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전윤호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엄마가 부르기 전에
신발도 탁 탁 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야지
종일 만든 모래성도 사라지겠지
공들였던 몇 개의 탑과
조개껍질로 만든 방도 무너지겠지
집을 팔아야겠어요
대출 이자를 견딜 수 없어요
남는 돈으론 전세도 얻을 수 없네요
아내의 등 뒤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겠지
그게 뭐 좋다고 진종일 있었니
그래도 재밌었어요
지개를 끓이는 연탄불 아래서
모래투성이 손을 씻는다
곧 곯아떨어질 시간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
(시인축구단 글발 공동시집에서)
결국 우리는 사라질 것을 위하여 우리를 바친다. 하나 그렇더라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고 생이다. 사라질 것을 위하여 땀을 흘릴 때 즐거움이 있고 보람이 있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 매달려 보는 사랑이니 그리움도 매 한가지이다. 모래성인 줄 알면서도 쌓는다. 권력이란 모래성, 부라는 모래성, 청춘이라는 모래성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지만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으면서도 모래성을 쌓는다. 무너지면 또 쌓으려고 내일을 위한 곤한 잠에 곯아떨어진다. 모래성은 인간의 냄새가 나는 시다. 심금을 가만히 울리는 시다. 모래성이란 시는 세상을 예리한 눈으로 파헤쳐 좋은 시를 써서 끝없이 감동을 던져주는 전윤호 시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 한편으로 이 시는 모래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모래성을 쌓아가는 모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