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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흰죽처럼

 

흰죽처럼/김병기

딱딱한 몸이 풀어져

끓는 물에서 팔팔 살아서

그대의 상처 깊은 몸으로

아으, 풀어질 수 있다면



생생한 기억을 가진 지난날을

나를 위하여 추억으로 갖지 않고

그대를 위하여 응어리 하나 없이

으깨어져 착한 영혼이라도 된다면



나 이대로 죽으리라

그대 사는 게 나였거니

나 사는 게 그대였거니

흰죽 한 사발로 그대를 모시리

-김병기 시집 <오랜된 밥상> 시와에세이, 2013

 

 

 

몸뚱어리 으깨어 끓는 물에서 전혀 새로운 모양의 양식(糧食)이 변화되어 병자의 생기를 돕는 것이 흰죽이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으깨어진 희생으로 산다. 또한 누군가를 위해 으깨어져야만 하는 순환 섭리 속에서 생명으로 이어간다. 우리는 이 시에서 내 몸이 풀어져 하얀 죽이 되어 사랑하는 그에게로 들어가 그의 피가 되고 그의 살이 되고 마침내 그의 눈이 되고 삶이 되는 거룩한 죽음의 순환을 본다. 이기적인 시간들이 하얗게 풀어져 한 점 추억도 없이 응어리도 없이 착한 영혼으로 그에게 갈 수 있다면, 그대 사는 게 곧 나 사는 것이라 기뻐하며 흰죽 한 사발로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시편은 지금 내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풀어줘야 할 시간은 아닌가 자꾸 질문하게 한다. /김윤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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