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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조용한 가방

 

조용한 가방/정현옥

뱉지 못한 것들이

입 속에서 엉겨있다

패인 볼에 담아둔

세월을 우물거리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버스는 가득해서

엉덩이들은 무겁다

손잡이가 높아서

더욱 무거운 노구에 대해

운전 중인 기사는 죄가 없다



터질 것 같은 입이나

꼭 다물고 있는 버스나

함부로 문을 열지 않는

침묵의 경지가 흔들린다

이빠진 지퍼같은,



이빨도 없는데

입은 더 무거운



- 정현옥 시집 <띠알로 띠알로>

(시와미학사, 2012)

 

 

 

시인은 고단한 인생들을 싣고 달리는 버스의 모양이 마치 지퍼 닫힌 가방처럼 보였나 보다. 가방 속에 담긴 각자의 삶의 무게대로 각자의 표정에 그대로 표시되고 있지만 달리는 버스는 대답해 줄 것이 없다. 그렇지만 덜컹이는 시간 속에 우리들의 가방도 더러는 입을 열고 감춰진 삶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방을 닮은 버스 안에 작은 가방들이 침묵으로 올라타고, 서로의 가방에 대해서도 역시 침묵으로 응시한다. 소리 없이 말하는 인생들의 가방에서 이 빠진 지퍼 사이로 죄 없는 고단함이 죄의식처럼 부풀어 있다. 이 시를 통해 오늘도 인생의 가방끈에는 희망이라고 쓰고 그 속에는 곤고한 짐을 넣고 다니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시의 제목을 ‘조용한 가방’이라고 붙이면서 어쩌면 시인은 조용히 눈물 흘렸을 것 같은 연민이 느껴지는 시편이다. /김윤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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