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한 오후 /김정미
오래 끌었던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오후, 날은 더웠고
습도는 더 높았다
아라비아 사막의 한낮 같은 도시 한복판에서
더위보다 화끈하게 마침표 찍어준
마음에 감사하며
혹여 한 톨 후회라도 있을까 뒤돌아보았지만
벌써 저 멀리 물러나는 연기 같은 기억들
아스팔트 태우며 오르는 골탄의 땀방울만 몇 군데
남아 있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사-랑*을 위해
혼신의 힘으로 보낸 여러 밤들이여
과거는 늘 그렇게 관대해지니
단 한걸음만
뒤로 넘겨두어도
손가락 마디마디 저려왔던
무기력한 고통이 먼지로 날아가는 것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땀 사이에 묻은 쓰린 고약 딱지
하나하나 뜯어내며 돌아오는 길에
청명한 초가을이 나보다 먼저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김윤아의 노래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에서 변용
계간 <신생> 2012년 겨울호 발표
신인으로 각광 받고 있는 김점미 시인에게 사랑만큼 신나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사랑은 늘 우리를 흥분시키고 서로를 위해 화장대 앞에 앉거나 머리를 손보게 한다. 생에 가장 큰 올인이 있었다면 사랑에게 올인 한 것이다. 하나 사랑만큼 슬픔이나 고통을 극에 치닫게 하는 경우가 없다. 사랑은 그러므로 오감을 다 가졌고 때로는 맹수 같고 때로는 순한 양 같은 양면성을 가졌다. 그런 사랑에 종지부를 찍어보라. 자고 일어나니 우주가 쾌청하게 개어있는 것처럼 마음은 상쾌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낙타가 물 냄새를 맡으려는 듯 예민해져 먼 사랑을 향해 킁킁거릴 수밖에 없다. 사랑은 참으로 많은 것을 겪게 하지만 또 사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종지부를 찍은 연애는 또 다른 연애를 향한 첫 걸음이다. 희망이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