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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임동확

아스팔트 위의 고양이, 길가 풀섶의 앉은뱅이 망초, 냉장고 속의 마늘 싹들까지 가장 외롭고 높게 맑고 푸른, 그 어느 하나 빠트리지 않은 채 남김없이 빛나는 생의 정오



오로지 흠가지 않는 보석처럼 찬란한 눈망울을 마치 처음인양 깜박이며 다가오는 한 아이가 제 어미젖을 빨다 방긋 웃고 있고, 또 은어 새끼 한 마리가 제가 태어난 강을 떠나 막 바다로 향하고 있을 때



소리도, 형체도 없는 그 하늘이 그저 두려울 뿐 어찌 더 이상 무엇이 괴로우며 아쉬울 것인지요



논둑에서 긴 목을 빼고 있는 쇠백로 한 마리, 전나무를 기어오르는 칡덩굴, 비 개자마자 밤꽃을 탐하는 호박벌 한 마리 더욱 뚜렷하고 투명하여 제 속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환한 비밀의 대낮



금세 달라붙은 어두운 그림자조차 녹여낼 듯 뜨겁게 입술과 입술을 맞댄 채 마치 마지막인양 키스를 나누는 그 누군가 여기 결코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 기어이 갈참나무 숲을 이루고, 드디어 보리밭 위로 종달새 울음이 떠오를 때



끝끝내 안식을 모르는 생멸과 재생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소란하고 분주한 땅의 그 어느 이슬 한 방울인들 우연히 맺혀있을 것인지요



어찌 축 늘어진 8월 태양 아래의 호박잎, 오솔길에 달라붙은 도깨비바늘, 추수 끝난 들판의 빈 수수대궁들마다 속임 없이 주어진 놀라운 시간의 신비를 즐거이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런지요



 

 

 

누군가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앙상하거나 무성한 채로 여전히 알 수 없는 불가사의를 증언하고 있을 때, 아니면 한여름에 영원과 찰라 사이를 온몸으로 밀고 가는 달팽이 한 마리와 기적처럼 마주하며 걸음을 멈추고 있을 때, 누군가는 절망이 기교를 낳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한국시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시커먼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임동확 시인은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정오’는 생의 멸시로 이어지는 절망의 방정식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그에 대한 응답이다. 아무리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제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고 있으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매순간 죽음이나 절망의 시간들이 아닌 비할 데 없이 찬란한 생명의 정오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은 절망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병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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