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김우영
그래 이것이 경계가 아니었으면
참 좋겠네
더 이상 전생과 후생
오거나 가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나 이 길 위에 서 있을 때
구름 편안히 모였다 흩어지고
바람은 선선히 몸을 투과해
허허 웃으며 걸을 수 있다면
기교가 다하고
생각의 뿌리가 모두 드러나
내게 순명(順命)하며
저 위대한 도랑물이나 풀잎처럼
낮아져
그저 흐르거나 흔들릴 수 있다면
아, 참 좋겠네
김우영 시집 <부석사 가는 길/청학 2003년>
참으로 이 길 위에 오래 서있는 시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온 나라에 필명을 날리기 시작한 시인이 이제 기교가 다하고 생각의 뿌리가 모두 드러나 순명을 받들고서 낮아지고자 한다. 한 시절 이름을 나란히 하던 동료시인들이 아직도 그 이름 위에 군림하고 있을 때 시인은 오히려 흐르거나 흔들리며 고향을 지키겠다고 허허 깨끗한 웃음을 보여준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름 편안히 모였다 흩어지고 바람은 선선히 몸을 투과하는데./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