캠프’에 참여해 노래를 부른 박군은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인 나경원 전 의원의 눈에 띄었다. 그 자리에서 박군은 ‘2012 한국스페셜올림픽 하계대회’와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의 애국가를 요청 받았다.

스페셜올림픽 개막식 상황을 떠올리던 조씨는 “애국가를 부르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면서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밝힌다.
 

 

 


어머니의 바람

“죽음을 예감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모세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 하나하나가 전부 감사할 뿐이에요. 그런데다 모세에게 노래라는 재능까지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박군의 가족은 모든 기적이 기도의 힘, 온 가족의 사랑 덕분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정성껏 기도를 했고, 그 덕분인지 기적의 주인공인 박군의 목표는 찬양가수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조씨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노래를 계속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자와 인터뷰하기 하루 전 광주 삼육재활학교를 졸업한 박군은 찬양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성악을 전공하고 싶단다. 다행히도 장애인 후원단체 ‘두드림’을 통해 국민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는 그는 대학교 입학을 준비 중이다. 두 달 후에는 미국으로 찬양 공연도 떠난다.

박군의 어머니는 인터뷰 내내 아들을 눈에서 떼지 못했다. “지금껏 모세에게는 여러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면서 “바라는 게 있다면 모세가 세수나 머리감기 등 일상적인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아들이 됐으면 한다”는 그에게 20여 년 동안 박군을 키워오면서 장애 아이를 가진 다른 부모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아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 부모의 기준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 아이의 재능을 이끌어준다면 서로가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는 “현재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관이 적어 장애인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마땅히 다닐 곳이 없다”면서 “지자체나 국가에서 장애인 졸업생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마련해 줬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한다.
 

 

 


그 분에게 전하는 감사

인터뷰 말미에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공식 임기 시작을 알리는 25일 보신각 타종행사에 초대 받았다고 밝힌 박군의 어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며 한 달 전 이야기를 꺼낸다.

지난 1월 28일, 수원의 대학병원 앞에서 한 여성이 택시를 탔단다. 마침 라디오에서 박군에 대한 사연이 흘러나왔고, 택시기사는 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군이 자신의 친조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목적지에 도착한 그 여성은 택시 요금을 건네며 ‘모세 어머니께 힘내라고 전해주세요’라는 따뜻한 말을 남기고 내렸다. 무심코 돌아본, 여성이 앉았던 뒷좌석에는 5만원권 지폐 4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씨는 그 여성이 자리에 두고 내린 돈을 전해 받은 후 파일에 끼워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분에게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박모세군과 그의 어머니 조영애씨. 기적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처럼 그들에게서는 많은 기적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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