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0 (화)

  • 흐림동두천 26.6℃
  • 구름많음강릉 32.4℃
  • 흐림서울 27.2℃
  • 흐림대전 29.2℃
  • 맑음대구 31.0℃
  • 맑음울산 31.7℃
  • 구름조금광주 29.2℃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29.7℃
  • 맑음제주 32.7℃
  • 구름많음강화 27.1℃
  • 흐림보은 27.3℃
  • 구름많음금산 28.0℃
  • 맑음강진군 31.2℃
  • 맑음경주시 31.7℃
  • 맑음거제 29.9℃
기상청 제공

우리나라 최초 단독해전 승리로 이끌어

김창학(金昌學 1929. 1. 29~1950. 6. 28) 해군 하사
평택 출신… 6·25 발발 당일 백두산함 조타수로 참전
최후까지 키 잡아…“함장님 끝까지 싸우지 못해 죄송”

 

1929년 1월 29일 경기도 평택군에서 태어난 김창학 해군 하사는 1948년 6월 해군 신병 제 10기로 입대해 6·25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 25일 PC-701 백두산함 조타수로 대한해협 해전에 참전했다.

6월 25일 북한은 육지로는 지상군을 대거 공격해왔고, 동해안으로는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군을 무장수송선에 태워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백두산함은 부산 동북방 30마일 해상에서 병력 600여 명과 탄약 및 식량을 가득 싣고 이동 중이었다.
 

 

 


북한의 무장수송선은 비밀스럽게 상륙하기 위해 일반 상선처럼 위장했지만 백두산함은 그것이 무장수송선임을포착했고, 6·25전쟁의 첫 해전은 시작됐다.

교전은 4시간 가까이 진행 됐고, 우리 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적은 마지막 전력을 다해 배의 핵심 구역 중 하나인 조타실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배의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 김창학 하사는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됐고, 키를 놓을 시 배가 방향을 잃어 동료가 위험해질 것을 안 김창학 하사는 죽음에 이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조타실의 키를 놓지 않았다.

백두산함은 북한의 선박에 접근해 적함을 격침시킬 수 있었고, 다음 날인 6월 26일 우리나라 해군 최초의 단독 해상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김창학 하사는 이 교전에서 적탄에 의해 복부내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으며, 조타실로 달려온 함장을 향해 ‘함장님 끝까지 싸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울부 짖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투철한 사명감을 보인 김창학 하사는 심한 부상으로 전투가 시작된 지 사흘만인 1950년6월 28일 전사했고, 1953년 1월 20일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제공=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