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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살찌우는 ‘착한여행’을 아시나요?

공정여행가 한영준
게스트하우스 등 주로 이용
현지인들 도우며 세계 일주
“명품가방 한개 가격이면 과테말라에 집 한채 지어 ”

 

‘공정여행’을 아시나요?
 

 

매년 여름이면 나는 사용할 수 있는 휴가를 총동원해 여행을 다녀온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오느라 수고했다”라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이 기간을 위해 스크루지 코스튬 플레이어인 나는 경비를 아끼지 않고 1년 동안 모아두었던 피 같은 적금통장을 깨트려서 ‘잠금 해제’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 부푼 기대감과 설렘을 가슴에 담고 지도를 펼쳐들어 여행을 계획한다.

‘캐나다에 오로라가 그렇게 환상적이라는데.’ ‘친구 아무개 녀석은 스페인 국민의 열정은 라면을 끓일 만큼 뜨겁다던데.’ ‘아는 선배는 방글라데시가 사진 찍을 거리가 그렇게 많다던데.’

그렇게 행복한 고민을 하다 잠이 들곤 한다.

이날도 그렇게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즈음 유키쿠라모토의 ‘Lake Louise’로 설정해둔 휴대폰 벨소리가 짜증스럽게 울리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형, 저 지금 과테말라인데 갑자기 커피 좋아하는 형이 생각 납디다.”

 


몇 해 전 우연히 알게 돼 형·동생하며 지내는 한영준(27)이라는 친구의 전화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다니느라 -이 탓에 시간의 개념도 없다- 한국에 있는 날이 거의 없어 종종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하곤 한다.

이 친구의 직업은 ‘공정여행가’다.

공정여행이란 간단히 말해 여행하면서 소비하는 것들이 현지인의 이득이 되게 하며 환경을 보호하고,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이다. 일명 ‘착한 여행’, ‘책임 여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 친구가 공정여행가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어릴 적부터 막연히 세계일주가 꿈이었던 그는 그 꿈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실행에 옮겼다.

호주에서 돈도 벌고 영어도 공부하고 여행도 하던 한군은 그렇게 모은 돈과 영어 실력으로 아시아를 일주했다. 이후 동남아시아와 인도, 스리랑카 등지를 여행한 그는 그곳의 가난과 질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인도의 한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하며 그는 여행의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가족사진 찍어주기, 한글교실 열기, 프리허그 이벤트, 개인적으로 비정부기구와 연관하여 봉사활동 및 자선활동을 벌인 그는 이때부터 세계일주의 방향을 남들과는 다르게 잡기 시작했다.

그의 ‘공정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군은 이 공정여행 방식을 받아들여 호화로운 외국계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포기하고 현지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 이용을 기본으로 현지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돈을 번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그는 세계일주 2년차에 후원을 모집하게 된다.

“여행하며 소비하는 돈은 어떻게든 제가 벌어서 할 수 있어요.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글을 기고해서 넉넉지는 않지만 여행을 계속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남을 돕는 데는 조금 부족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후원을 받기로 결심했죠!”

10대부터 시작한 양로원, 보육원 봉사, 저소득층 무료과외 등에서 쌓인 경험과 신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더군다나 후원금이 본인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빈민을 위한 후원금이었다.

 


“큰돈은 필요치 않아요. 제가 받고 싶은 것은 마음이에요.”

그의 후원 방식은 특별하다. 월 3천원, 5천원의 정기 후원자 100명과 100원 후원자 1004명을 모집했다.

커피 값 한 잔, 작은 동전 하나를 자신에게 달라고 호소해 벌써 1천명이 넘는 후원자를 모집했다.

1만원 이상의 돈은 받지 않는 그의 후원 방식이 조금은 미련하게 보이지만 작은 것들을 모아 큰 기적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신념과는 일치해 보였다.

모인 후원금을 통해 스리랑카와 과테말라에 농장 10채를 지어 선물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도서관을 운영하게도 했으며, 병든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주고 수술비를 지원했다. 또한 사비를 털어 스리랑카에 집 한 채, 과테말라에 집 한 채를 지어 가난한 가족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급 카메라 한 대 가격이면 스리랑카에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한 가족에게 선물했어요.”

“여자친구의 생일이었어요. 가지고 싶은 게 없냐 물으니 ‘니가 돈이 어딨냐’며 선물 줄 거면 집 한 채 달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집 한 채를 지어 선물했죠. 사실 명품 가방 하나 값이면 과테말라에 집 한 채를 지을 수가 있거든요.(웃음) 하지만 그 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네요 하하.”

그의 삶 방식 또한 특별하다. 때로는 전 세계 각 도시에서 프리허그(Free Hug)를 진행하며 세계를 품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하고 30대가 되기 전, 학교와 병원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또 자신을 거지라 칭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의 거지입니다. 구걸하여 사는 사람이란 뜻이죠. 실제로 제 모든 여행경비는 구걸을 통해 마련해요. 제가 버는 일정치 않은 원고료와 상금 등은 모두 기부합니다. 대신,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의 여행에 대해 소개하고 구걸해요. 또 여러 친구들에게 SNS를 통해 비행기 삯이나, 필요한 것들을 구걸하여 얻어낸답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꽃거지’라고 칭해요.”

 


꽃거지 한영준군은 현재도 과테말라를 여행하며 지난 봄, 집과 농장을 선물했던 곳을 찾아 재정비하고 남미에 학교를 짓기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곳 서민음식을 먹고 서민의 생활방식을 따른다는 한군은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부자여행을 한다고 말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이 부자가 아닐까요? 부와 명예를 가진 삶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성공한 것이라고, 전 그렇게 믿어요.”

가난하지만 풍족한 그의 여행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전 희망을 여행한답니다.”

돈이 없어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그들을 통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그가 마냥 커 보이기만 하다.

통화 중 문득 ‘올 여름 여행경비 259만원’이라고 적힌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쌓이고 겹친다.

 


“그나저나 형 후원 좀 해주세요.”

“얼마나?”

“많이 보내주면 저야 좋죠. 하하.”

“넌 만 원 이상 후원 안 받는다며?”

“에이, 형은 다르죠. 한 푼만 줍쇼 형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https://www.facebook.com/PoorNHappy

그의 여행 소식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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